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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국기자협회와 신문협회 등이 제정한 신문윤리실천요강 제 15조(언론인의 품위)에 따르면 '언론사와 언론인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 무료여행 등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자와 취재원과의 골프는 그 비용을 대부분 취재원이 부담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향응(접대)에 가깝습니다. 이런 점에서 취재원과 골프를 치는 기자들의 경우 대부분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어기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처벌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기자들의 골프문화 추적기를 취재하면서 우리 언론 내부에 공짜 접대골프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외국계 금융회사의 한국지사 대표가 인터뷰 말미에 불쑥 내뱉은 말은 기자를 씁쓸하게 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김 기자도 이참에 한번 해보지 그래. 내가 머리 올려줄(처음 골프장에 나가는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테니."

한편으론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이 분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고 골프 부킹을 사실상 '강요'하는 기자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혹시 '<오마이뉴스>도 골프부킹 때문에…' 하면서 취재의도를 곡해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사가 나간 직후 만난 한 대기업 홍보실장의 반응도 저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경쟁업체인 A사가 최근 들어 골프 회원권을 여러 장 구입해 주말이면 기자들에게 골프 접대를 한다는 거야. 요즘 들어 까다로운 내용의 기사들마다 그쪽에 유리하게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접대골프 효과'가 아닌가 의심스러워."

그러나 이 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우린 사장님 지시도 있고 해서 그동안 골프 접대를 안 했는데, 우리도 앞으론 해야 되지 않을까 고민이야. 김 기자도 알겠지만 아무리 봐도 기업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단 말야."

이 분에게선 접대 이외 다른 만남을 통해 회사 정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약자 명단 대부분 가명

기사가 나간 직후인 지난 8일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평소 언론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경기도 인근의 한 골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기사 출고를 전후해 구체적으로 언론인들의 예약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국내 최대 규모의 이 골프장은 대부분 기업체 고위간부, 판·검사, 전·현직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언론인들이 주말 예약을 독차지합니다. 이 골프장의 주말부킹 자체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 골프장 예약부를 찾아 기사작성 취지를 설명하고 예약자 명단 열람을 요청했지만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대부분 가명을 쓰기 때문에 예약자 명단을 열람한다 하더라도 이름과 실제 인물이 일치하는지도 단정 짓기 어려웠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경기 보조원(캐디)은 "골프를 치는 사람의 얼굴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선 예약자 명단이나 캐디백 이름표를 통해 실제 누가 예약을 했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골프장 노동조합을 통해 "그동안 기자들의 예약비중이 10% 남짓 달했었는데, 이번 주도 그 정도 수준인 것 같다"는 '추산'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캐디 입막음 하려고 수만원 찔러 주기도

대신 노조 관계자들로부터 로비골프와 접대골프와 관련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습니다. 자신을 경기 보조원으로 소개한 노조의 한 관계자는 "라운딩을 함께 하면서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면 기자들인지 아닌지를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으며 접대인지 로비인지 여부도 훤히 들어난다고"고 말했습니다.

로비일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경기 방식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드러납니다. 보통 골프는 4명이 1조를 이뤄 라운딩을 하는데, 로비를 하려는 사람이 로비 대상자가 친 방향으로 집요하게 공을 보냅니다. 그리고 나머지 2명이 엉뚱한 곳으로 공을 쳐서 자연스럽게 로비를 하려는 쪽과 로비 대상자 간의 자리가 만들어 지도록 유도합니다. 이 자리에서 둘 만의 대화를 통해 로비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또 접대골프의 경우 80% 이상이 내기골프로 이뤄지며, 대부분 접대를 하는 쪽이 적당한 선에서 돈을 잃어 주는 게 상례라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캐디의 입단속을 위해 경기 시작 전에 수만 원을 찔러 주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전 총리의 3·1절 내기골프 사실도 '입단속이 안 된' 한 캐디의 입에서 전해졌습니다.

"윤리적으로 무장하면 접대골프도 문제없다"

기사 보도 후 주변에서 만난 기자들에게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윤리적으로 무장만 한다면 골프비용을 취재원이 모두 부담해도 괜찮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2주에 1번 꼴로 취재원과 골프장에 나간다는 한 기자는 "골프를 같이 하면서 형성되는 인적 네트워크와 고급 정보들을 감안하면 기자들에게 골프는 주요한 일과 중 하나"라며 "취재활동이나 기사작성에 방해 받지 않도록 윤리적 무장을 단단히 한다면 단순히 비용 문제 때문에 접대골프를 피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언론계 안팎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기자실에서는 여전히 골프 부킹을 요청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실은 취재 편의를 도와주기 위해 출입처에서 제공한 장소입니다. 사적인 전화는 개인 휴대폰을 이용해 기자실 밖에서 하는 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골프 부킹 전화는 예외입니다. 그만큼 취재원과의 골프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달력에 빽빽하게 적혀 있는 골프 약속이 '능력있는' 기자를 재는 척도가 됐을 정도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딘가에서 접한 손석희 전 아나운서의 말이 떠오릅니다.

"골프를 못 배워서 사람 사귀는 게 불가능한 사회라면 이미 썩은 사회이므로 차라리 혼자 지내는 쪽을 택하겠다."

손석희씨는 혼자 지내는 쪽을 택했을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늘 영향력 있는 언론인 가운데 하나로 꼽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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