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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05년) 제76회 학생의 날을 맞아 인터넷 청소년 언론 '1318 바이러스'에서 제작, 판매한 버튼. '쉴 시간을 보장하라'는 청소년들의 요구를 담았다.
작년(2005년) 제76회 학생의 날을 맞아 인터넷 청소년 언론 '1318 바이러스'에서 제작, 판매한 버튼. '쉴 시간을 보장하라'는 청소년들의 요구를 담았다. ⓒ 임정훈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인 누리(가명)는 고3이 된 후 학교에 나가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 평일엔 밤 10시까지, 토·일요일도 오후 5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억지 춘향이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일 12시까지 남는 이웃 학교의 희망이(가명)보다는 나은 편이다.

지난해 누리는 올해부터 한 달에 두 번씩 토요일에 쉬는 주5일제 수업이라는 제도가 전국 학교에서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에 두 번씩이나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신이 났다. 2학년이던 지난해, 월 1회의 주5일 수업이 시작됐지만 토·일요일 모두 학교에 나왔기에 2회로 늘면 한 번은 쉴 수 있겠지 하는 불안한 희망 속에서.

하지만 그것은 고3이 되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제도임을 곧 알아차리고는 친구들과 더불어 슬픔과 분노의 말들을 쏟아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주5일 수업'이라는 말은 누리에게 아주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평일에 밤 10시-12시까지 학교에 붙잡아두는 것도 모자라서 나라에서 쉬라고 정해 준 날까지도 학교로 불러내 허리 아픈 의자에 앉아 졸다가 깨다가 되풀이하며 시간을 보내게 만드느냐는 것이 누리와 친구들의 하소연이다.

'최악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이런 거다'라는 제목으로 오전 8시에 시작해서 밤 12시30분에 끝나는 학교의 일과를 고발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게시판.
'최악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이런 거다'라는 제목으로 오전 8시에 시작해서 밤 12시30분에 끝나는 학교의 일과를 고발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게시판. ⓒ 임정훈
여기에 대한 선생님이나 부모님 등 어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못해 한통속이라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한 모범답안이다.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대학만 붙어봐. 세상이 다 네 것이 될 테니. 그때까지는 '죽었습니다'하고 공부만 하는 거야. 학생이 공부 말고 할 게 뭐가 있니?"

올해 첫 주5일제 휴무일이었던 11일, 한국과 일본의 WBC 경기가 펼쳐진 지난 일요일(19일)에도 누리와 친구들은 학교에 나와 앉아 있었다. 어른들의 말처럼 그들은 정말로 공부 말고는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쟁기를 메고 밭갈이에 나선 소에게도 '쉴 참'은 필요하다.

김남주 시인(1946~1994)은 노동자들이 1주일에 사흘(금ㆍ토ㆍ일요일)은 쉬어야 한다는 뜻에서 아들의 이름을 '토일'이라 지었다고 한다. 노동의 가치 못지않게 휴식의 값어치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휴식의 가치가 소중한 것이 어디 노동자들뿐이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휴식은 절대적 요소다. 쟁기를 메고 밭갈이에 나선 소에게도 뜯은 풀을 되새김질 할 '쉴 참'은 필요하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수험생이라는 쟁기를 묶어 쉴 새 없이 논·밭갈이만 시킨다면 쟁기가 무뎌져서 쓸 수 없게 됨은 물론 마침내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이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로 최소한의 쉴 자유조차 빼앗긴 자신들의 처지를 표현했을까.

주5일 수업제 실시 이후 오히려 학생부담이 증가했다고 밝힌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의 보도자료. 주5일 수업을 편법 운영하는 학교들의 사례가 공개돼 있다.
주5일 수업제 실시 이후 오히려 학생부담이 증가했다고 밝힌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의 보도자료. 주5일 수업을 편법 운영하는 학교들의 사례가 공개돼 있다. ⓒ 임정훈
싹이 돋기 시작한 새순을 꺾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힘없고 여리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미래의 어떤 것이 그 안에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주5일 수업의 휴식이 필요한 것도 아이들 하나하나의 심장에는 저마다 다른 씨앗이 움트고 있고, 휴식을 통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울 제 나름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씨앗을 지닌 아이들에게 모두 똑 같은 꽃을 피워야 한다고 강요하며 쉴 자유마저 빼앗는 학교는 야만이요 폭력이다.

삶의 진정성을 가르쳐야 할 학교의 모습이 야만의 폭력을 휘두르는 저잣거리의 불한당과 같다면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학교가 야만스런 불한당이라는 수모를 더 이상 받지 않으려면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데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돌아오는 25일(토)의 주5일 수업부터 아이들에게 빼앗은 쉴 자유를 되돌려주는 것이 그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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