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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른 당 의원들이 앞에 왔다 갔다 하신다. 지나가시면서 건강을 챙기는 인사만 하시고…."

단식 14일째(9일)를 맞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안부 인사보다 "쌀비준안 처리를 연기하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말이 더욱 아쉬웠던 모양이다.

복도 바닥에 앉아있는 관계로 '지나치는 의원들과 마주치면 민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 의원은 "그렇지 않다"면서도 "동료 의원들에게 제 개인보다도 농업 전체 문제를 호소하기 위해서 이렇게 (단식을) 하는데, 달을 손가락질하는데 자꾸 손가락만 보고 걱정을 해주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9일 오후 5시께 찾아간 강 의원은 먼저 도착한 타 언론사와 인터뷰 중이었다. 기자는 강 의원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세 번째 취재진이었다. 인터뷰 중간에도 보좌관의 핸드폰으로 강 의원과의 만남을 요청하는 기자들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강 의원은 계속된 인터뷰 요청이 멋쩍은 듯 "갑자기 오늘따라 언론에서 막 이렇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단식 들어간 이후 인터뷰 요청 쏟아져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 의원이 뉴스 메이커가 된 이유는 지난달 2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쌀협상 비준안이 통과된 이후 본회의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청 2층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기 때문.

강 의원은 혈당지수의 마지노선인 60 가까이 떨어지고, 몸무게도 8kg이나 빠진 상태다. 인터뷰가 시작된 이후 15분 정도 지났을 때 옆에 있던 보좌관이 중단을 요청하는 싸인을 보낼 만큼 강 의원의 기력은 오후에 급격히 떨어졌다.

강 의원 옆에는 생수병과 감잎차를 데워 넣은 보온병이 나란히 있었다. 강 의원은 곡기를 끊은 이후 수분과 죽염에만 의존하고 있다. 보좌관들은 강 의원의 옷 몇 가지를 담은 여행용 가방과 아침체조를 위해 '풍욕' 순서를 녹음한 라디오를 세종대왕 동상 뒤에 숨겨놓았다.

지난달 통외통위 회의장 앞에서 한복 두루마기 앞섶이 풀어진 채로 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몸을 던졌던 강 의원은 이제 세간 살림까지 다 내보인 셈이다.

강 의원은 "일부 국회의원이 이런 모습을 보여서 안 좋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농민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안면이나 체면 볼 상황이 아니라서, 체면 불구하고 이렇게 몸부림 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쌀협상 비준안 본회의 통과는 대세"

강 의원의 단식농성에도 불구하고 쌀비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찬성으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강 의원은 이에 대해 "대세는 그렇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DDA 협상 이후로 비준안 처리를 연기하자'는 우리의 주장이 충분한 명분을 갖고 있고, 옳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이어 "DDA 협상결과를 보지 않고 비준안을 처리하면, 관세율이 낮은 물량이 2만5백불 늘어날 수밖에 없고, 외국의 가금류 등이 무분별하게 수입돼 우리 농업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지금 정부가 내놓은 농민구제 정책도 너무 피상적, 단기적 대책에 불과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국회-농민단체간 3자 회의기구를 만들어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도중 본청으로 들어오는 의원들은 바쁜 듯 강 의원 앞을 그냥 지나가거나 핸드폰 통화를 하면서 강 의원 쪽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강 의원은 "지금까지 단식을 몇 번 해봤지만, 이렇게 오래 한 적은 처음"이라며 "복도 공기가 탁해 가끔 머리가 아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강 의원은 하루 일과를 거의 농성장에서 보낸다. 동상 옆에 간이침대를 마련해 잠을 자고, 새벽 4시께 일어나 의원회관에서 씻고 7시 '등원'해 농성장을 지킨다.

▲ 강기갑 의원이 의료진으로부터 혈압체크등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기갑 의원이 단식하게 된 이유

▲ 민주노동당 의원단 9명과 보좌관 및 당직자들은 지난달 27일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했으나 국회 경위들에게 막혀 무산됐다. 비준동의안 의결 소식을 들은 강기갑 의원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민주노동당은 16일 쌀협상 비준안의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연내처리'를 조건으로 12월 열릴 도하개발어젠더(DDA) 협상 이후로 비준안 처리 연기를 제안하고 있다.

지난 4일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농촌 지역을 지역구로 둔 여야 의원들과 농민단체 대표들은 간담회를 열어 ▲정부의 쌀 비준안 11월 처리 방침 철회 ▲DDA 협상이 끝나는 11월 말까지 비준안 처리 보장 ▲쌀 협상 관련 대토론회 개최 등에 합의했다.

민주노동당은 이외에도 농민대표-정부-국회가 참석하는 3자 협상 테이블을 조속히 구성할 것을 국회에 제안했고, 비준안 처리에 따른 농업 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내 공동 논의테이블 구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지난 8일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을 방문한 권영길 대표는 비준안 처리 연기를 거듭 제안했지만 정 의장은 "쌀협상 비준안 문제는 국제사회의 신뢰 때문에 입장을 바꾸기가 어렵다"고 반대 견해를 밝혔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지난달 27일 쌀협상 비준안이 국회 통외통위에서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과 대치하다 끝내 실패했다. 강기갑 의원은 본회의를 앞두고 비준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단식농성에 들어가게 된 것.

비준안이 통과되면 쌀 시장 '완전 개방'을 의미하는 관세화를 오는 2014년까지 10년간 추가로 연장하고, 쌀 수입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는 '쌀수입 허가제'를 더 유지하게 된다. 대신 미국과 중국 등의 외국쌀을 지난해 우리 나라 연간소비량의 4.4%인 20만 5천톤에서 2014년까지 40만8천700톤까지 늘려서 수입해야 한다.

한편 농민단체들은 본회의 의결에 맞춰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는 대규모 상경 투쟁을 예정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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