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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삶이 수레바퀴처럼 끝없이 윤회하고 있다.
ⓒ 한석종
비겔란은 이 넓은 공간에 인간의 본질적 문제인 사랑과 증오, 투쟁과 고독, 희망과 절망 등 삶의 파편들을 조각해 놓고 그동안 갇혀있던 우리들의 마음을 푸른 창공에 훨훨 날려보내고 있었다.

거대한 인간 돌기둥 '모놀리트 광장'을 지나 100여 미터 언덕을 오르면 맨 뒷편에 일곱 명의 사람이 서로의 몸을 붙들고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조각작품 하나가 허공에 떠 있다. 마치 삶의 수레바퀴가 윤회하듯.

이것으로 비겔란 조각공원은 전체적으로 완성된다. 입구 다리 난간에 세워놓은 탄생의 의미를 담은 조각상으로부터 미로같은 삶을 헤쳐 나가는 다양한 인간군상, 그리고 죽음, 죽음을 넘어선 또 다른 삶이 수레바퀴처럼 끝없이 윤회하고 있다.

▲ 모노리트 앞에 투조된 문살 사이로 비친 다양한 인간의 삶
ⓒ 한석종
비겔란 공원 관람을 마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삶, 너는 진정 무엇이뇨?" 이런 진부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었다. 마치 아침에 단정히 빗질한 머리칼을 한줌 바람이 일순 헝컬어 버리듯 마음속에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과연 인간의 삶은 무엇이며, 어떤 삶이 진정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미 중년을 넘어선 내게 비겔란은 사춘기 청소년기에 질풍노도와 같이 휩쓸고 지나갔던 논제들을 다시 한번 던져 주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은 칠흑같은 어둠 뿐이었다. 발트해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다시 광주행 기차에 오를 때까지 그 의문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기차가 서대전역에 잠시 멈춘 뒤 다시 서서히 움직일 즈음 귓전을 때리는 명쾌한 이 한마디.

▲ 좌측위로 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번째 사진, 죽은 아내를 품고 비통(哀)에 잠겨있는 노인. 이를 어이하랴! 두 번째 사진, 아버지의 가장 큰 즐거움(樂)은 품안의 자식과 부대끼며 놀 때. 세 번째 사진 이토록 기쁜 표정을 보았는가? 이것이 진정 희(喜). 네 번째 사진, 이렇듯 분노할 일이 전 생애에 걸쳐 몇 번이나 있을까? 그대는 진정 노(怒)하고 있구나! 다섯 번째 사진, 언제나 신비스러운 한 생명의 탄생.
ⓒ 한석종
"삶은 계란이오" "삶은 계란이오~" "삶은 계란있어요~~"

왼쪽가슴에 '홍익회' 글씨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무빙카트를 끌며 간식거리를 파는 아저씨의 외마디였다. 순간 칠흑같이 어두웠던 머릿속에 한줄기 섬광이 스친다. 바로 그거야!

어느 철학자가 삶을 이렇듯 명쾌하게 풀어주리오? "아저씨! 여기 삶은 = 계란."

계란 두 개를 양손에 받아 들고 다시 한번 삶을 생각해 본다. 그래 맞다! 삶은 계란이다. 살면서 계란처럼 어떤 매듭도 만들지 말자. 그리고 둥글둥글 한 세상 살아보는 거야! 이런 계란의 삶이 진정 아름다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 손 안의 삶은 계란의 빛깔이 더 없이 곱게 느껴지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제 비겔란 조각공원은 오슬로시나 노르웨이 한 국가만의 문화자산이 아닌 듯 싶다. 한 해에 무려 500여 만명의 관광객들이 쉴새 없이 찾을 정도로 가히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확고히 자리매김되었다. 이렇듯 비겔란 조각공원은 예술과 환경이 어떻게 이상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 인간이 고독에서 벗을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기꺼이 동거할 수밖에...
ⓒ 한석종
비겔란 조각공원은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비겔란은 삶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예술에 대한 무한한 열정, 그리고 오슬로시 당국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배려와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공원은 비겔란 한 개인의 영광이기에 앞서 오슬로 시민 한사람 한사람의 삶이 이 조각상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오슬로시의 세밀한 배려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산업적으로 접근하려는 근시안적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저변에 훌륭한 문화 인프라가 폭넓게 구축되어 있다면 대외적으로 문화수도니 문화도시니 하는 그런 유치한 슬로건을 내걸지 않아도 오슬로시처럼 자연스럽게 구축되지 않을까?

경제적인 관점에서 문화콘텐츠의 산업화가 요구될수록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리라. 그것이야말로 미래 우리의 몸과 영혼을 살찌우는 유일한 길임을 비겔란은 일찍이 거대한 돌기둥에 깊이 새겨넣었던 것이다.

▲ 가장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버거워 보인다.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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