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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7일 인도에서 온 참가단이 연행하기 직전 홍콩 경찰에게 장미를 전달하고 있다.
ⓒ 오도엽
▲ 빵과 음료를 들고 찾아 온 홍콩 대학생들이 한국 농민을 격려하는 글을 써서 펼친다.
ⓒ 오도엽
지난 12월 21일 새벽 4시 30분. 다시 한국에 왔다. 흰 눈이 내린다. 지금 홍콩 감옥엔 11명의 한국인이 남아 있다.

몸만 한국에 돌아왔다. '꽁 이 싸이 무(抗議世舞)!', 홍콩 거리를 메웠던 외침이 눈발을 따라 메아리친다. 'DOWN DOWN WTO!' 한동안, 아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농민들과 함께 했던 9박 10일의 현장.

태극기를 들고 찬 바닷물에 뛰어 들고, 오체투지로 삼보일배를 하고, 방패와 곤봉 앞에 맨 몸뚱이, 머리를 들이밀고 가려했던 WTO 각료회의장. 결국 막힌 길은 뚫리지 않고, 한국 농민은 홍콩 감옥에 두 손목이 묶인 채 가야 했다.

▲ 12월 13일 태극기를 들고 각료회의장을 향해 바닷물에 뛰어든 농민들. 뒷 건물이 각료회의가 열리는 컨벤션센터다.
ⓒ 오도엽
▲ 홍콩에서 구속되어 재판 계류 중인 경남 함안 이형진 농민
ⓒ 오도엽
▲ 오체투지로 각료회의장으로 가는 순천군 농민회 송완섭씨
ⓒ 오도엽
▲ 2km 삼보일배를 하며 홍콩 거리를 행진했다.
ⓒ 오도엽
어깨동무를 하고 아스팔트에 드러누운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도연맹 소속 농민 40명과 전농 사무총장이 마지막으로 연행된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갈등했다. 함께 연행될 것인가, 빠져나갈 것인가. "I'm Korean"을 외치며 함께 연행해 달라고 외쳤다. 홍콩 경찰들은 "Reporter, Out"이라며 나를 밖으로 민다.

노트북과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다 빼앗기더라도 이 순간 농민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다. 목에 두른 PRESS 명패를 벗고 '홍콩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한국민중투쟁단' 목걸이를 내밀었다. 내 두 손목도 묶였다.

▲ 농민들의 행진을 최루액을 쏘며 저지하는 홍콩 경찰
ⓒ 오도엽
▲ 홍콩 경찰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 오도엽
▲ 아스팔트에 누워있는 농민을 연행하고 있다.
ⓒ 오도엽
언론에서 한국 농민들의 투쟁을 보도하며 가려진 부분이 있다. 홍콩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과 지지다. 유인물을 들고 거리에 나가면 빵과 물을 몇 박스씩 사다주고, 식당에 가면 밥값을 대신 지불하고, 병원에선 다친 농민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백지에 한국농민을 지지한다고 적어 거리에 나오고, 빵빵 경보기를 울려 지지를 표현하는 택시 기사, 손가락으로 V를 그리던 트럭 기사, 농민을 연행하는 경찰에게 항의하던 홍콩 시민들.

마치 한국에서 87년 6월 항쟁을 보는 것 같다. 나도 숙소로 돌아가다가 근처 식당에서 맥주를 시켜 한잔 마시고 돈을 지불하려고 했더니 사장이 '우리는 친구다'라며 돈을 받지 않는다.

▲ 집회장 곁엔 홍콩 시민들이 찾아와 끊이지 않고 손뼉을 친다.
ⓒ 오도엽
한국 농민은 폭도가 아니라는 걸 홍콩 시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농민들과 함께 한 홍콩에서 9박 10일. 더 이상 가슴에 묻어둘 수 없다. 눈물과 웃음이, 투쟁과 놀이가, 세계 민중들과 어깨 걸고 진행된 홍콩의 생생한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신문 <참말로>에 함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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