개인의 학력·재산·직업·종교·취미 등을 묻는 공문서
일선 학교에서 하는 학생기초환경조사의 문제는 <오마이뉴스>에서 이미 몇 차례 지적했다.
학생들의 기초환경을 조사한다며 부모의 학력과 직업, 재산 정도 등을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과연 교육상 필요한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기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기업은 항상 자금이 필요하다. 담보능력이 될 때는 담보를 통해서, 담보능력이 여의치 않을 땐 '신용'과 '사업' 평가를 통해서 자금을 확보한다. 담보대출은 담보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므로 따질 것은 없다. 문제는 신용과 사업을 평가하는 신용대출이다.
기업의 신용과 사업 평가를 받으려면 담당 금융기관에 반드시 제출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업 개요표'다. 기업 개요표는 평가에 필요한 대표자 정보를 비롯해 사업의 핵심내용과 전망·재무·마케팅·수익 계획 등 기업정보를 요구한다. 그 중에서 대표자의 개인정보 요구내용은 상당하다.
S기금의 기업 개요표 관련 항목에는 대표자의 이름·주민번호·주소·전화번호를 비롯해 취미·종교·최종학력·거주주택의 소유관계(자가/전세/월세), 기타 소유자산 등을 적게끔 돼 있다. 대표자만이 아니다. 경영진도 최종학력과 주요경력을 기재해야 한다.
K은행 신용분석자료의 '경영자 인적사항'에는 종교·취미·창업·소유주/창업2세/전문경영인 구분, 주택규모(자가/임차)와 대지/건평 정보, 연수입, 회원권, 보유부동산 규모와 추정시가, 건강(양호/보통/허약ㆍ노약/질병상태), 학력 등을 기재해야 한다.
이런 식의 질문은 몇몇 소수 금융기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보증기금, 보증재단, 은행 등은 물론이거니와 중소기업청 등 각종 정부단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요구하는 내용대로라면 학벌 좋고 재산 상태 양호한 대표자가 높은 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에서 하는 피의자신문조서는 어떤가? 조서는 잘잘못과 범죄 여부에 상관없이 개인정보를 더욱 요구한다.
조서는 본적, 전과 여부, 병역, 학력, 경력, 재산 정도, 생활상태, 종교, 정당ㆍ사회단체 가입여부, 술과 담배 소비량, 건강상태 등 개인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묻는다. 조서의 공식적인 성격을 감안하면 잘잘못과 범죄를 판단하는 데는 학력과 재산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정당 가입여부, 종교, 술과 담배 소비량, 건강상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모든 질문에는 어떤 의도나 얻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에 나온 학력과 재산 등 개인 신상에 대한 물음이 특히 그렇게 보인다. 혹시나 학력이 낮고 재산이 적은 경우 당연히(?) 범죄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범죄의 통계조사가 목적이라면 몰라도, 범죄에 대한 피의자조사 내용은 다분히 인권침해 요소가 있어 보인다.
학력과 재산 등 조건이 앞서는 사람 평가 문제
학생과 기업, 피의자를 평가하고 조사하는 공문서는 모두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그 요구는 올바른 교육, 신용과 사업의 정확한 평가, 잘잘못과 범죄의 공정한 판단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사람을 평가하는 데 학력과 재산 등 조건이 앞서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Y고등학교의 한 담임교사는 "교육현장에서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지도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학생들의 기초환경조사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꼭 부모의 학력과 직업, 그리고 재산 정도를 알아야 올바른 학생 지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조사의 질문 항목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H은행의 모 담당자는 대표자의 학력과 재산이 결국은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는 물음에 "담보가 없는 자금 대출인데 기업의 전망과 대표자의 능력을 검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하고 되물으면서 "대표자의 학력과 재산은 중요한 요소기는 하지만 평가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사업성"이라고 말해 학력과 재산이 중요한 평가 요소임을 일부분 인정했다.
G경찰서의 한 형사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할 때 대답하고 싶지 않은 항목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조사한다"며 "범죄 피의자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범죄와 연관할 수 있는 모든 요인에 대해서 이것 저것 물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학력과 재산 등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거듭된 질문에 "묵비권 행사와 피의자의 학력과 재산 등 개인정보에 대한 파악 이전에 잘잘못과 범죄 사실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우선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피의자에 대한 조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범죄 이야기로만 밤을 새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며 우선 조서에 대한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뤄진 후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내용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문서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평가내용에 집중해야
사람들은 교육담당 주체라면 학생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지향하는 가치와 희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살피는 노력과 학생과의 대화가 부모의 학력과 재산, 직업을 아는 일보다 우선한다는 이야기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기업의 신용을 판단할 때 대표자의 경영철학과 비전제시 그리고 사업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를 원한다. 대표자의 자질을 파악하는 면접과 사업성에 대한 논의가 서류에 적어내는 몇 줄의 학력과 재산 상태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피의자는 판결 이전에는 무죄에 입각해 조사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피의자에 대한 조사는 범죄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신상정보 파악보다 사건본질파악이 우선돼야 한다. 범죄 발생의 원인과 피의자의 범죄에 대한 태도와 인식 등을 파악하는 것이 학력과 재산, 종교, 주량보다 중시돼야 하는 이유다.
결국 문제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묻기 쉽다고 해서, 평가하기 좋다고 해서 학력·재산·직업 등으로 사람을 미리 판단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공문서의 경우 무엇보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평가 내용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공문서의 사람 평가 내용을 곱씹어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