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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살폈으나 특별하게 보이는 바둑알은 없었다. 검은색과 흰색이 함께 모여 있었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채유정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김 경장이 손가락을 가리켜 바둑알 하나를 짚어 보였다. 검은색인데 별다른 차이는 없어 보였다.

"여길 잘 보면 바둑알 한쪽에 깨어진 자국이 보일 겁니다. 그 자국에는 희미하게 피가 묻어 있죠."

"피가 묻어 있다면…."

"박사님은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다는 걸 알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렇게 표시를 한 겁니다. 바둑알 색깔로 표시를 하면 쉽게 알려질 수 있기 때문에 바둑알 한쪽을 슬쩍 흠을 낸 것입니다."

"이 바둑알이 놓인 곳으로 그 피라미드를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입니다."

김 경장은 카메라의 액정과 실제 눈앞에 펼쳐진 피라미드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며 한쪽을 가리켜 보였다.

"바둑알에 흠을 낸 곳의 위치와 일치하는 것은 바로 저것입니다."

김 경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가 하나 보였다. 그 피라미드는 보통의 피라미드와 비슷한 크기로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저기에 그 유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 말이죠?"

김 경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유정은 그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에 유물이 있다고 해도 그걸 가져올 방법이 없잖아요. 이전보다 감시가 더 심할 건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있습니다."

"어떤 방법인데요?"

채유정이 그렇게 물었으나 김 경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와 가방을 정리하며 내려갈 채비를 했다. 채유정이 다시 물으려다 그만두고 이내 그 뒤를 따랐다. 김 경장의 발걸음은 빨랐다. 채유정은 부지런히 그 뒤를 따랐다. 둘은 산에서 내려와 화력 발전소 부근에 주차해 놓은 차에 올라탔다.

"이 차를 이용하면 될 겁니다."

그는 차를 몰아 피라미드가 있는 입구 쪽을 향했다. 김 경장은 시동을 꺼놓고 카오디오에 카세트 테이프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볼륨을 최대한 높여놓고 차창을 모두 열어놓았다.

"이제 밖으로 나가요."

차에서 나온 둘은 길 한쪽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언덕을 통해 길과 반대쪽의 산을 향했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곳이라 길은 험했다. 나무 뿌리와 칡넝쿨이 엉켜 있었고, 돌부리가 군데군데 솟아 있었다. 숲의 대기가 액체처럼 가슴에 차 올라 숨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김 경장은 얼마 달려가지 않고 다시 밑으로 향했다. 평지와 바짝 다가선 곳에 멈추어 선 채 주위를 살폈다. 예상대로 경비는 전에 보다 더 강화되어 있었다. 피라미드마다 두 명 이상씩 지키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채유정인 옆을 돌아보았다.

"이제 어떡하죠?"

김 경장은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보였다.

"이건……."

"자동차의 원격 시동기입니다."

"이걸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이걸로 차에 시동을 걸면 곧바로 미리 넣어둔 카세트가 작동하면서 큰 소리가 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공안들이 비상을 걸어 그쪽으로 몰려가겠죠. 우린 그때 미리 알아낸 피라미드를 오르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김 경장은 턱을 가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이어 손에 들고 있던 원격 시동기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역하게 들리더니 이내 커다란 음악 소리가 정적을 흐트려 놓기 시작했다. 워낙 조용했던 곳이라 그 소리는 꽤 크게 들려왔다.

근처를 지키고 섰던 공안들은 난리가 났다. 호각을 불어 사람을 모으고 랜턴을 켜서 그쪽으로 몰려갔다. 바로 앞에 있던 공안도 달려갔는지 근처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김 경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댁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저도 같이 갈 거예요."

"안돼요. 저기까지 무사히 들어간다 해도 빠져나오긴 쉽지 않습니다. 둘이 가는 것 보다 혼자 가는 게 들킬 가능성이 적어요."

"그럼 제가 들어가죠."

"여자 혼자 힘으로 들어갈 순 없어요."

"그럼 같이 가요. 빠져나오는 방법은 일단 유물을 찾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죠."

하지만 김 경장은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래도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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