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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고원에서 바라다 본 백두산. 9월 말에 머리에 백설을 인 채 다가오는 모습이 말 그대로 '백두산'이다.
ⓒ 최성민
북녘땅을 통해 가는 백두산 관광이 눈앞에 다가왔다. 분단 이후 50여년만의 일이 될 것이다. 한국관광공사와 현대아산은 8월 중에 2회 이상 백두산 관광을 실시한다고 발표하고, 23일 사전답사팀을 백두산에 보낸다. 그동안 우리는 백두산을 중국땅을 통해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이름으로 찾곤 했다. 이제 우리땅을 통해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제 이름 본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8월에 실시되는 백두산 관광이 엄밀히 말해 50여년만에 북녘땅을 통해 가는 첫 번째는 아니다. 지난 2000년 9월 22일부터 6박7일 동안 100명의 남쪽 관광단이 백두산에 다녀왔다. 남북정상회담 결실의 하나로 ‘백두-한라 교차관광’ 사업이 약속되었고 남쪽 관광단이 먼저 백두산을 다녀온 것이다. 그 뒤로 오기로 했던 북녘 동포의 한라산 관광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때 6명을 추첨으로 뽑는 취재기자단에 들어 백두산을 다녀왔다. 내 15년 국내외 여행취재 가운데 가장 신나고 큰 ‘사건’이었다. 기자단 안내는 북한 기자단이 맡았는데, 내가 속한 신문(<한겨레>)은 북한에서도 환영을 받고 있던 터라 나는 다른 신문사 기자들이 접근불허 당하는 현지 주민의 생활상까지도 북한 기자들로부터 ‘특별대우’(묵인 또는 안내)를 받아가며 취재할 수가 있었다.

그때 취재한 내용은 지면을 통해 기사화했으나 종이 신문의 한계 때문에 충분한 내용이나 사진을 싣지 못했다. 마침 백두산 관광이 눈앞에 다가온 이때 먼저 백두산에 가서 담아온 내용과 감회를 백두산 관광 안내삼아 몇 차례에 걸쳐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께 보내드리고자 한다. 이번 첫회에서는 백두산 관광의 의미와 현지에서 느꼈던 감회를 개괄적으로 더듬어보고 다음회부터는 구체적으로 현지 스케치를 해보기로 한다.

▲ 백두산 오르는 길. 정상까지 찻길이 닦여 있다.
ⓒ 최성민
북녘땅으로 백두산에 간다는 것은 금강산에 가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동안 우리가 휴전선에 가로막혀 섬 아닌 섬에서 5000만명이 버글대온 사정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릴 만큼 감격스런 일이다. 우리가 좁은 반쪽이 땅에서 지평선을 본 적이 있는가, 만년설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곰과 호랑이가 뛰어나오는 대 밀림이 우리땅에 있다는 생각을 꿈속에서나 해 본 적 있는가.

남녘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길(땅길과 하늘길)을 통해 이 민족의 시원이자 땅의 정수리인 백두산에 가는 것은 그동안 우물 안에 갇혀있다시피한 우리 사고(思考)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다. 백두산 백두고원(북녘에서는 개마고원을 백두고원이라 부른다)은 ‘광활함’의 대명사이자 자연의 보고이다.

이곳엔 불곰과 사슴이 떼지어 살고 때론 호랑이 출현 경보가 울릴 정도로 자연의 다양성이 살아 있다. 백두산 지구는 지난 1989년 4월 유네스코에 국제생물권보호구로 등록됐으며, 1986년에 김일성혁명사적지를 추가시켜 ‘백두산혁명사적지특별자연보호구역’이라 부른다.

▲ 천지 일출
ⓒ 최성민

▲ 천지 일출에 통일기원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
ⓒ 최성민
백두산 관광구역은 백두밀영, 삼지연, 대홍단, 보천보, 베개봉 구역으로 나뉜다. 백두밀영은 북한 지도부의 항일투쟁(전투) 비밀 군사숙영지의 대표격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난 집이 있으며 백두산 관광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삼지연은 백두산 눈 내린 물이 흘러내려 이뤄진 아름다운 호수로 삼지연대기념비, 리명수폭포, 삼지연읍문화예술회관 등이 볼 거리이다. 대홍단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감자밭이 있는 곳으로 혹한의 백두고원에 농장을 개발한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

보천보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있어서 일본군과의 첫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 곳으로 박물관과 대형 기념탐이 있다. 베개봉은 자연 스키장이 있는 곳이다. 예전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이곳에 대규모 스키장을 건립하려 했으나 그보다는 자연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그만두었다고 한다.

▲ 갑무도로. 일제때 경비도로로 세운 것이다. 백두산 관광길에선 10여분이나 핸들을 꺾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이런 일직선 도로가 곳곳에 있다.
ⓒ 최성민

▲ 백두밀영 내무반.
ⓒ 최성민
이 가운데 북한쪽이 외래관광객들에게 가장 자랑스럽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백두밀영 등 백두산 일대에 발굴 보존돼 있는 항일투쟁 밀영들이다. 2000년 당시 관광단에 낀 여야 국회의원 3명은 밀영구경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반공교육으로 ‘무장’돼 있는 일부 남녘 관광객들이 비슷한 히스테리 현상을 보일지도 모른다.

▲ 남녘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북녘 동포들.
ⓒ 최성민
그러나 관광은 현지의 문화를 현장에서 실감있게 만나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더구나 백두밀영 같은 항일전투 유적은 남녘엔 가져볼 기회나 상황이 안되었던 것인만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열린 ‘역사탐구 자세’가 필요하다. 아마 여러 ‘귀찮은 요소’를 계산했음인지 현대아산쪽은 당일관광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천지에 가서 점심만 먹고 올 관광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관광에 있어서는 현지 주민들의 삶을 만나보는 것도 중요하다. 백두산 여정에서는 궁핍해 보이지만 평화와 여유와 의지가 가득찬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는 북녘 주민들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 ‘의지’라는 것은 ‘미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조국수호’의 의지라는 설명도 곁들여 질 수 있다. 그리고 6·25때 쑥대밭이 됐던 기억때문에 94년 미국의 ‘선전포고’로 북녘 동포들이 얼마나 큰 공포심을 갖게 되었으며, 따라서 ‘선군정치’나 핵개발이란 것이 자위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 대홍단 감자농장. 농사가 어렵다는 백두고원에 비행기로 씨앗을 뿌릴 정도로 광활한 감자밭을 개발했다.
ⓒ 최성민
끝이 보이지 않는 대홍단 감자농장에 들어선 수백 채의 현대주택들은 ‘굶어죽는 북한’이 전부가 아닌, 미국의 봉쇄 속에서도 북녘동포들이 삶의 희망 만들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의지를 지피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백두산 관광은 산천구경만 하고 오는 금강산 관광과는 다르게 우리 땅의 광활함과 경건함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그동안 반공교육에 갇혀 있던 시야가 어느 정도 트이는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 단, 당일 관광으로 천지에 가서 점심만 먹고 돌아오는 일정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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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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