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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영화 발전과 함께 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읽어 보았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을 절대적으로 금지한다. 법을 만들어서도 검열을 할 수는 없다. 영화도 언론∙출판의 자유를 누린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검열을 하는 법률 역시 위헌이다.

그렇다면 검열이란 무엇인가. ①표현물의 제출의무가 있고, ②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③작품이 발표되기 전에 이루어지며, ④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이 있어 통과하지 않을 경우 의사표현이 금지된다면,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검열이다. 영화법상 '사전심의제', 영화진흥법상 '등급보류제' 모두 이런 연유로 위헌판단을 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껏 본 위헌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반면, 이번에 다룰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서는 영화계에서 적지 않은 불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검열인지 여부를 고려하는 기준은 동일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합헌이었기 때문입니다.

MBC, 방영금지 가처분에 위헌소원 제기

사건은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방영금지가처분 일부인용판결에서 시작됩니다.

1999년 4월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피디수첩>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에 대한 이단성 문제, 당회장과 여신도들 사이의 성추문 및 도박문제 등을 방영할 예정으로 제작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만민중앙교회와 당회장은 위 내용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고, 이와 관련해 성추문 관련 부분의 방영을 금지한다는 일부 인용 판결이 선고됩니다.

이 판결로 방송 내용의 일부를 내보낼 수 없게 된 MBC는 방송에 대하여도 가처분을 허용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소원을 제기하게 됩니다. 법원이 프로그램의 방영을 막을 수 있게 된다면, 헌법 제21조 제2항의 사전검열에 해당하여, 방송의 자유를 포함하는 언론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그 때 그 사람들>, 다큐멘터리 부분 상영금지 판결 받다

▲ <그때 그 사람들>
ⓒ MK 픽쳐스
영화계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집니다.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 이 영화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 판결은 큰 파문을 낳습니다. 영화계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당시 가처분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은 "영화 중 다큐멘터리 부분을 삭제하고 상영하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재판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여색을 밝히고,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 가요를 즐겨 듣는 것으로 묘사된 부분 등을 문제 장면으로 지적했습니다.

결국 극장 개봉 시 일부 장면이 검게 처리되며 3분50초 가량의 다큐멘터리 부분이 잘려나간 채 상영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명했다는 점, 가처분 신청 원고가 아들 박지만씨라는 점에서 관심이 더 증폭되었습니다. 허나 이런 사정은 논점을 흐리고 분산시킨 면이 있습니다.

유사사건은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는데, 그 때마다 논란을 빚는 내용은 달라질 것이고 다투는 사람 역시 다른 인물일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고 그 책임은 어떠해야 하는지 두 가지 쟁점으로 압축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을 짚어내는 것이 문제를 푸는 첩경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MBC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돌아가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의 가처분은 검열이 아닐까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가처분 판결은 검열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보았을까요. 이는 검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중에 '행정권'이 주체인가 하는 부분과 관련됩니다.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방영금지가처분은 비록 제작 또는 방영되기 이전, 즉 사전에 그 내용을 심사하여 금지하는 것이기는 하나, 이는 행정권에 의한 사전심사나 금지처분이 아니라 개별 당사자간의 분쟁에 관하여 사법부가 사법절차에 의하여 심리, 결정하는 것이므로, 헌법에서 금지하는 사전검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개념상 뚜렷하게 나뉩니다. 삼권분립 원칙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도 이 점에 착안하여 검열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사법부는 행정권과 구분되니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라는 요건에서 탈락한다는 뜻이지요.

이런 결정에 대해서는 형식적 논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기계적인 사고로 퇴행적 결론을 도출했다는 비난이 가해지기도 합니다. 금지당하는 입장에서는 행정부든 사법부든 모두 한통속의 '국가' 권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국가 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면 검열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행정권과 사법부를 구별 짓지 않고 뭉뚱그려 '국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헌재결정에 수긍이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당사자가 소를 제기했을 때 비로소 절차가 개시된다는 점도 검열이 아니라고 결론짓는 데 일조를 합니다. 행정권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인(私人)간의 분쟁을 해결한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는 것입니다. 민사소송의 가처분절차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헌재,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검열이 아니라고 해서 곧바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없다고 매조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않아야 하고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점도 무리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일정한 표현행위에 대한 가처분에 의한 사전금지청구는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나 사생활 등 인격권 보호라는 목적에 있어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보호수단으로서도 적정하며, 이에 의한 언론의 자유 제한의 정도는 침해 최소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호되는 인격권보다 제한되는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없어 법익 균형성의 원칙 또한 충족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고 언론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헌법 제21조 제4항에서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헌법적 한계를 특별히 두고 있는 점을 상기해보더라도, 언론의 자유가 인격권보다 우월하다고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또한 법원에 의한 가처분제도가 합헌이라고 해서 법원이 항상 가처분을 인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일반 가처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이라는 요건이 소명되어야 하는데, 특히 금지청구권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열을 금지한 헌법 제21조 제2항의 취지 등을 참작하여 엄격하게 심사합니다.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라는, 충돌하는 두 법익을 비교·형량 하게 됩니다.

공은 결국 법원으로 넘어가고

헌법적 차원의 논쟁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변경되지 않는 이상 언론·출판·영화 등에 대한 금지가처분 결정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 때마다 격론이 재연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더욱이 영화는 '예술작품'이라는 점에서 극한 갈등을 잉태합니다. 일부를 가위질 하더라도 영화 전체의 맥락이 달라지기 십상입니다. 예술혼을 법으로 재단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창작인의 자존심은 종종 법관을 선무당으로 몰아붙이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합니다.

▲ <실미도>
ⓒ 한맥영화
형평성 시비도 있습니다. 가령 실미도 북파 공작 훈련병의 유족들이 영화 <실미도>의 제작사를 상대로 냈던 가처분 신청은 기각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법원은 결정문에서 "역사적 사실 그대로 제작된 것처럼 기재된 광고문안을 삭제하라"고 했을 뿐, 영화의 특정 장면은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실미도> 판결은 <그 때 그 사람들> 사례와 비교되며 회자되었습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명제는 이론적으로 선명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반비례로 흐려집니다. 그 기준이 뿌연 안개처럼 잡히지 않고 떠다닐 때 고민은 깊어만 갑니다.

영화는 세상을 말합니다. 그 세상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간혹 그들은 자신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상처를 내보입니다. 다툼이 벌어집니다. 싸움을 말릴 묘책은 모호한데 각 당사자 뒤편에는 거대한 응원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응원소리는 커져가고 메아리칩니다. 그 소리가 지혜를 모으는 울림으로 퍼져가길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에서 다룬 헌법재판소 결정은 2001.8.30.2000헌바36 민사소송법 제714조 제2항 위헌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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