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언론의 역할과 책임은 언제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해처럼 언론의 사회적 영향과 윤리논란으로 홍역을 앓았던 때도 없었을 것이다.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보도는 한국 언론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신문과 방송은 객관성에 의거해 진실을 취재하고 보도하기보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자사이익을 챙기고 상대 언론을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황 교수의 부상과 몰락, 우리 사회가 겪은 혼란은 그 자체로 '미디어 사건'이었다. 그러나 '황우석 논란' 이전부터 언론의 상업성과 편파보도 문제는 꾸준히 제기된 주제이기도 하다. 광고주나 사회 분위기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언론을 갖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다른 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세움으로써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도리어 상업언론과 정치권이 '개혁'의 이름으로 도리어 공영방송을 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지금 공영방송을 말하는가
지난해 11월 25일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공발연)'가 출범했다. 학자와 법률가 70여 명을 주축으로 119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 단체는 공영방송의 공익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창립선언문에서 "공영방송이 권력, 자본, 사회집단으로부터 독립한 국민의 방송이어야 함에도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은 중병에 걸린 공영방송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출범 이유를 밝혔다.
기존의 언론개혁 운동에 대해서는 반감을 보이던 보수언론도 이 단체의 발기에는 초기부터 큰 관심을 표명했다. 신문법부터 공동배달제, 세무조사까지 '언론탄압'으로 간주하며 언론개혁 시민단체들을 "정권의 사주를 받은 좌파조직"이라고 비난하던 신문들이 태도를 바꾼 것. 그들은 '공발연' 출범에 대해서는 "방송을 되찾기 위해 국민이 나섰다"며 일제히 환호했다.
한국의 공영방송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으며, 이를 위한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어느 측면이 개선되어야 하고, 어떤 장점을 살려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
'공발연'은 출발부터 한 가지 오류를 범했다. 기존 정치권이나 언론이 보였던 "국민 독점"의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개인이나 단체의 입장을 표명할 자유가 있으며, 그 견해는 소수라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입장을 '국민의 뜻'과 동일시하는 데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발연'이 창립선언에서 "국민은 중병에 걸린 공영방송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언론이 "반국민적 공영방송을 개혁하기 위해 '국민'이 나섰다"고 주장한 것이 바로 이 "국민독점"의 오류에 해당한다. 그 단체와 언론이 제기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국민의 뜻'에 대한 의구심은 한층 더 커진다.
공영방송과 '국민의 뜻'
공발연은 공영방송의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개혁을 표방하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해석하는 데 대해 일방적인 관점만을 주입하고 있다"며 "일부 제작자가 정파적 이념적 이익을 위해 편파 방송하는 것을 마치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으로 강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보수언론이 '공발연'의 개혁내용 가운데 하나인 상업주의보다는 '편파보도'를 문제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신문이 지난해 11월 22일 사설과 칼럼 등으로 비중 있게 보도한 '공발연' 관련기사의 제목을 살펴보자.
"방송을 되찾기 위해 국민이 나섰다" <조선일보>
"편파·방만한 공영방송 시청자가 감시한다" <중앙일보>
"공영방송 편파보도 바로잡겠다" <동아일보>
"NGO가 견제하는 공영방송 편파성" <세계일보>
보수언론이 상업주의보다 편파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방송의 상업성 문제를 제기하면 공영방송인 KBS, MBC, EBS보다 더 얼굴을 붉혀야 할 상업방송이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편파성'을 목소리 높여 비판해온 한국의 언론들은 상업방송인 SBS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왔다. 오히려 상업주의로 비판받던 SBS에 대해 방송위원회가 재허가 심사추천을 보류하자, 보수언론은 '방송죽이기'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들은 상업방송이 공영방송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공영방송을 차라리 민영화시켜라'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을 보더라도, 민영방송이 공영방송에 비해 문제가 덜 심각하다고 믿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실제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탄핵정국이 마무리된 2004년 12월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는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매체 신뢰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신문과 방송 모두를 포함해 가장 신뢰하는 매체 1, 2위로 공영방송인 KBS(21%)와 MBC (14.9%)를 꼽았다. 상업방송인 SBS는 9위(2.4%)에 그쳤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KBS, MBC가 공영방송을 비판해 온 어떤 신문사보다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 <시사저널>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신뢰도 조사에서도 KBS는 방송사 가운데 신뢰도와 영향력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도 한계를 갖고 있지만, 막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국민의 뜻'과 동일시하는 것보다는 더 객관적으로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국의 공영방송과 세계의 공영방송
물론 한국의 공영방송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KBS(한국방송공사)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공영방송으로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KBS는 87년에 비로소 반민주적인 언론법 폐지와 더불어 정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방송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1994년에는 한 채널(KBS 1TV)의 광고방송을 전면 폐지함으로써 공영방송으로서 본격적인 위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다. 절대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리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한국의 공영방송은 많은 개선의 여지를 안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공영방송에 걸맞지 않은 '상업적 체질'이다. 한국 공영방송은 운용재원의 절대적인 부분을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방송의 질이 아니라 시청자의 수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이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방송의 공영성'이란 한낱 허황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공영방송은 '공익적 필요'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외세와 독재 권력이 국민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관제방송으로 시작했다. 더군다나 KBS가 1960년대 광고방송을 시작하고, 이후 상업방송인 동양방송(TBC)과 문화방송(MBC)이 가세하면서 한국의 방송은 공·민영을 가리지 않고 시청률 경쟁에 목숨을 거는 독특한 상업적 전통을 만들어 냈다.
영국은 애초부터 전파의 공공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공익을 중심으로 방송이 발전돼 왔으며, 독일은 나치정권에 의해 미디어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경험을 겪은 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영방송을 설립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국의 모델을 받아들였다. 프랑스, 호주, 일본 역시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방송이 시작되고 발전되었는데 상업주의에 맞서 방송의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신료가 공영방송 재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영국, 일본, 독일과 달리 한국은 수신료와 광고수입이 4대 6에 이르는 지극히 '상업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영방송 가운데 세계 최고의 광고비율이다. 이 재원구조로는 선정적 프로그램을 통한 시청률 경쟁과 광고주 비위맞추기라는 상업방송의 근본적 한계를 피할 수 없다.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최근 황우석 논란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이중 잣대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이뤄내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재정구조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주장하거나, 심지어 보도내용에 반발하며 방송사를 찾아가 '사장 나오라'고 호통을 치는 웃지 못 할 일이 한국사회에 일어나고 있다.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 정치권과 미묘한 관계에 있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이 보도 내용을 간섭하거나, 공영방송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한때 BBC의 보도에 대해 '반미적'이라고 주장했다가 문제가 되자, 보도내용을 비판하거나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부랴부랴 발뺌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한국정치인들의 태도는 대단히 당당하다.
KBS의 공영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야당과 보수언론도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광고방송 비율을 줄여서 공영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원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들은 공영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있어서도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공영방송의 시청률 경쟁을 '상업주의'라고 비판하다가 낮은 시청률을 보이면 "위기에 빠진 방송"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국민을 가르치려 든다"고 비판하고 오락프로그램이 많아지면 "공익을 저버렸다"고 비난한다. 적자보고서를 제출하면 '방만한 경영 탓'이라고 꾸짖고, 광고비율을 높이면 "공영방송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다"고 힐난하면서도 수신료 인상은 말도 꺼내지 못하도록 한다.
다른 나라 사례에서 배울 것과 버릴 것
올해로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은 45주년을 맞게 된다. 또 2007년엔 한국에서 방송전파가 발사된 지 80년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공영방송이 '공영'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혹은 불행히도) 전 세계의 방송은 한국의 방송이 배우거나 피해야 할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유럽의 다수 나라와 아시아 일부 국가처럼 공영방송체제 중심으로 발달된 곳이 있는가 하면, 미국처럼 완전히 상업화된 방송체제를 가진 곳도 있다.
방송이 '상업방송'의 동의어로, 그리고 시청률이 '성공'의 동의어로 인식돼 가는 현실에서 공영방송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겨보는 것은 방송이 '절망'의 동의어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모두 8회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가 어떻게 공영방송을 시작하고 발전시켜 왔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국 공영방송이 나아갈 길을 찾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