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0일 오전 열린 상임운영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쌀 비준안 처리시한을 연장할 것을 검토해 보자고 했다. 이에 김무성 사무총장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15일째 단식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도 고려돼야 한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한나라당의 찬성으로 16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무난하게 통과될 것 같았던 정부 여당의 쌀 비준안 처리에 적색 경고등이 켜졌다. 반대로 그간 소 닭 보듯 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정책 공조의 단초가 보이는 듯했다.
쌀 비준안은 한나라당이 그 목소리를 대변했던 경제계에서 빨리 처리하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박 대표의 비준안 처리 연기 검토 발언은 '마의 40%' 지지율을 돌파한 뒤 이를 50%로 끌어올리기 위한 '광폭 정치'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분석도 나왔다.
그런데 11일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주요당직자 회의 발언은 이 같은 전망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강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우리당에게 16일 본회의에서 쌀 비준안 문제를 북한인권 결의안과 함께 처리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이어 "여당이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정부 참여 촉구 결의안을 상정한다면 쌀도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어찌보면 농민을 볼모로 삼아 북한 인권 결의안을 통과시키자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이다. 이 때문인지 한나라당이 하루만에 본심을 드러낸 것이란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진심은 무엇일까?
하지만 한나라당은 강 원내대표의 발언이 기사화되자 서둘러 '실언'이라며 주어담았다.
나경원 한나라당 공보부대표는 11일 오전 국회 기자실에 들러 "강 원내대표가 (듣는 사람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게 말했다"며 "한나라당은 쌀비준안과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 참여 촉구안을 연계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나 부대표는 "쌀 비준안은 14일 아침에 의원총회를 열어 처리방침을 논의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강 원내대표의 실언인가, 아니면 본심인가? 잠깐 동안의 이 같은 혼선은 사실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사안이다.
중요한 것은 오는 14일(월) 한나라당 의총에서의 결정이다. 한나라당이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계의 의중을 거스르고 '농심'을 좇는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쌀 비준안 처리를 놓고 손을 맞잡을 파트너가 열린우리당인지, 아니면 민주노동당인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손을 맞잡는다면, 박 대표의 10일 발언은 농심의 눈치를 살피면서 농촌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쇼'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