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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대신 눈꽃들이 피어 나고 하얀 눈이 모든 것들을 덮고 있습니다.
봄꽃 대신 눈꽃들이 피어 나고 하얀 눈이 모든 것들을 덮고 있습니다. ⓒ 조태용
자동차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눈이 오니 짜증이 납니다. 길이 미끄러워 빨리 가지 못하는 탓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어른들은 일부러 눈이 없는 곳을 찾아서 걷지만 아이들은 반대로 눈이 많은 곳을 찾아서 걷습니다. 학교에 한자 학습을 하러 간다는 초등학생 아이는 눈이 와서 신난다면 좋아합니다.

돌이 많은 곳에는 돌담이 흙이 많은 곳에 토담이 있는 것이 조화로운 모습입니다.
돌이 많은 곳에는 돌담이 흙이 많은 곳에 토담이 있는 것이 조화로운 모습입니다. ⓒ 조태용
골목을 걷다 보니 작은 돌담길이 나타납니다. 구례읍내에도 보기 드문 돌담길입니다. 하나하나 돌을 쌓아 만든 담은 그것만으로도 예술적 향취가 묻어납니다. 산이 많은 구례에는 이런 돌담길이 많이 있지만 골목 전체가 돌담인 곳은 구례읍내에는 흔하지 않습니다. 돌이 많은 곳에는 돌담이, 흙이 많은 곳에 토담이 있는 것이 조화로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여기 저기 모두 콘크리트 벽이 늘어납니다.

가끔은 나무로 만든 담도 있고 특이한 재질의 담도 있지만 모두 어디에서나 가능한 표준화된 것들입니다. 표준화, 규격화는 산업화와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들입니다. 그래야만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규격화된 상품은 세계 어디서나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담은 세계 어디에서는 동일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돌로 하나하나 손으로 쌓은 담은 결코 동일하게 규격화된 제품처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런 담 자체가 반세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서둘러야 할 사람이 없는지 눈 위에 발자국 하나 없습니다. 느리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역시 돌담이 어울립니다. 조화로운 돌담 길을 걸어 나와 산으로 갑니다.

철조망에 걸려 있는 밤송이에 내린 눈
철조망에 걸려 있는 밤송이에 내린 눈 ⓒ 조태용
산길에는 철조망에 걸려 있는 밤송이가 보입니다. 그 위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산길에는 알 수 없는 동물의 발자국이 이어져 있습니다. 저도 그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 산으로 갑니다.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집니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눈입니다. 고개를 돌려 구례읍을 바라보니 검은색과 하얀색으로만 세상이 구분되는 듯합니다. 찬바람은 없고 날을 따뜻합니다. 멀리 섬진강이 보이고 지리산은 희미하게 보입니다.

눈 내린 구례읍
눈 내린 구례읍 ⓒ 조태용
지리산을 느끼려면 지리산에 가야 하지만 지리산을 전체를 보려면 지리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봐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자신이 돌아보려면 자신에서 잠시 떨어져 봐야 하듯 말입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모습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이 오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이제까지 매일 봤던 주변이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눈이 오면 산도, 강도, 길도, 지붕도, 담도, 건물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매일 보는 주변의 풍경이 달라 보여 세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눈'을 눈이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이 오는 날 우리의 주변과 자신의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토담에 내린 눈이 그림을 그린 듯 토담과 조화롭습니다.
토담에 내린 눈이 그림을 그린 듯 토담과 조화롭습니다. ⓒ 조태용
산을 내려가는 길에 만난 산 속의 작은 절 토담에 눈이 예쁘게 내렸습니다. 토담에 내린 눈이 그림을 그린 듯 토담과 조화롭습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천지에 눈이 내려 봄은 잠시 쉬어서 와야 할 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자연과 인간, 도시와 농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 할 때 세상은 행복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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