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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 마산면을 넘어 토지면 문수골로 가는 오래된 산길로 나는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산딸기 가시덤불이 길가에 하나 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더니 곧 험해지기 시작했다.
좀 전에 윗대내를 넘었을 때 두 갈래로 나뉜 길이 있었는데 거기서 오른 쪽으로 갔어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는 고집이 마음 속에서 있었다. 조금 더 전진했지만 길은 점점 보이지 않았다. 발끝의 느낌은 분명 길처럼 느껴지는데 눈으로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칡넝쿨은 내 몸의 전진을 가로막았고, 찔레와 산딸기 가시는 살갗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넝쿨들을 헤치고 나가는 것 이외는 방법은 없다. 앞으로 전진한 만큼 뒤로 후퇴하기도 힘이 들었지만 나는 그 길을 뚫고 가야 했다.
칡넝쿨을 손과 발로 헤치며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길속으로 점점 다가간다고 생각했지만 길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산비탈 칡넝쿨 숲을 1시간을 헤매고 나서야 겨우 밤나무 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나무 밭 바위에 올라가 보니 고작 200∼300m 앞에 문수골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포장 도로가 보인다. 길을 내려가다 보니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집 한 채가 보인다. 거기가 상죽마을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도로로 걸어가려면 뭐하러 여기까지 칡넝쿨을 헤치고 왔어, 어딘가 저 집으로 향하는 길이 저 도로 말고 있을 거야.”
한 시간을 칡넝쿨을 헤매고 나온 사람답지 않게 나는 또 오만을 부렸다. 한번 산길로 가기로 했으니 밀고 가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내 발걸음은 숲을 향해 걷고 있었다.
눈앞에 집이 보이니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꽤 넓은 길이 보이는데 그 길로 접어들면 온통 가시넝쿨과 칡넝쿨이 가득해서 도저히 갈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장마철에 내린 비로 인해 산 곳곳에 계곡이 만들어져 신발은 푹푹 빠지기 십상이었다. 손에는 계속 가시가 박히고 진흙은 양말 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래도 집은 눈앞에 점점 다가왔다. 거기는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목표로 정한 것이 눈앞에 다가오자 나는 뒤돌아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앞으로만 전진했다.
내가 스스로 선택했고, 이미 목표가 너무 명확할 때 뒤돌아볼 여유를 갖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다.
칡넝쿨 숲을 겨우 겨우 빠져 나오니 이번에는 대나무 밭이 기다리고 있다. 대밭으로 들어가 보니 오랫동안 베지 않아 대나무가 빽빽하게 가득 차 있었고, 대나무 사이를 뚫고 지나가기도 어렵다. 대나무 밭에 사는 작은 모기들은 먹이를 기다리던 맹수처럼 일시에 달려들어 피를 빨고 있다.
이미 잘 닦인 길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산길을 걷는 것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인생처럼 험난했다. 이 길도 문수골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마산면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때는 누가 보기에도 선명한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는 사람, 찾는 사람이 없으니 길은 사라지고 칡넝쿨만 무성한 길이 되어 버렸다.
노신은 단편소설 '고향'에서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잘 닦여 있던 길도 사람이 가지 않으면 다시 숲이 된다. 좋은 길과 나쁜 길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 어떤 이는 애써 힘든 길을 선택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편안한 길만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은 편안한 길을 선택해도, 험난한 길을 선택해도 종착점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생의 깊이는 다를 것이다.
나는 지금 아주 오래된 옛길을 가고 있다. 이 길에서 무엇을 찾고 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단지 길이라는 것은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며, 다시 생기기도 하고, 과거에 있던 길도 쉬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 산골 상죽 마을에 나는 그렇게 도착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 농민장터 팜메이트(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