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다. 게임이 끝나기도 전에 '게임 오버'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게임은 단순한 요식 행위일 뿐, 승자는 이미 결정됐다는 분위기다. 엄연히 변칙인데도, 그 누구도 변칙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게 더 큰 문제다. 승리 지상주의에 눈이 먼 탓이다.
서울시장 후보가 가시화되면서 점차 지방선거가 달궈지고 있다. 뉴스메이커는 단연 강금실 전 장관이다. 그는 출마를 결정하기도 전부터 줄곧 여론조사 1위를 달렸다. 여당은 물론 야당 후보와의 가상대결에서도 불패였다. 언론은 그를 일찌감치 사실상 서울시장 후보로 예우했다. 만약 그가 불출마 선언을 했다면 '후보 사퇴'로 여겨질 정도였다.
열린우리당은 그 '향기'에 취했다. 달콤하고, 매혹적인. 당 지지도는 바닥을 긁는데, 강 전 장관의 지지도는 천정을 뚫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더욱이 당 지도부 운명과 5·31 지방선거 결과가 정비례를 한다고 하는 판이니, 이성적인 판단에 마비가 온 듯하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한가한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한참 전부터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이계안 의원은 먼지 쌓인 스페어 타이어 취급을 받았다. 반면, '혜성같이' 등장한 강 전 장관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 무대에 오른 '후보'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야말로 두 사람의 출발선이 달랐다.
강금실-이계안, 그들은 왜 출발선이 다른가
지난 6일 강 전 장관의 열린우리당 입당식은 서울시장 후보 출정식에 다름 아니었다. 정동영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는 정책의원총회 자리에서 강금실 예찬론을 폈다. '예비후보' 가운데 한 사람에게 건넨 덕담이라고 하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강 전 장관 입당식의 '꽃돌이' 역할을 이 의원에게 맡긴 건, 강금실 버전으로 "정말 코미디"였다.
"당 행사에 가면 모두 '강금실과 함께 가자'고 할 뿐, 나한테는 말할 기회도 잘 안 준다. 당 의장 선거에서 정동영, 김근태 후보가 모두 강 후보와의 관계를 내세웠다. 누가 만났고, 더 가까운지가 당 의장의 자질인 것처럼 얘기했다. 그런데 내가 후보로 나섰으니 누가 예뻐하겠나."
이계안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하소연했다. 그럴 만도 하다. 정동영 의장은 입을 열 때마다 "비단(錦)에 싼 씨앗(實)"이니 "국민과 우리당 사이에 '금실'이 좋아졌다"느니 강 전 장관 칭찬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다른 예비후보 입에서 "한 사람은 비단길 위를 걷는데, 다른 한 사람에게는 누구도 길을 놔주지 않는다"는 말이 터져 나옴직하다.
예비후보도 후보인만큼 '캠프'를 구성하고, 그 캠프에 사람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국회의원이건, 변호사이건, 시민단체 활동가이건 탓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당 지도부들까지 총출동돼 후보가 결정되기도 전에 특정 예비후보에게 후보 대접을 하는 것이다. 과거 1인 보스였던 총재가 공천권을 행사하며 후보를 낙점하던 방식이 오버랩된다.
설상가상, 열린우리당은 10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의 '게임의 룰'조차 50%를 여론조사 방식으로 한다고 방침을 정했다. 누가 보더라도 강 전 장관에게 유리한 '룰'이다. 여야 예비후보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마당에,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두루미에게 접싯물을 마시라는 셈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20%만 반영하기로 한 한나라당과도 대조를 이룬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급기야 이계안 의원은 "경선 참여를 심각하게 재검토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일반국민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 경선'을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그의 주장이 묵살된 데에 따른 반발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이상 굴종을 강요하지 말라'는 1인 시위에 가깝다.
"강금실 후보의 인기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당적으로 나서서 강금실 후보 띄우기에 전념하던 당 지도부의 모습이 안쓰러워 지금까지는 온갖 불공정행위를 참고 기다렸으나 오늘의 결정을 대하고는 더 이상 인내가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당 지도부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과연 공정한 경선을 관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데에는, 공정한 게임의 룰과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녹아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 경선은, 시작하기도 전에 결과를 도출해버린 민주주의 후퇴의 수순을 밟고 있다. 예선부터 변칙이라면, 본선 승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