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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인을 따라 숲을 등지고 있는 임경업의 관사로 향했다. 차예량은 혹시나 자신의 형인 차충량이 심양에서 탈출해 오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에 차 있었고 그 기대는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형님!”
차예량은 눈물을 흘리며 차충량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조금 수척해진 모습을 제외하고서는 차충량은 심양으로 잡혀갈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거 이쪽도 좀 보라우.”
차예량은 놀란 눈으로 거지꼴의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는 바로 장판수였다.
“장형! 이 어쩐 일이오!”
차예량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뒤에 서 있는 임경업의 존재도 잊고서는 눈물을 훔치며 크게 소리를 질러대면서 힘차게 웃었다.
“자, 다들 자리에 앉지.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네.”
임경업의 말에 모두들 술상이 차려진 상에 앉았고 궁금함을 못 이겨 모두의 얼굴만 번갈아 보는 차예량에게 차충량이 그간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심양에는 겨우 삼일을 머물렀을 뿐이네만 정말 끔찍했네! 소문만 들었지 그렇게 많은 조선 사람들이 끌려와 갖은 고초를 당하는지는 몰랐네!”
차충량은 모두에게 술을 권하여 한 잔을 벌컥 들이킨 후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듣자하니 소문으로는 십 만 명이 끌려갔다는데 만약 도주하다가 잡히면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을 받을 수도 있네! 몸값을 내면 풀려나는데 재물이 넉넉한 이들이야 어찌 풀려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시름에 젖어 살고 있을 따름이네! 부윤께서 사람을 따라 보내어 재물로 날 꺼내오지 않았다면 나 역시 아직도 심양에 있었을 걸세!”
차예량은 그 말에 임경업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건네었고 임경업은 공손한 말로 자신의 공을 낮추었다.
“일의 근본이 내게 있는데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나? 심양에 있는 백성들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게 한이 맺힐 뿐일세.”
차충량의 사정을 들은 차예량의 눈길이 자연 장판수에게로 옮아갔다. 장판수는 그런 분위기를 알아채고서는 가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래 별일 겪지 않았습네다. 함경도 산골짜기를 헤매이며 거지 행세를 한 게 답네다.”
장판수의 말이 끝난 후 좌중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차충량이 다시 술을 권했고 모두들 깊이 익은 감홍주를 벌컥 마시고 취기를 만끽했다.
“기런데 앞으로 다들 어떻게 하실 작정입네까?”
장판수의 말에 다시금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고 잠시 후 이를 깬 것은 임경업이었다.
“명과 협응하여 심양을 공격할 셈이네.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들이 날 도와야겠네.”
차충량과 차예량은 그러한 일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아무 말이 없이 낯 색이 다소 밝아졌으나 장판수는 그렇지 않았다.
“명나라는 이미 썩어 쓰러지기 일보직전입네다. 그런데 어찌 그들을 믿을 수 있겠습네까?”
장판수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오자 먼저 임경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본시 장판수는 의주로 향하던 도중 임경업이 보낸 사람과 함께 오던 차충량과 마주쳐 그의 소개로 임경업과 대면할 기회를 얻은 터였다. 이런 판국에 한낱 초관 따위가 대의명분을 망각한 어쭙잖은 말을 한다고 여긴 임경업으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거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차충량이 먼저 장판수의 말을 되받아 쳤는데 이는 딱히 임경업의 눈치를 보아서가 아니라 그 역시 자신이 가진 평소의 지론과 장판수의 말이 상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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