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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는 '교육'과 연관된 헌법재판 사례를 읽어보려 합니다.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 일대 폭풍이 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반 대립이 명징한 사안인데도 구보씨는 좀처럼 입장을 정하기기가 쉽지 않네요. 헌법상 교육 쟁점을 다룬 결정례들을 읽으면 나름의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첫 번째 사례는 '영재교육'과 맥락이 닿아 있네요. 종종 천재성을 지닌 영재가 대중매체를 타는 일이 있습니다. 근래에는 8살 어린이 송유근군이 대학에 입학하며 매스컴을 달군 바 있죠. 송군은 초등학교와 중ㆍ고교 과정을 9개월만에 마치는 기록을 세웁니다.

송군이 초스피드로 대학에 들어가기까지는 초등교육법과 관련한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 입학해 3개월만에 졸업을 했는데, 교육인적자원부와 도교육청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입학 자체를 취소해 버립니다. 이에 송군 측은 소를 제기하며 다투었고 결국 승소를 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죠. 험난한 법정투쟁의 파고도 헤쳐야 했던 것입니다.

"연령만으로 취학기준 정한 것 위헌" 주장

구보씨가 살펴 본 이번 헌법재판 사건에도 능력이 뛰어난 어린이가 등장합니다. 당시 만 4세 9개월이었는데, 청구인의 주장에 따르면 "근 2년간 유치원에서 수학하여 집단생활을 경험하면서 언어교육과 그림, 음악, 유희, 회화, 수기 등의 표현력을 배워 왔고 한글해독은 물론 매일 일기까지 작성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 왔기 때문에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받을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교육법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죠. 법은 매년 학년이 시작되는 날 현재 만 6세가 된 어린이만을 취학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 침해인가

연령을 제한하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헌법조문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제31조에서 교육에 관한 내용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④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⑤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⑥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청구인은 제1항을 지목합니다. 특히 '능력에 따라'라는 어구에 주목했습니다.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라 함은 재능이나 그 밖의 일신 전속적인 능력(정신적·육체적 능력)에 따른, 즉 정신적·육체적 능력에 상응한 적절한 교육을 받을 권리"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 교육법이 위헌이라는 추론에 이르게 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게 하는 법률은 헌법 제31조 제1항에 반한다고 주장합니다.

'차별하여'가 아닌 '차별없이' 교육 받을 권리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제31조 1항을 2항 3항등과 연계하여 해석하였는데 '의무교육제도'라는 틀 안에서 접근하였습니다.

헌법 제31조 제1항에서 말하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란 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교육을 받을 전제조건으로서의 능력을 갖추었을 경우 차별 없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보장된다는 것이지 일정한 능력, 예컨대 지능이나 수학능력 등이 있다고 하여 제한 없이 다른 사람과 차별하여 어떠한 내용과 종류와 기간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다.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청구인의 주장대로 이해한다면 의무교육제도를 실행함에 있어 연령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수학능력' 기준으로 의무교육대상자를 확정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일종의 선발시험 또는 자격인정시험을 부과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일일이 시험 등을 거쳐 의무교육대상자를 선정하게 된다면 초등교육 이전에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의 여부, 즉 선수학습 유무에 의해 입학이 결정되고, 결국 이는 보호자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아동의 경우 도리어 의무교육에서 탈락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시험 결과 수학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영원히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또는 성인의 연령에 달하여 초등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고, 이것이 오히려 교육을 받을 권리 및 의무교육제도의 기본취지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명백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남은 숙제, 입법정책의 문제

구보씨는 이러한 결론을 읽고 큰 무리 없이 수긍하였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은 결정문 말미에 덧붙여진 방론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아동의 성장발달 속도가 빨라지고 조기교육이 보편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만 6세 이하로 낮추는 문제, 기준연령 미달이지만 지적으로 성숙한 아동을 위한 조기입학제도의 도입문제, 지적으로 우수한 아동들을 위한 특수영재교육제도 운영문제 등도 마땅히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되나 이는 입법자가 우리의 시대상황과 경제·문화여건 등 제반사항을 고려하여 정할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합헌의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다고 해서 법률이 소명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은 법률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 요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제도를 모색하려는 국회와 사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견해를 결정문은 '입법정책의 문제'라는 문구에 축약하여 담고 있네요.

영재교육 욕구는 커져만 가고...

의무교육제도는 연령주의를 취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일단 조기입학을 불허하게 됩니다. 능력과 무관하게 경직되고 획일화된 교육을 하는 폐해를 낳을 수 있죠. 영재교육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가 샘솟게 됩니다.

'우리 아이가 신동이 아닐까'하는 고민, '어떻게 우리 아이를 영재로 키울 수 있을까'하는 걱정, 부모들의 관심사를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는 역시 사교육 시장인 것 같습니다. 대기업은 초일류 인재를 키워내겠다며 영재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심지어 유명 백화점 문화센터들도 앞 다퉈 영재교육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각종 영재학교 설립계획, 신동육성 프로그램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습니다. 영재아동 발굴 의무를 강화하고 학습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영재교육진흥법이 통과되었고 영재학교에서 진급·졸업하는 데 학년을 제외하고 학사운영을 별도로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부작용도 드러납니다. 영재학교를 대비한 학원이 생겨나 과열화되는 경향이 보고되기도 합니다. 자기 아이를 최고로 키우겠다는 부모들의 욕심은 '과잉학습 증후군'으로 이어져 사회 부적응아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영재교육 비율 확대는 세계적 추세

그럼에도 영재교육 대상자 비율확대는 세계적 추세라고 합니다. 싱가포르는 1%에서 3%로, 이스라엘은 3%에서 5%로, 영국은 5%에서 10%로 강화했고, 미국은 20여 개 주에서 15%의 학생을 영재교육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0.28%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보씨는 이런 숫자의 간극이 본질적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육대상자는 확대는 시간문제입니다. 하나 둘 영재교육기관이 설립되고 있으므로 입학생은 늘어갈 것이고 프로그램은 확충될 것입니다. 외국과 '수의 차이'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데 우리 사회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전인교육 평등교육 가치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문제는 영재교육제도가 우리 문화토양과 어긋날 때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것인지에 있습니다. 특히 전인교육 평등교육 가치와 충돌시 매끄럽게 풀어내야 합니다.

영재교육은 잠재력을 조기에 계발해 특정 분야의 창의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로 길러내는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기본적인 능력과 자질을 함양하는 보편화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전인교육'이라는 신화적 철학이 존재합니다. 이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획일화 도그마로 왜곡되어 굴절되기도 합니다. '나이에 걸맞게'라는 기준이 전방위에서 강요될 때 영재교육은 표류할 수 있습니다.

불평등 심화의 우려도 제기됩니다. 12세까지를 '뇌의 결정적 시기'라고 부르며 대부분은 이 기간에 학습능력이 절정에 이른다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이 때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이후 능력이 달라지는 것이죠. 영재교육 확대가 불합리한 차별의 조기화로 끝나지 않도록 세밀한 기준이 담보될 필요가 있습니다.

영재교육 프로그램과 더불어 마련해야 할 제도는 패자부활 시스템입니다. 아인슈타인은 8살 때까지 열등아였다고 하죠.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이 아이에게 어떠한 지적 능력도 기대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남겼다고 합니다. 영재교육을 통해 제2의 아인슈타인을 키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릅니다. 영재교육에는 다른 이의 대기만성을 가로막지 않으려는 배려가 스며 있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에서 다룬 사건은 <헌재 1994.02.24. 93헌마192, 판례집 6-1,173,173-18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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