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이거 봐. 1달러 짜리가 모두 6개야.”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상기된 표정으로 달러 뭉치(?)를 내 놓는다. 아이의 첫 펀드레이징(fund raising·모금활동)에 마음을 졸였던 나는 눈앞의 달러와 딸의 표정에서 일단 '성공'을 읽어내고 안도했다.
“아이고, 신통해라. 우리 딸이 달러를 벌어왔네. 어떻게 팔았어? 반응은 어땠어? 아이들은 뭐라고 해? 안 비싸대? 누가 사줬어?”
궁금한 게 많은 나는 딸이 대답할 새도 없이 따발총을 쏘듯 잇딴 질문을 쏟아냈다.
“엄마, 맨 처음에 키슬링 선생님이 쿠키를 사 주셨어. 이게 바로 선생님 돈이야.”
헌 돈이든 새 돈이든 돈의 가치는 같으련만 아이는 빳빳한 돈 1달러를 내보이며 선생님 돈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키슬링 선생님은 담임이 없는 미국 학교에서 담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다.
처음 펀드레이징을 계획할 때 딸아이는 먼저 키슬링 선생님에게 찾아가 의논을 하고 조언을 구했을 만큼 딸이 신뢰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이다. 그런데 키슬링 선생님이 더욱 고마웠던 건 딸의 다음 말을 들었을 때였다.
“엄마, 선생님이 쿠키가 너무 맛있대. 내일도 가져오라고 하셨어. 내 쿠키가 선생님 아침이래. 내일 갖다 드릴 거 챙겨놔야 해.”
난생 처음 해 본 어설픈 솜씨로, 그것도 '쿠키믹스'로 만든 것인데 사실 무슨 맛이 그리 있겠는가. 하지만 선생님은 맛있다고 격려를 해 주고, 새 돈 1달러를 주고, 또 먹을 테니 쿠키를 가져오라고 했다니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딸아이는 키슬링 선생님 외에도 밴드 활동을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도 쿠키를 팔았다고 한다.
“엄마, 우리 밴드에 엔젤이라는 애가 있어. 나랑 가끔 이야기를 하는 친군데 전에 쿠키 펀드레이징을 할 거라고 말했거든. 그런데 오늘 학교에서 엔젤에게 쿠키를 줬더니 맛있대. 그 애가 다른 애들한테 쿠키가 맛있다고 막 떠들고 다녔어. 그 바람에 여기 저기서 애들이 달라고 했어. 어떤 애는 돈이 없다고 먼저 쿠키부터 가져가겠다고 해서 내일 받기로 했어.”
그러고 보니 아침에 가져갔던 쿠키 7 묶음 가운데 6달러만 가져왔던 건 바로 ‘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없어서 못 팔았다고?
작은딸의 펀드레이징 첫날은 ‘대성공’이었다. 물론 아이가 번 7달러는 유니폼을 포함한 밴드 활동비(575달러)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이번 펀드레이징이 대박(?)을 터뜨릴 조짐을 보인 건 딸의 다음 말 때문이었다.
“엄마, 어제 구웠던 쿠키 말이야. 다 가져갈 걸 그랬어. 혹시 안 팔리면 어떡하나 해서 안 가져갔는데 오늘 학교에서 없어서 못 팔았어.”
“없어서 못 팔았다고?”
“내가 쿠키 펀드레이징 한다는 게 소문났나 봐. 수업시간에 만난 애들도 내게 쿠키 있냐고 묻는데 없어서 못 팔았잖아.”
'오, 놀라워라!'
내성적이고 조용한 딸아이가 도대체 학교에서 뭐라고 입나팔을 불고 다녔기에 이렇게 대박을 터뜨렸단 말인가.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대견한 딸이었다.
하여간 첫날의 성공적인 펀드레이징에 크게 고무된 딸은 그날 저녁에 다시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 언니의 손을 많이 빌렸던 전날과는 달리 딸아이는 이제는 혼자서 능숙하게(?) 쿠키를 만들어냈다. 계란을 깨고 버터를 녹여 반죽을 만들고, 오븐의 온도와 시간을 조절하고.
학교에 돈 벌러 다니니?
다음 날, 딸아이는 더 많은 쿠키를 가져갔다. 키슬링 선생님은 아침이라며 딸에게 다시 쿠키를 사갔다고 한다. 그리고 전날 쿠키가 없어서 못 먹었던 밴드 친구들도 1달러를 내고 쿠키를 가져갔다고 한다.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또 다시 달러 뭉치(?)가 쥐어져 있었다.
“얘, 너 이러다 진짜 ‘쿠키장사’ 되겠다. 펀드레이징 하는 거 학교에서 방송이라도 했니? 어떻게 그렇게 잘 팔려? 넌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돈 벌러 다니는 거 같다.”
부모에게 손 내밀지 않고 스스로 밴드 활동비를 마련하겠다는 딸의 의욕은 '쿠키장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뜨거웠다. 딸아이는 학교에서만 쿠키를 파는 게 아니었다. 이웃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아는 한국사람에게도 자신의 밴드활동을 위한 펀드레이징을 설명하면서 열심히 쿠키를 팔았다.
평소 내성적이고 소심하다는 평을 듣던 딸이었다. 그런 딸이 남 앞에 나서서 펀드레이징을 하다니…. 더구나 펀드레이징을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공부에 지장을 줄까 우려를 할 정도였을까. 아무튼 딸아이의 놀라운 변신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사실 딸아이의 적극적인 펀드레이징은 조금 걱정이 되는 면이 있긴 했다. 우선 돈이 쏠쏠 쉽게 들어오니 돈맛을 알까 걱정이었고, 또 하나는 쿠키를 만들고 포장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학업에 지장을 받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딸의 펀드레이징을 만류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인 만큼 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색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일인 만큼 추억이 되고 의미 있는 체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니, 만류하기는커녕 이번 펀드레이징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바이올린 연주'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를 기대하며 그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마지막 편이 다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