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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아침에 살짝 비, 이후에 흐린 하늘

얼핏 잠에서 깼다. 화장실 갔다 왔는데도 바로 신호가 온다. 이거 이러다 이 정감 안가는 여관에 며칠 더 있어야 될지도…. 깬 김에 밀린 일기를 썼다. 몇 시쯤 됐나 누군지 몰라도 라디오인지 테이프인지를 튼다. 소리가 하도 커서 귀가 아플 지경이다. 여기 종업원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한 십여분 후 누군가의 격한 항의 후에 조용해진다. 카메라에 있는 시계로 확인하니 4시 32분이다. 배앓이에 즉효라는 둥근 환약을 3알씩 두 번이나 먹었지만 별로 소득이 없다. 어제부터 먹은 것까지 합치면 탁구대회에 나온 탁구공 수만큼 될 것 같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차소리에 깼다. 카운터에 내려와서 보니 7시 35분. 정말 긴 밤이었다. 길 물어 봤던 직원이 '우리 호텔은 2성(星)급 호텔'이라고 자랑하길래 성질 한번 냈다.

호텔에 붙어 있는 상점에서 돈황지도 구입. 5.5위안 짜리를 5위안에. 인상쓴다.

장거리버스터미널에 짐을 맡기고(4위안), 보조배낭 들고 나왔다. 호텔직원이 말하기를 가욕관 가는 버스는 없고 택시로 10위안이라기에, 지나가는 오토바이 삼륜을 타고 가욕관성으로…4위안.

▲ 가욕관가는 길에서
ⓒ 최광식
가욕관성 앞 상점에서 야광배 15위안에 2개. 어제 주천에서 8위안 정도라고 들어서 깎으려다 주인아줌마 얼굴이 워낙 쪼들려보여 그냥 샀다.

연간 강우량이 80mm라더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우의 파는 소녀가 와서 '20위안' 내란다. 그 가격이 적당한지 고민하는 사이에 '15위안'으로 내린다. 값 내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당황하는 사이에 '10위안' 부른다. 샀다. 나 이외 사람들에게는 전부 '10위안' 부른다.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다.

가욕관성 60위안.

▲ 해학이 넘치는 살아 숨쉬고(자고) 있는 느낌의 마네킹. 이런 건 한국박물관에서도 좀 연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최광식
▲ 현재 모양의 국기(태극기)를 바꾸자는 데 찬성! 남의 나라 천장에서 발견되는 건 좀 그렇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최광식
순환미니버스(8위안)를 타고 입구까지, 괜히 탔다. 거리도 가까운데. 성문에 올라가보니 낙타 타는 데가 있어서 얼떨결에 가욕관 정문으로 나왔다. 가격표를 보니 낙타와 말 타는데 '15위안'이다. '삐끼' 아줌마가 타라고 계속 권한다. 말이야 한국에서도 탈 수 있지만, 낙타야 타기 힘들지 않은가! 아니지! 명색이 '배나온 기마민족'인데 말 한번 타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내 고민의 이유가 '가격'이라고 생각했는지 '10위안' 부른다. 얼른 탔다. 하하하! 고민이 많을수록 가격이 내려간다. 낙타로 결정!

사막의 대상들은 이런 낙타를 타고 이 사막을 건넜을 것이다. 잠시 옛 실크로드의 상인이 되어 나라면 뭘 팔고 다녔을까 즐거운 상상. 나라면 당연히 술이었겠지.

(필자주 : 가욕관 장성박물관에 대한 설명은 제 졸문 '[여행] 만리장성이 대동강부터라고?'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 낙타, 말 타는 가격표. 낙타나 말을 타서 사진 찍는데는 5위안, 한바퀴 도는 건 15위안, 의상 빌리는 데 5위안.
ⓒ 최광식
▲ 배나온 기마민족을 태워준다고 고생한 낙타 '꽃순이',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름이 없다고 해서 제가 하나 지어줬습니다.
ⓒ 최광식
다시 오토바이삼륜으로 역까지…5위안.

11시 30분발 호화대형버스, 이름은 그렇다, 79위안, 물 한 통 1.5위안.

중국에서 '호화'와 '일반'버스의 차이는 깨끗함의 차이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발을 꼴 수 있다, 없다 차이 같다.

11시 57분 사람을 버스복도까지 다 채우고 출발, 생각보다는 빠른 출발이다.

9시간의 버스시간을 대충 요약하면, 수수밭을 조금 보다 황무지를 계속 봤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 이렇게 완벽하게 인가가 없는 지역은 정말 처음이다. 그리고 그 넓은 지역이 아직도 황무지라는 점에서도 놀랐다.

▲ 버스에 내려 찍은 하늘입니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하늘 본 지가 제법 된 듯합니다.
ⓒ 최광식
가욕관에서 안서(安西) 도착. 5시 30분 정도에 도착. 해는 우리나라 기준이라면 한 오후 두세 시 정도에 떠 있는 위치라 시간감각에 혼동이 온다. 운전기사와 차장은 몇 분 정도 쉬겠다는 안내도 없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중국어 듣기능력 문제였을지도. 자기들끼리 저녁을 먹고, 승객들은 화장실 얼른 다녀와 모두 차 안에서 대기. 먹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이나.

오던 길로 다시 돌아 출발한다. 나와서 오른쪽, 즉 가던 방향의 왼쪽으로 가야 되는데… 조금 이상하다.

< 8월 8일 경비사용 내역 >

ㅇ 이동비 : 79위안
- 가욕관 > 돈황 : 호화버스 좌석,79위안

ㅇ 교통비 : 9위안
- 오토바이삼륜 : 가욕관시 > 가욕관성(4위안), 가욕관성 > 가욕관(5위안)

ㅇ 숙박비 : 20위안
- 비천빈관 : 7인 다인실,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실(온수), 에어콘없음, TV없음

ㅇ 식 비 : 9위안
- 아침 : 건너뜀
- 점심 : 굶음
- 저녁 : 돈황라면(5위안), 황하맥주(4위안)

ㅇ 관람비 : 60위안
- 가욕관 : 60위안

ㅇ 잡 비 : 100위안정도
- 야광배 2개 (15위안), 우위(10위안), 물 두통(3위안), 비상식량등(70위안정도, 영수증을 잃어버려서 정확한 가격을..)

ㅇ 총 계 : 277위안
한참을 다가다 이제 몇 분 남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1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표지판에 아직도 125km다. 잉? '안서'에서 122km였는데 '우짜 이런 일이!' 내가 더위를 먹었나? 아님 어제 잠을 설쳐서 거리감각이라도 망가진 건가? 원인에 대해 좋지도 않은 머리 열심히 회전시켜 문제점을 찾고 있는데. 여차장이 길가에 기다리고 있던 사내에게 물건 하나를 건네준다. 낌새를 보니 '물건' 하나 택배해주고, '35위안' 받으려고, 거의 40여명의 승객들의 시간과 회사기름 낭비에도 불구하고 70km~90km를 더 돌아간 것이다. 어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돌아간 거리와 시간 낭비에 비해 그 '삥땅' 금액이 적은 것에 놀랐고, 또 하나 놀란 건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데서 외국인이 나서서 자기기준만 맞춰 항의해봐야 '이상한 외국여행객', '성질급한 한국인' 이상도 이하도 안된다. 뭐 중국에서는 중국식 만만디를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늘 새롭다.

▲ 무려 70Km를 돌아가는 중국식 거리감!!
ⓒ 최광식
저녁 8시 30분 넘어 도착, 해는 아직도 떠 있다. 뭐랄까? 상식적인 일몰시간을 몇 시간 지났는데도 햇살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몽환적인 느낌이다.

버스역에서 몇 가지 물어보고, 알아둔 '돈황빈관'으로 가려고 몇 발짝 걷던 중, 비천(飛天)빈관 발견, 들어가 보니 가격표에 제일 싼 방이 80위안이라고 해서 나오려는데, 여관주인 정도 될성 싶은 중년이 잡는다. "왜 가?" "비싸!" "싼 방 있어!" "정말?"

다인실, 7인실이다. 하루 20위안, 원래는 3일 예정이었지만, 어찌 될지 몰라 이틀치만 미리 지불, 보증금으로 50위안.

들어가니 일본 중년 한 명이 일본책 한 권 들고 누워 읽고 있다. "니 하오~" "곤니찌와~" 했는데 돌아오는 인사가 없다. 인사건넨 사람 민망해진다. '나사게 나이 오야지(멋없는, 멋대가리없는 아저씨)'다.

근처 잘하는 식당 있냐니까 모른단다. 대답하는 태도가 '귀찮으니 말시키지 마!' 분위기다. 은근히 화가 난다. 여행자끼리, 아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 될 것 아닌가? 사회부적응자 일본중년을 놔두고 혼자 나왔다. 아저씨 실수한 거야!

빈관 식당에 가니 '어향육사(魚香肉絲)'가 24위안이다. 내 중국여행중에 이렇게 비싼 가격은 두번째다. 첫번째는 상해게요리로 유명한 집이었고, 25위안이었다. 안먹어! 면요리 있냐니까 있다고 해서 '돈황라면(5위안)'과 '황하맥주(5위안)' 1병, 맥주도 무척 비싸다.

▲ 돈황라면. 왜 비싼집일수록 맛이 없는 걸까요?
ⓒ 최광식
먹어보고 이상 없으면 내일부터 잘 먹고 이상 있으면 내일도 굶어야 한다.

한잔 마시는 사이에 벌써 신호가 온다. '주인님! 드시지 마세요!' 위장이 강렬하게 항의한다. '꾸르룩' 하고…. 오늘 점심도 안먹어서 거의 하루를 꼬박 굶은 탓에 억지로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라면에는 젓가락이 안간다. 재료라고는 면하고 가지밖에 없는데 그냥 '가지라면'이라고 하지… 비싼 가격만큼 불만도 많아진다.

나와서 쇼핑, 수건(집에서 가져온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기억이 안남), 물티슈 10개들이 1봉지, 초콜릿바 1개, 종업원이 맛있다고 권한 비스킷 1통, 오리온 초코파이 1통, 무설탕 커피 20개들이 2통, 두루마리 화장지 1통, 빨래비누 하나, 1회용 세탁가루 3개.

▲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상식량 구입해두시는 것 잊지마시길 바랍니다. 생필품도 웬만한 건 현지에서 해결하시는 것이 짐(배낭)무게를 줄일 수 있습니다.
ⓒ 최광식
사실 중국에서 시장을 가장 확실하게 장악한 한국기업은 대기업이 아니라 탄탄한 중견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온 쵸코파이'다. 중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간판이 많이 보이는 기업은 '한국타이어'다. 가전쪽 대기업제품은 양판점이나 백화점을 가도 지역에 따라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 한국제품중 사실상 세계 최고의 '브랜드'일지도.
ⓒ 최광식
샤워하고 빨래하고 박스테이프로 빨래줄 만들어 걸고 화장실을 세번쯤 들락날락. 힘들다. 빨래가 힘든 것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왜 사느냐!'고 고민하는 것이. 오늘은 하루 종일 고민만 한다.

일본중년외에 3명의 서양인들이다. 가볍게 수인사. 문에다 기름칠 좀 하지 문 여닫는 소리가 탱크 굴러가는 소리다. 3층이 사우나인 것은 괜찮은데 하수구 파이프가 내 침대 옆으로 나있어 밤새 물내려가는 소리 때문에 뒤척뒤척.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게 한다. 하수구파이프를 '호가' 삼아, 물내려오는 소리를 음악 삼아 잤다.

 

덧붙이는 글 | ㅇ 이 글은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중국여행(http://ichina21.hani.co.kr/)', 중국배낭여행동호회인 '뚜벅이 배낭여행(http://www.jalingobi.co.kr)'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ㅇ 중국여행에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여행자료실(http://bbs.hani.co.kr/Board/tong_tourdata/list.asp?Stable=tong_tourdata)'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ㅇ '여행일기'라 평어체를 사용했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올리고 있는 '중국배낭길라잡이'의 내용을 실전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봐주시길.. 

ㅇ 중국어는 경어가 거의 없기에, 사실에 가깝게 번역했읍니다. 현장감있는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싶군요. 

ㅇ '여행지정보'보다는 '여행정보'에 치중했습니다. 괜한 그리고 많은 '여행지'사진은 스포일러(영화결말을 말하는) 같아서. 

ㅇ 중국돈 1위안은 2005년 8월 한국돈 136원(팔때 기준)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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