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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지나는 19번 국도는 구례에서 하동으로 꺾여 섬진강을 따라가고 곡성에서 섬진강을 따라오던 17번 국도와 만나 순천으로 향한다. 구례 마산면에서 토지면을 가려면 19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도보를 걷게 되면 냉천리를 지나 광평리가 나오고 그 다음에 사도리가 나온다. 사도리는 다시 당몰샘이 있는 상사 마을과 하사 마을로 이어진다.
사도리는 국내 최고의 장수촌으로 알려진 마을인데 전국 10대 약수라는 당몰샘이 있다. 당몰샘에서 목을 축이고 걷다 보면 하사 마을이 나온다. 하사 마을 주민 황두연(68)씨에게 물어보니 하사에서 토지면 문수리로 넘어가는 오래된 옛길이 있다고 한다. 그는 40년 전에 구례 간전면에서 이 마을로 이사 왔다고 한다. 그는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논농사만 9천 평을 짓고 있는데 본인 소유의 땅은 2500평이고, 나머지는 임대를 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예전에 윗대내라고 하는 그 재를 넘어 토지면 문수리로 나무를 하러 갔다고 한다. 하지만 장작을 때던 난방이 연탄이나 기름보일러로 대체 된 이후에는 그 산을 넘어본 적이 없다며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가지 말라고 한다. 일부러 옛날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노고단에서 구례 쪽으로 내려오면서 몇 개의 줄기를 만드는데 그 중에 하나가 형제봉과 월령봉으로 마산면 뒤편의 산이다. 이 산과 왕시루봉이 만든 계곡이 반달곰을 키우는 문수사가 있는 문수골 골짜기이다.
하사마을 뒤편으로 올라가면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이 윗대내로 이어진다. 이 길은 마을에서 산 쪽을 보면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마산면 청천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남자아이가 뒤를 따라오며 말을 건다.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에요."
"그냥 여행하는 사람……."
"그래요."
"너는 뭐 하는 사람이야."
"저는 그냥 학생인데요."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할 만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래 넌 꿈이 뭐야. 어렸을 때 누군가 꿈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특별하게 꿈이 없었던 사람에게 꿈을 묻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웠다. 그때마다 그럴듯한 꿈을 지어내려고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어른이 되고 나니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고작 너 꿈이 뭐니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물어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축구 선수라고 대답한다.
"축구선수! 학교에 축구부가 있어."
"네."
"그럼 중학교는 어디로 갈 거야."
"구례중학교요."
"구례중학교에 축구부가 있어?"
"아니오."
녀석은 기운 없이 대답한다. 나는 괜히 물어 봤구나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입을 떠난 말을 어찌 하겠는가?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꿈이 확실한 녀석이 부러웠다. 만약 저 아이가 꿈이 뭐냐고 나에게 물었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했을까? 아마 이 산길을 무사히 너머 건너편에 있다는 산 속 마을 상죽마을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에 골몰해 있다 뒤돌아보니 아이는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고 있다.
가파른 시멘트 길이 팍팍하게 이어진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면 섬진강과 구례읍내 그리고 이제까지 걸어왔던 냉천리 광평리 사도리가 한 눈에 보인다. 마을을 뒤로하고 인적이 드문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던 길은 곧 끝나고 꽤 넓은 산길이 이어진다. 이제까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벗어나 오래된 옛길로 접어들게 된다. 포장된 길이 끝나고 나서도 꽤 넓은 길이 이어지다가 곧 두 길로 나눠지는데 오른쪽으로 꺾여 내려가는 쪽이 길이 넓고 좋았다.
하지만 그 길로 내려가면 토지면 오미리에 도착할 것 같아 더 깊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나에게 산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시험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갈림길을 벗어나자 가느다란 산길이 이어진다. 산길에는 아주 작은 나무다리 하나가 있다. 뛰어 넘어갈 수도 있는 다리였다. 하지만 다리를 그냥 두고 넘어가면 다리를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넌다. 다리는 보기보다 튼튼했다.
오른쪽으로 문수재라는 저수지가 보인다. 문수골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다. 문수재와 토지면이 내려다보이고 이 길을 건너면 걸어야 왕시루붕 아래 임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길은 때로는 너무 선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라져서 찾기도 힘들 때도 있다. 축구선수가 꿈이라는 아이의 꿈이 지금처럼 선명할 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사람들이 찾지 않아 사라진 길처럼 단절된 꿈이 아닌 꿈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농산물을 구입할 땐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