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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전경. '강정구 교수 사건'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검찰은 마치 상가집과 같은 분위기다.
ⓒ 연합뉴스 황광모

"우리 지금 상중(喪中)이잖아요."

19일 한 대검 간부에게 "넥타이 색깔이 좀 어둡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돌아온 말이다. 누가 죽었나? 아니다. 검찰총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를 빗댄 농담이다.

'아버지와도 같다'는 검찰총장이 갑자기 사퇴를 했으니 그런 심정이 될 만도 하겠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반발해 김종빈 총장이 사퇴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그 여파가 검찰 곳곳에 보이지 않게 남아 있는 셈이다.

이 대검 간부는 "나 말고도 평소 붉은색 넥타이를 즐겨 매던 모 검사도 오늘은 검은색 비슷한 것을 매고 왔더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그럴 것이냐'는 질문에 "가만 있어보자, 엊그제 가셨으니 하루, 이틀… 그래도 3일장은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검찰총장 없어 재벌총수 소환 어렵다더니...

▲ 지난 17일 오후 대검청사에서 열린 검찰총장 퇴임식에서 한 직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이진욱
검찰총장의 빈 자리는 검사들의 넥타이 색깔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8일, 두산그룹 비리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황희철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검찰총장이 공석이어서 박용성 두산 회장의 소환일자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 기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앞서 황 차장은 20일 전후로 박 회장을 소환해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황 차장의 말은 이랬다.

"박용성 회장의 소환 일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아직 검토 중이다. 검찰총장이 유고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고려하고 있다. 수사는 일선 수사팀이 하는 것이지만 재벌 총수의 소환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이 안 계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총장 없어도 대검 차장검사가 있지 않느냐'며 기자들이 의아해했지만 황 차장은 여전히 "총장이 안 계신다는 게 검사들로서는 부담이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집에서 일을 할 때도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없으면 일을 제대로 하기가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황 차장의 발언이 보도되면서 따가운 여론이 빗발치자 황 차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 박용성 회장의 소환 일정을 전격 발표했고, 실제 박 회장은 예정됐던 20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검찰총장의 공석은 공식업무 뿐 아니라 내부 행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초 18일부터 20일까지는 검찰의 추계 체육행사 주간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날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바람에 이들은 예정된 행사를 급하게 다음 주로 미뤘다. 검찰 관계자는 "아무래도 (총장이) 나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끼리 체육행사를 하면서 즐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검찰의 한 사무직 직원은 "우리가 지금 상중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3일장은 끝났다... 차기 검찰총장은 누구?

▲ 지난 17일 오후 김종빈 검찰총장 퇴임식에 참석한 대검 간부들이 굳은 표정으로 김 총장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3일장은 이제 끝났다. 잔뜩 숨죽였던 검찰 내부가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옛 안기부 'X파일' 사건, 삼성 에버랜드 편법증여 의혹, 두산그룹 비리 사건 등 산적한 현안을 맡고 있는 수사팀도 관계자들을 소환하는 등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후임 검찰총장이 누구냐는 것이다. 지난 3일 동안 내색은 못했지만 속으로야 '불경스러운' 생각은 누구나 했을 법하다.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기는 했지만 청와대는 20일 인사추천회의를 열고 검찰총장 후임 인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 주 중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검찰 내부인사는 물론이고 외부인사까지 발탁하는 안이 모두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부터 검찰 안팎에서는 '천정배 장관이 누굴 밀고 있다' '누가 노무현 대통령과 가깝다'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안 될 것이다'는 등의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일단 천 장관은 "검찰이 새로운 시대 흐름을 인식하고 거기에 맞춰서 업무와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겠다는 뚜렷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해놓았다. '개혁' 인사여야 한다는 말이다.

검사들이 귀를 쫑긋 세우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검의 한 간부는 "앞으로 검찰의 모습은 순전히 누가 후임 검찰총장으로 오느냐에 달려 있다"며 "검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상복(喪服)을 벗은 검사들이 새 옷을 입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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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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