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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표지
책 겉표지 ⓒ 세종서적
나는 대중목욕탕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의 나만의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다름 아닌 졸도(?)사건 때문이다. 목욕탕에 가면 밥을 먹고 가도 기운이 딸릴 것인데 내가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벌인 그 두 번의 경우 모두 아침을 굶고 갔었다.

그런 상태에서 본전을 뺀답시고 더운 공기에 숨이 가쁘면서도 두 어 시간을 버텼는데, 마무리하고 옷장 앞에서 열쇠를 꽂다가 쓰러졌다. 그러고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20분? 30분? 나중에 나를 발견한 한 아주머니의 놀란 목소리에 잃었던 의식이 희미하게 되돌아오면서 내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오던 그 찰나.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에는 내가 '유체 이탈'을 한 듯 허공에서 쓰러진 나와 근심스런 얼굴의 아주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의식이 조금 더 돌아오자 허공의 나는 어느새 내려와 쓰러진 나와 오버랩 되었고, 아주머니는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아주머니를 올려다보는 상태를 인지하면서 확실히 의식이 깼다.

재미있는 것은 그 짧은 몽롱한 순간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내가 기운 없어 쓰러졌지만 쓰러진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고 '평온'했다.

나를 발견한 아주머니는 걱정스런 얼굴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었으나, 혹시나 해서 일어나서 이리저리 걸어보니 약간의 기운 없음 빼고는 괜찮았다. 그 후로도 목욕탕에서 그런 장면을 한 번 더 연출했다. 물론 '죽음'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경험하고 싶지 않아 목욕탕 발걸음을 끊었다.

대신 죽고 난 다음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 것은 아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아프면서 죽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많은 부분은 '잘 죽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픔 같은 것 없이 조용히 죽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좀 선하게 살면 조용히 죽을 수 있을까. 운동을 좀 열심히 하면 역시 조용히 갈수 있을까. 마음에 한점 미련 없이 원 없이 살다 가면 깔끔한 종말을 맞을 수 있을까. 명상을 오래하면 더 이상 미련을 남길 수 없는 순간 스스로 호흡을 멈추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까.

그런데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삶을 긍정하며 끝까지 의연하게 살다 간 사람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베스트셀러라는 것 때문에 뒤늦게 만나게 된 분이었다. 모리 슈워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정열적인 춤추기를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 맺기를 좋아하던 모리 교수는 78세의 어느 날 어쩔 수 없는 노환도 아니고 인생의 막바지에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그는 의사로부터 자신의 병명을 듣고 난 다음 자신의 처지완 달리 이세상이 아무런 동요 없이 잘 돌아가는 것에 새삼 깜짝 놀았다.

담당의사는 2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했지만 모리 교수는 자신의 삶이 그보다 더 짧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쓸 것인가?' 자문했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인기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그의 옛 제자 '미치 앨봄'은 우연히 TV 토크쇼에서 죽어가는 스승의 의연한 자세를 보았고 16년 만에 은사를 찾았다. 16년이라는 시간적 괴리도 잊은 듯 은사는 어제처럼 그를 기억해 주었고, 당신 삶의 마지막 프로젝트에 미치가 동참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미치는 모리 교수의 서재에서 '나홀로'수강생이 되었고 매주 화요일 그와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만남은 14회로 끝이 났는데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모리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홀로' 제자에게 질문하였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미치는 그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그러니 그 문화가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64쪽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75쪽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155쪽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165쪽


모리 슈워츠 교수는 두 번의 장례식을 가졌다. 한번은 '살아있는 장례식' 그리고 또 한번은 자신이 죽음으로써 맞이하는 장례식을 가졌다. 그는 아직 덜 아프고 사랑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 때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렀다. 보내는 사람들도 떠나는 사람도 완벽하게 '회포'를 풀 수 있는 그런 장례식을.

우리는 매일매일 살고 있지만 실은 매일매일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 죽음이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것에는 감사하나 마지막 불꽃이 꺼지기 전의 상황은 저마다 다르다. 정신적, 육체적 모두 고통으로 끝날 수도 있고, 반대로 소풍가듯 가볍게 떠날 수도 있다.

삶의 고민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영육 모두 후회 없이 소풍가듯 떠나기 위해 현재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물어보나마나 결론은 뻔한데 욕망에 찌든 인간사는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모리교수는 그 외면에 깔끔한 쐐기를 밖아 주고 떠났다. 제발 비본질적인 것에서 헤매지 말고 참된 삶을 살다 가라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살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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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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