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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놈이 어떻게 본 보에 들어왔는지 모르겠군.
- 아미파(峨嵋派)에서 추천해 받은 아이가 아닙니까?
-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삼년에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인재 선출을 아미파 제자도 아닌 고작 아미파에서 화부(火夫) 노릇을 했던 자식 놈을 집어넣었느냐는 말일세.
- 그 화부가 죽으면서 부탁했다고 들었습니다.
- 아무리 평생 아미의 땔감을 마련하다 맹수에게 당해 죽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 귀중한 기회를 화부 자식에게 넘겨 줄만큼 아미파가 한가로운 곳인가?
- 그래도 자질은 괜찮아 보이긴 합니다.
- 자질…? 틈만 나면 졸고, 주방 쪽이나 기웃거리며 처먹을 것이나 찾는 놈이? 저 옆구리 살을 보게. 저게 어찌 열세 살 처먹은 본 보의 제자라 할 수 있는가? 돼지가 따로 없지. 저 놈은 나중에도 본 보의 위명에 먹칠을 할 놈이야.
- 그래도 해마다 열리는 승급심사에 한 번도 탈락하지 않았습니다.
- 그것도 의문이야. 아미파에서 몇 수 가르쳐 주긴 한 것 같더군. 어릴 적이야 몇 가지 잔재주로 버틸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부터는 견디기 어려워질 거야.
- 어르신께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어르신께서 유독 저 녀석을 싫어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음… 모르겠네. 하지만 왠지 저 놈을 보면 짜증이 난단 말이야. 이곳에 저런 놈이 어디 있나? 지금 이 시각에 저 놈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가 있냐는 말이네. 제 방에 틀어박혀 배운 것을 익히기도 바쁜 판에 저놈처럼 할 일없이 배회하는 놈이 있는가 말이네.
- 지 녀석 복이 그것뿐인 게지요.
- 그럼에도 보주나 친구 한 사람이 저런 녀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더 큰 문제지.
-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주께서는 물론 친구 분이시라면…?
- 아니네. 못들은 것으로 하게.

설중행은 뇌리 속에 십이 년 전에 들었던 철담의 목소리가 아직 울리는 듯 했지만 이제는 철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보아야 했다. 설사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무례할 정도로 마주보았을 터였다. 그러다 한 순간 이 모든 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듯한 표정과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어차피 이젠 모두 지나간 일이었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철담은 약간 우측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는데 죽을 때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죽고 나서 기울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서탁에서 무언가 쓰다가 말았던 것 같았다.

- 천지무변(天地無變) 천지(天地)….

같은 글자를 쓰려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글자를 쓰려다 만 것일까? 그 옆으로 서탁 위에는 두 개의 찻잔이 올려져 있었다.

아마 무언가 쓰려다 그와 잘 아는 누군가가 오자 쓰기를 중단하고 차를 나눈 것 같았다. 철담 하후진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차를 같이 마신 사람이 죽인 것일까? 그렇다면 의외로 흉수의 범위를 좁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억지로 흉수를 추측할 필요도 없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아주 명백한 증거에 의해 흉수가 누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나타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철담 하후진을 죽게 만든 사인(死因)이었다. 그는 미간에 손 한마디 정도의 혈선(血腺)이 그어진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새어 나온 피 한 방울은 마치 점처럼 미간에 찍혀있어 기이한 느낌이 들게 했다.

"심인검(心印劍)이군."

풍철한이 침중한 어조로 뇌까렸다. 그 중얼거림에 철담의 거처에 들어 온 사람들은 일순간에 모든 연유를 알게 되었다. 운중보 내에서 사람이 살해되었음에도, 더구나 제이인자였던 철담 하후진이 죽었음에도 왜 운중보 내부에서 조사를 하지 않고 굳이 외부의 함곡선생과 풍철한을 데려왔는지. 그리고 철담이 죽었음에도 시신을 모시지 않고 살해된 현장에 그대로 놔두었는지. 함곡이 사인을 물을 때 보주가 왜 그 대답을 피하고 가보면 알 것이라고 말을 했는지.

심인검은 운중보주 나군백(羅君白)의 독문무공이었다. 한 때 그는 심인검이란 명호를 불리기도 했다. 심인검은 일종의 심검(心劍). 무형의 진기로 마음속에서 검을 만들어 내는 검도 최고의 경지였다. 검을 잡은 사람이라면, 아니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도달하고자 발버둥치는 경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풍철한의 뇌리 속에 철담 하후진을 향해 흐릿한 영상의 한 인물이 손을 느릿하게 뻗고, 흰 빛이 발출되는 순간 철담 하후진의 눈이 부릅떠지며 상체가 우측으로 약간 기우는 환영(幻影)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옆에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지켜보고 있는 설중행이 숲 속에서 마지막 인물을 죽일 때 소매 속에서 나온 희끗한 무엇인가와 겹쳐졌다.

"……!"

기이한 일이었다. 흐릿하기는 했지만 바로 조금 전 보았던 환영은 운중보주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풍철한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언뜻 스쳐지나간 잔상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기이하게도 환영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함곡의 목소리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렸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눈을 떴다.

"철담 어른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누구였소?"

무적신창 좌등을 보고 물은 말이었다. 좌등은 힐끗 함곡의 왼손에 들린 용봉쌍비 중 봉비(鳳匕)를 보고는 나직이 대답했다.

"철담 어른의 제자인 쇄금도(鎖擒刀) 윤석진(尹晳振)이오."

"호오… 요사이 신진고수로 각광을 받는 쇄금도도 이곳에 와 있소?"

풍철한이 상황에 맞지 않게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철담의 두 제자 중 한 명인 쇄금도(鎖擒刀) 윤석진(尹晳振)은 강호에 출도한 지 단 삼년 만에 최고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사부의 진전을 모두 이어받았다는 그는 일년 전 개봉(開封)과 낙양(洛陽)에 있는 다섯 채의 큰 주루를 소유하고 있다는 여인과 혼인을 해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었다.

여인이 어떻게 그렇듯 큰 돈을 모았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그녀가 이십대 중반의 아리따운 처녀였다는 점에서도 호사가들의 입을 바쁘게 만들었던 사건이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소. 그는 공교롭게도 나흘 전에 돌아왔소. 그는 돌아오자마자 사부를 찾아뵈려 이곳에 왔다가 사부의 시신을 본 첫 번째 목격자가 된 거요."

반드시 만나봐야 할 사람이었다. 사건의 해결은 언제나 최초의 목격자가 매우 중요하다. 함곡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의문이 있는 듯 다시 물었다.

"철담 어른이 돌아가신 후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 많았소?"

"꽤 되오. 하지만 이 방은 돌아가실 때와 전혀 다름이 없소."

그의 대답에 함곡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는 관찰력이 뛰어난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조그만 단서 하나로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그마한 변화라도 그의 눈을 피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뒤진 흔적이 남아있어 물은 것이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뒤진 흔적이오."

좌등은 함곡의 지적에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차분하게 대답했다.

"돌아가신 철담 어른과 친분이 있는 분들이 조사를 위해 살폈을 거요. 보주께서도 허락하신 일이고, 없어진 물건은 하나도 없으니 그 문제는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오."

뭔가 감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누가 와서 뒤졌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허나 함곡은 그 일에 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물어도 될 터였다. 함곡이 다시 물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곳에 들르신 분이 있소?"

"돌아가시기 전이라면 어느 정도의 시각을 말씀하시는 거외까?"

"두 시진 정도… 전까지… 그 후에는 쇄금도가 왔을 거고…."

"세 분이 왔다 가셨소. 돌아가시기 두시진 전 점심을 드신 보주께서 들르셨고, 한 시진 전쯤에는 철담 어른께서 사람을 시켜 아미파(峨嵋派)의 장로이신 회운사태(回雲師太)를 불러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소. 마지막으로 다녀가신 분은 성곤(聖棍) 어른이시오."

이미 나름대로 모든 조사를 했는지 좌등의 말에는 전혀 거침이 없었다. 좌등은 사실 운중보의 총관이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운중보 내 총관이란 정식 직책은 없었으나 아랫사람들은 의례히 그를 총관이라 부르는 터였다. 그런 그가 이 사건을 조사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는 그 당시의 정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회운사태나 성곤어른께서 이미 이곳에 와 계신단 말이오?"

회운사태는 아미파에서 백년 이래 최고의 기재로 알려진 니고(尼姑)였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미모와 자질로 아미파의 장문 직에 오를 것이고, 그녀로 인하여 아미파는 다시 한 번 성세를 크게 떨칠 것이란 말들이 떠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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