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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렉트릭 유니버스
ⓒ 생각의 나무
[강동준 기자] 늘 우리 곁에 있어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공기, 물, 불, 전기……. 이 중에서 발견되고 활용된 역사에 비해 인류의 역사를 가장 극적으로 바꾼 것을 들라면 전기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현대 문명은 전기가 없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붕괴할 정도로 전기는 필수다. 전기가 끊어진 세상을 상상해보라. 컴퓨터, 영화, 인터넷 등의 문화를 즐길 수도 없다. 문화적인 욕구보다 생존이 더 큰 문제다. 어둡고, 춥거나 더운 것을 막을 수도 없고, 음식을 저장할 수도 없다.

또 전기의 힘은 문명을 유지하기 이전에 지구에서 생명 존재와 관련이 있다. 이 말에 대해서 반론이 들어올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냐? 전기가 현대 문명에 필수적인 요소이긴 해도 생명 존재 운운은 지나친 것 아니냐? 지금도 오지나 아주 작은 섬에는 전기의 도움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라고.

그러나 이런 반론은 전기가 단순히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아 하다못해 전지를 이용하여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는 차원의 생각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중단되는 것이 인간의 전기 공급만이 아니라면 어떨까? 전기력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지구의 모든 바다들이 위로 솟구쳐 올라 증발할 것이다. 물 분자들끼리의 전기적 결합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속 DNA 분자 가닥들도 서로 뭉치지 않을 것이다. 대기를 호흡하는 생명체 중에 용케 살아남은 것이 있다 해도 금세 질식하게 된다. 전기적 인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공기 중의 산소 분자가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 분자와 결합하지 못하고 쓸모없이 튕겨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14쪽)

평소 전기에 대해 감전만 안 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이런 글을 보니 소름이 끼친다. 당장이라도 무언가가 잘못되어 세계가 멸망할 것 같다.

그렇지만 전기의 힘은 오래 전부터 균형이 잘 잡힌 채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지구가 자전을 멈춰 지구 자기장이 없어져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영화로 한 <코어>의 재난도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더라도 이런 설명은 전기의 힘을 새삼스럽고 느끼게 한다.

'전기'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전기 그 자체보다는 전기의 힘을 이용한 각종 문명의 이기들일 것이다. 지은이는 전보,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등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이기들이 만들어진 과정과 전기의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동그란 시계의 3시와 9시 근처에 전자석을 설치해 번갈아 전기를 넣었다 끊어주기를 반복해서 그 자력을 향해 돌아가는 긴 분침을 예로 든 전동기의 원리' 등의 설명은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고 있다.

전기 기구의 발달은 전기의 성질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전기가 전선을 통해 흐르는 일종의 물 같은 흐름이라고 생각하던 '전류'의 시절에는 전보와 전화가 만들어졌다. 전류가 '전자'라는 일종의 알갱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전구'가 만들어졌다. '전기장'과 '자기장'의 실체가 밝혀지자 무선 장비들인 라디오, 레이더, 텔레비전 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 양자역학의 결과 오늘날의 컴퓨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기구들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들로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전기는 더 이상 기계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전기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체를 움직이고 유지시키는 필수 요소다. 오늘날 우리 지구와 우리 몸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상 활동에 전기력은 활발히 관여하고 있다.

우리 몸은 전기의 작용으로 움직인다. 사람의 뇌에는 구석구석 깊숙이까지 비비 꼬인 모양의 살아 있는 전선들이 뻗쳐 있다. 강한 전기장과 자기장은 세포들에 침투하여 영양물질을 공급하기도 하고, 신경전달물질이 미세한 세포막의 장벽을 통과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DNA조차도 전기력의 통제를 받는다. (255쪽)

전기신호를 통해 인체가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결과 사람을 치료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신경세포를 움직이는 전기 펌프를 마비시키는 마취제는 사람들의 통증을 줄여주었고, '프로작'이라는 약품은 뇌의 특정 전기 수용체에 결합해서 우울한 기분을 억제한다.

그 유명한 '비아그라' 역시 사람의 몸에 전기가 있다는 특성을 활용한 약이다. 이 알약이 특정 부위의 신경세포를 흥분시켜 쾌락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사람과 세계가 전기로 설명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는 전기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숨은 일화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모스 부호는 모스가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통용되고 있던 부호와 전보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준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었다.

모든 발명가의 아버지인 에디슨은 남의 특허 상품을 베끼거나 가로채는 연구소의 장이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이 서로 레이더에 관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 벌인 치열한 스파이전도 흥미롭다. 또 매킨토시 컴퓨터로 유명한 애플사의 로고가 왜 한 입 베어 문 사과인지에 대한 슬픈 일화도 알 수 있다.

<일렉트릭 유니버스>는 제목 그대로 전기의 세계에 대한 교양서다. 정전기나 번개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처음 그 선을 보인 이래, 전기가 어떻게 발전되었고 활용되었으며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유지해 왔는지를 설명한다. 자칫 물리학 분야로 넘어가 어려워질 수 있는 원리나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끌고 가는 지은이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도서포탈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에서 '주목할 만한 새책'으로 소개하는 글입니다.


일렉트릭 유니버스 - 전기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글램북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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