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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빵을 만들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 루비콘 제과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양극화'의 해법으로 사회적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저소득층의 일자리 창출과 직업훈련, 혹은 장애·독거노인·저소득층에 간병과 가사, 산후 조리, 방과 후 지도를 제공하는 사회적 서비스 등을 목적으로 한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 빈곤층의 생계 보조와 자활지원을 목적으로 전국 242개소 자활후견기관이 운영 중이다. 자활후견기관의 지원을 받아 자활공동체로 독립한 곳들은 사회적 기업의 모태가 되고 있다. 여기에 2003년부터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 또한 사회적 기업으로의 확대와 재편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자활공동체든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든 혹독한 시장 상황에서 생존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아직 사회적 기업은 흔한 사례가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됐던 주제였던데 반해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사회적 기업을 다루는 기사를 6차례에 걸쳐 싣는다. 이 기사는 그 다섯 번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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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떻게 가서 나와야 하지?”
"이쪽 길로 돌아서 나오면 되지."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작업복을 입은 16명이 1:3000로 축소된 청주 시내지도를 펴놓고 세세한 부분까지 손가락을 짚으면서 살피고 있었다.
10분 후 16명은 "안전, 정확 좋아! 좋아!"를 외치고 음식물쓰레기 수거 차량에 올라탔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셈.
이들이 올라탄 특장차는 이름 그대로 음식물쓰레기 수거를 위해 특수한 장치를 설치해 만든 것. 120ℓ짜리 음식물쓰레기통의 뚜껑을 열어 특장차에 걸치고 스위치를 누르면 쓰레기통이 투입구로 옮겨져 음식물 쓰레기들을 쏟아낸다.
1시간만 일하면 음식물 종류도 맞출 수 있다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삶과 환경'은 음식물쓰레기 수거업체다. 이 업체의 직원인 양광재(45)씨. 2005년 1월부터 이 일을 시작한 그는 이제 음식물쓰레기 처리의 달인이 됐다.
작업을 시작해서 1시간만 지나면 대략 하루 수거할 음식물쓰레기량을 가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음식물이 나오는지도 족집게처럼 맞춘다.
1년 넘게 일하면서 능숙한 솜씨를 보이고 있는 양씨지만 꾸불꾸불한 일반 주택지에서 일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청주시는 문전 수거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달치 스티커(5ℓ기준으로 한 달 가격 1000원)가 붙은 5ℓ짜리 음식물 쓰레기통을 하나하나 수거해야 한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여름 음식물 처리.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간혹 지난달 스티커를 그대로 두는 분들이 있어요. 그럼 며칠 째 음식물 쓰레기가 썩게 되고 벌레들이 생깁니다. 나중에 스티커가 교체돼 음식물 통을 열면 구더기가 손을 타고 올라오죠."
양광재씨는 삶과 환경에서 일하기 전 자영업을 했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지면서 빚이 늘어가자 도저히 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자활후견기관을 찾았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더러운 일'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단다. 그러나 일이 익숙해지고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더구나 사회적 환원을 할 수 있는 '삶과 환경'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일을 하면서 직업 의식이라는 게 생겼어요. 다른 회사와 달리 눈속임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일할 수 있고, 땀흘려 일한 대가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고요."
물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삶과 환경의 경우 청주시 1/4지역의 아파트와 단독주택, 음식점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맡고 있는데 이상하게 나머지 다른 세 회사들에게 비해 항상 수거량이 적다. 1등 업체와의 수익이 2005년 기준으로 2억 원 정도 차이가 난다
"사실 사람사는 게 엇비슷해서 음식점 빼면 주거지역은 음식물 쓰레기량이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회사는 한 번 무게를 달 때 7~8톤씩 나오는데 우리는 6.5톤 정도 밖에 안 나오면 정말 답답하죠. 음식물쓰레기 무게가 곧 돈인데.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불가사의해요. 그렇다고 우리가 속임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양씨는 삶과 환경을 평생 일터로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 낮과 밤이 뒤바뀌어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 회사가 더 잘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주시로부터 음식물쓰레기 수거 운반을 위탁받아 일하고 있는 삶과 환경은 사회적 기업 가운데 가장 빨리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창출한 곳이다.
불과 1년 만에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신용불량자·차상위 계층 17명이 이 곳에서 자립의 틀을 잡았다. 월급도 170만원 수준으로 다른 사회적 기업에 높은 편이다.
삶과 환경은 사실 청주자활후견기관과 충북실업극복협의회·청주시 노인종합복지관·사회적 기업 미래자원(청원 소재) 등 4개 단체가 함께 저소득 주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고민하면서 2004년 9월 만들어졌다. 어떤 업종을 선택할까 고심하던 중 주목한 것이 바로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삶과 환경이 단기간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음식물류 폐기물 직매립 금지'라는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음식물쓰레기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2005년 1월 1일부터 특별시와 광역시 또는 시 지역에서 발생하는 음식물류 폐기물을 바로 매립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지자체에서는 음식물폐기물 수거와 운반을 민간에 위탁하게 됐고, 삶과 환경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초기 자본금 5억원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삶과 환경 김경락(33)대표는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돈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결국 실업극복국민재단과 지역자활후견기관 등 비영리기관과 주변의 도움을 얻어 자본금을 만들어내고, 사업권도 따낼 수 있었다.
사업권을 따낸 이후에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무엇보다 "더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의 자존감을 극복하는 게 과제였다. 김경락 대표의 설명이다.
"처음엔 아파트는 낮, 단독주택은 밤에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했어요. 당연히 낮에 일하겠다는 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닌 거예요. 아차 싶었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육도 하고 전직원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총회나 운영위원회를 만들어나갔지요."
거기다 음식물쓰레기 수거 경험이 없던 초보자들이 하는 일이라 사고도 많았다. 지금이야 민원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사업 초창기에는 "왜 우리집 음식물쓰레기는 안 치워갔느냐"고 민원이 빗발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물쓰레기를 자기 집 앞에 내놓는 문전 수거 방식에서는 골목골목 지리에 밝아야 한다. 더구나 작업이 밤에 이루어지는 탓에 자칫 잘못해서 골목 하나를 그냥 지나치면 낭패를 보기 쉽다. 그 때문에 초기에는 지도를 가져다 놓고 세밀히 살피고, 낮에 직접 가서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수거 방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자들끼리 경험도 공유했다.
올해부터 삶과 환경은 새로운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지역에서 음식물쓰레기 수거가 가능할 수 있도록 4개조 16명의 순환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수거작업도 수월한 동네가 있고 그렇지 않은 동네가 있는 만큼 작업의 형평성을 맞추고, 혹시 생길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매번 똑같은 지역에서만 작업을 할 경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작업자가 빠지면 구멍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단체와 함께 자원순환포럼... 우린 환경 개선의 감시자
삶과 환경은 월 평균 7천만원 가량 수입을 올리고 있다. 위탁기간이 2007년까지고 보호된 시장에서 활동하는 만큼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안주하는 순간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게 김경락 대표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시스템은 음식물쓰레기통을 돈통으로 만드는 구조죠. 음식물을 수거하는 양에 따라 돈을 지급하니까. 지역 환경단체와 함께 자원순환포럼을 만들어 제도 개선에 힘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려면 수거량이 아니라 처리 세대 수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삶과 환경은 직원들이 "더럽고 힘든 일을 한다"는 생각 대신 환경을 개선하는 감시자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외칠 날이 멀지 않도록 말이다.
"음식물쓰레기 꼭 반으로 줄입시다."
| | 사회적 기업이 청주·청원에 많은 이유 | | | | 삶과 환경, 미래자원, 미래상사, 미가건축.
유난히 충북 청주와 청원에 사회적 기업이 많다. 청원 역시 청주 생활권역임을 감안할 때 같은 지역에 사회적 기업이 몰려 있는 셈이다. 취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
"사회적 기업이 왜 이 동네에 많은 걸까?"
답은 '조직'과 '사람'이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1 265-28번지 3층에는 실업극복연대·행동하는복지연합·삶과 환경이 함께 공간을 나눠 쓰고 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보니 일이 한결 수월했다. 쉽게 말해 이 곳은 사회적 기업 생산의 아지트다.
재활용업체 가운데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인 미래자원도 사업장은 청원에 있지만 수시로 만나 의견을 나눈다.
청주와 청원에서 사회적기업을 만든 주축들은 대부분 이 지역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던 '운동권'들. 이들은 졸업 후에도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새로운 운동 영역을 개척해 냈다.
이런 밑바탕은 지역 사회적 기업과 관련 단체들이 연대를 통해 의미도 살리고 경제성도 확보하는 터전을 만들어냈다. 청주환경운동연합과 실업극복연대, 삶과 환경, 미래자원이 함께 자원순환포럼을 출범시켜 지자체에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고, 사업영역을 발굴하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자활후견기관협회 내에 있는 전국의 재활용사업을 묶어 재활용사회적기업연합회를 추진하는 것도 이 지역에서 주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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