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PC라는 것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993년 대학에 들어와서입니다. 당시 XT라는, 디스켓에 운영체제(OS)를 담아서 작동해야 했던 제품이었지요. 제가 처음 PC를 구입했던 1994년 10월. 아버님이 저에게 물어보셨지요.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그때 아버지께 저는 일본산 바둑프로그램 'Go'를 보여드렸습니다. 그 뒤로 아버님께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지요.
그 당시 컴퓨터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보거나 바둑이나 오락을 하는 기계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컴퓨터에 모뎀이라는 날개를 달고, 그것이 초고속인터넷이라는 엔진까지 달게 되자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거의 만능 기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컴퓨터와 인터넷이 요리와 만나면서 우리는 감히 '넷쿡(Net-Cook)족'이라는 신인류가 탄생했음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어떻게 인터넷으로 요리를 하고 그까짓 것이 무슨 신인류냐!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조금만 시간을 내셔서 제 이야기를 들어봐 주세요!
인터넷과 요리의 만남, 넷쿡족의 탄생
전통적으로 요리 하면 어머니와 부엌이 생각나고, 아니면 외식과 식당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께서는 처음 보는 유명한 음식 아니면 그간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다고 가정할 때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마 50% 정도 되는 분들은 디지털 카메라(디카)나 핸드폰 카메라(폰카)로 사진부터 찍는다고 하실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디카나 폰카로 사진을 찍는 건 기독교인들이 식사기도를 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사진부터 찍는다고 대답하신 분들도 바로 넷쿡족입니다.
흠,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어떻게 인터넷과 요리가 만나냐구요?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집에서 어떤 요리를 하고 싶지만(예를 들어서 김치찌개나 고등어조림) 조리법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 어떻게 해결하세요?
평소 요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요리책을 구비해 놓고 보실 수도 있을 것이고, 어머니께 전화로 여쭈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조리법을 찾아보게 되지요. 많이 알려진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음식 이름을 치면 적어도 열 개 이상의 조리법이 나오니까요. 특별히 돈을 들여서 요리책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조리법을 알 수 있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요리와 인터넷의 만남이 아니겠습니까!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은 개인 미디어(블로그나 미니홈피, 페이퍼)의 발달은 요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하게 어디가 맛있더라 하는 맛집 정보 공유와 이를 이용한 상업 맛집 정보사이트('메뉴판' 같은)가 먼저 요리와 인터넷의 접목을 시도했죠. 여기에 디카 대중화와 미니홈피로 대표되는 개인 블로그가 발달하면서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미니홈피'에 올라온 사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셀카와 요리사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던 것이 한두 명 자기가 만든 요리에 대한 설명을 개인 미디어에 올리게 되고 개인신문 형태의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요리법을 공개하는 페이퍼가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현재 '페이퍼'라는 개인미디어에서 요리를 주제로 발행되는 페이퍼 숫자는 1500여 개. 이외에도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통해서 자기만의 요리법을 소개하는 곳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PDA동호회에서도 저와 또 다른 분이 요리법을 비정기적으로 강의하고 있으며, 강의까지는 아니어도 자기가 해먹은 맛있는 요리에 대한 소개들은 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지요.
가정식에서 전문 요리까지 다양한 조리법 소개
이러한 조리법 소개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하는 가정식 요리뿐 아니라 전문 요리점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까지 다양합니다.
제가 즐겨 해먹는 찜닭이나 말레이시아에서 배워온 월남쌈(베트남 요리점에서 엄청 비싸게 팔지요) 등은 집에서 해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도움이 되지요.
특히 기존 요리 책들은 다양한 조리 기구를 갖춘 전문가 집단에서 제작했기 때문에 하다못해 소금을 넣어도 한 작은 술 하면 이게 도대체 얼마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고 감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또 간단한 요리를 해먹으려 해도 필요한 조리기구가 열 가지는 되는 등 복잡하고 쳐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공개되는 조리법들은 대부분 가정집에서 직접 조리하면서 만드는 것들인지라 냉장고에 있는 재료에, 부엌에 있는 조리 도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자기 생각대로 한두 가지 더 넣거나 덜 넣거나 해도 상관이 없는 방법입니다.
특히 친절하게 조리 단계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실제 상태와 눈으로 직접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외국에서야 조리 방법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서비스해 주는 곳이 있다지만, 아직 우리나라 주방에서는 힘든 일이거든요.
넷쿡족은 '행복 전도사'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서 조리법을 공개하는 분들의 특징은 모두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남과 공유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요리에 대한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지요.
"쉽고 재미있는 요리만들기(
paper.cyworld.com/pinksmile32)"라는 페이퍼를 발행하는 김세희씨는 어릴 적 요리책을 보는 게 가장 즐거웠던 꼬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요리하면서 겪은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요리하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페이퍼를 만든다고 합니다.
또 "부엌 안의 행복(
paper.cyworld.com/soda004)"이라는 페이퍼를 발행하는 최기식씨는 부엌에서 자신이 느낀 행복들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페이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구독자 수가 3000명에 육박하는 인기 페이퍼들입니다.
넷쿡족은 이렇게 자신만의 노하우를 나눌 뿐만 아니라 요리의 즐거움과 그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바라보는 행복까지 함께 나누는 '행복 전도사'랍니다.
요리 주체의 변화도 큰 영향 미쳐
이런 인터넷과 요리의 만남은 가족 제도의 변화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전이야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손녀까지 보통 3대가 한 집에 살았고, 가족 수도 10여 명은 기본이었고, 요리는 어머니의 전담 분야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사내자식이 × 떨어지려고 부엌에 들어오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구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하면 뭔가 좀 유별난 사람이라는 인식을 받았었지요.
하지만 요즘 들어 4인 가족이니 2인 가족이니 하면서 가족 구성원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맞벌이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면서 남성의 가사 분담률도 많이 늘어났지요.
무엇보다 식재료 구입할 때 예전에는 한 단이니 한 손이나 한 접이니 하는 대량 판매가 주를 이루었지만, 요즘에는 양파 반 개, 파 두 줄기, 피망 세 개 등 한 번에 쓸 수 있는 작은 단위로 포장된 제품들이 많습니다. 또 해물순두부 세트, 부대찌개 세트 등 반쯤 조리한 제품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것이 좀 더 쉬워진 것도 요리와 인터넷의 만남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결혼 전에 혼자 자취할 때 뭐 하나 해먹으려면 친구들을 꼭 불러야 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필요한 재료를 대충 사면 가격도 가격이지만 최하 4인분은 해야 제대로 들어갈 것이 들어간 요리가 되었기 때문이죠. 요즘은 집사람과 둘이서 살지만 둘 다 나름대로 잘 먹는 편이라서 요리를 한 번 하면 한 끼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죠. 무엇보다 편한 것은 시장에 비해서 약간 비싸지만 이미 손질된 재료를 구입해서 사용할 수가 있게 돼 조리시간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죠.
양방향 커뮤니케이션도 가능
이러한 요리와 인터넷의 만남은 비단 비전문가끼리 만남뿐 아니라 요리를 전공하는 분들이 손수 자신의 요리법을 인터넷을 통해서 공개하면서 수준 높은 요리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공개한 조리법에 보는 이들이 알려주는 다른 요리 방법들을 통해서 다양한 변화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댓글 형식으로 달리는 '이렇게 하면 더 맛있습니다'라는 글들은 요리법을 올린 이나 요리법을 보는 이들에게 모두 도움되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무척 편리하답니다.
이만하면 넷쿡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셨지요?
제 나름대로 정한 넷쿡족의 기준은 ▲ 요리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 요리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본 적이 있다 ▲ 내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요리법을 공개한 적이 있다 ▲ 요리 정보가 담긴 '페이퍼'를 구독하거나 사이트를 즐겨 찾기 해 놓았다 등 이 네 가지 중 두 가지 이상을 만족하는 분이랍니다.
어때요? 여러분도 넷쿡족에 동참하실래요?
덧붙이는 글 | *페이퍼와 강좌 사용을 허락해 주신 김영진님 최기식님 김세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