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송성영
"저 눔 시끼들이..."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과 그 일당들이 밭을 오락가락하며 칼싸움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리가 놀어, 이눔 시끼들!"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나는 녀석들을 한 곳으로 몰아놓고 일렬로 세웠습니다. 밭을 밟아 혼쭐이라도 날까 싶어 다들 얼굴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내가 '씨익' 웃으며 디지털 카메라로 꼬나보자 녀석들의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자 폼 한번 잡아 봐봐!"

우리 집은 일주일에 네댓 번 정도 놀이터가 됩니다. 이틀은 미술 배우는 아이들이 찾아오고 또 이틀은 아이들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노루새끼들처럼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녀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사는 게 즐겁습니다.

오늘은 김영신, 조용성, 오민혁, 윤여일, 김지훈이 놀러왔습니다. 용성이는 아예 학원을 빼먹고 찾아 왔고, 민혁이는 학원에 갔다가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영신이와 지훈이는 오후 늦게 학원에 가야 합니다.

인상이 녀석은 학교에서 놀다 온다고 해놓고 그냥 오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이들 학원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놀다 오거나 집에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 왼쪽부터 김지훈 조용성 윤여일 송인상 김영신
ⓒ 송성영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오마이뉴스>에 단골로 출연했던 인상이는 그때나 4학년이 된 지금이나 여전히 학원에 다니지 않습니다. 학습지도 받아보지 않습니다.

인상이 반에서 학원에 가지 않는 녀석은 인상이 하고 결손가정 아이인 유00, 단 둘뿐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유00은 집에서 학습지를 받아 본다고 합니다.

마당에는 어미닭의 품에서 깨어난 지 열흘째 되어가는 병아리 10마리가 몰려다니고 아이들은 인상이가 만든 활을 가지고 놉니다. 과녁판을 만들어 놓고 활쏘기 시합을 벌입니다.

녀석들 노는 모습들이 좋아 보였는지 아내가 김영신에게 장난을 겁니다.

"영신이 너, 엄마 신발 신었지?"
"아닌데요."
"에이 뭐, 엄마 신발이구먼."
"에이, 아녀요."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절대 아니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번에는 옆댕이에서 뒷짐 지고 구경하던 내가 나섭니다.

"에이 뭐 기구먼, 빨간 색깔이 있는 거 보니께 맞구먼."
"아녀요!"

녀석의 기분이 좀 상한 모양입니다. 나는 녀석의 기분이 더 이상 나빠지기 전에 분위기를 전환 시킵니다.

"아녀, 니 신발이 좋아서 그려, 아주 멋있다 영신이 신발."

영신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헤헤 웃으며 인상이에게 무슨 제품이라며 신발 자랑을 합니다. 하지만 신발 제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인상이는 영신이의 신발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합니다.

인상이에게는 어떤 신발이든 상관없습니다. 녀석의 발에 맞으면 그냥 신고 다닙니다. 모양새나 제품 따위를 따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긴 신발이 좋은지, 어떤 제품의 신발이 좋은지 모릅니다. 겨울에는 털신, 여름에는 고무신이 전부인 아빠보다도 더 모릅니다.

다만 인상이에게도 관심이 있는 신발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 때 인상이 녀석은 아빠와 함께 털신을 신고 갔습니다. 시골에서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이 신고 다니는 털신을 턱 하니 신고 공항 대합실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데 어떤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 지난 겨울방학, 제주도로 가기 위해 청주공항대합실에서. '공포의 털신'을 신은 인상이와 아빠
ⓒ 송성영
부자지간에 사이좋게 털신을 신고 있었으니 볼만했나 봅니다. 나는 약간 머쓱했지만 인상이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신고 다니는 털신을 함께 신었다는 것이 그저 좋았을 따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궁금해서 녀석에게 물어 봤습니다.

"털신 신으니께 안 창피혀?"
"뭐가?"
"털신 신고 다니는 애들이 없잖아? 형아도 창피하다고 안 신구."
"왜 창피해?"

녀석의 대답이 예의 그렇듯 물으나 마나였습니다. 그래도 또 물었습니다.

"그럼 털신 신으니께 좋냐?"
"응."
"뭐가 어떻게 좋아?"
"그냥 좋아."

나는 문득 영신이의 두툼한 운동화를 보다가 인상이 신발을 봅니다. 사방이 다 낡았습니다. 뒤 굽이 다 닳고 닳아 한쪽 면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내 말로는 1년 전쯤에 부산에 사는 녀석의 이종 사촌들에게서 얻은 신발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산과 들을 싸돌아다니고 학교를 오가며 주야장천 신고 다녔으니 오죽했겠습니까.

▲ 인상이는 다 낡은 신발을 군소리 없이 신고 다닙니다.
ⓒ 송성영
▲ "신발 들고 있어봐 사진찍게 "밑창이 다 닳은 인상이 신발
ⓒ 송성영
녀석의 신발은 너덜너덜한 아빠 신발만큼이나 다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군소리 한번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녀석의 신발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잘 몰랐습니다.

"인상이 니 신발은 다 떨어졌네?"
"아니?"

"다 떨어진 거 같은디?"
"아녀, 앞에 하고 옆하고 뒤가 좀 떨어졌어."
"그럼 자식아, 다 떨어진 거지."
"아냐, 다 안 떨어졌어, 다 떨어졌으면 어떻게 신고 다녀."

"신발 새로 사줄까?"
"아빠 맘대루."
"사줘, 말어?"
"사주면 좋고, 안 사줘도 상관없어, 아빠 맘대루 해."

녀석은 '씨익' 웃으며 친구들과 함께 목검을 챙겨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늘 그랬듯이 동네방네, 산과 들을 싸돌아다니며 칼싸움 놀이를 할 것입니다. 나는 저만치 나서는 녀석의 신발을 봅니다. 한쪽 면이 다 닳은 신발 뒤창을 봅니다. 그래도 인상이 녀석은 끄떡 없이 잘 달립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돕니다. 자식 녀석이 안돼 보여서가 아닙니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이 안타까워 눈물이 울컥 솟아 오른 것이 아닙니다. 신발 따위에 목메지 않는 녀석이 대견해서였습니다. 겉치레에 메이지 않는 녀석의 당당함이 대견스러웠습니다.

녀석은 올 여름에도 고무신을 사달라고 할 것입니다. 작년 여름에 그랬습니다. 아빠의 고무신을 볼 때마다 부러워했습니다. 언제 어느 때고 개울물에 발을 담굴 수 있는 고무신을 사달라고 했는데 시장바닥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녀석의 발에 맞는 작은 고무신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 여름에는 녀석의 발이 좀 컸으니 어딘가에 맞는 고무신이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고무신을 신고 기분 좋아할 녀석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