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가 강아지 네 마리를 낳았습니다. 불룩했던 배가 쏙 들어간 달래를 보고 이곳 저곳을 찾아보았는데 어디선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허리를 굽혀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저 안 쪽에 주먹만한 강아지 네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달래는 제가 살고 있는 집의 옛 주인이 키우던 개인데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면서 놓고 간 것이지요. 대추리 도두리에는 달래처럼 버려진 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사 간 빈집을 고쳐 사는 지킴이들은 남겨진 개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저는 개든 고양이든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달래와 함께 살다보니 애정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밥도 주고, 사람 대하듯 이야기도 하면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새끼를 낳은 뒤 예민해진 달래가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다가도 제가 다가가면 젖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며 꼬리를 치거나 조용해집니다.
"고것이 주인이라고 알아보네."
강아지들을 챙겨 주러 오신 옆집 할머니가 한 말씀하시며 웃으십니다. 강아지 네 마리가 태어난 걸 확인하고 난 후, 저는 온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보는 사람마다 "우리 집 개가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날 저녁 촛불행사에서 1반뜸 할머니들도 어떻게 아셨는지 "새끼 낳았다메?" 라며 웃으셨고, "강제철거 들어오면 온 동네 강아지들 다 풀어 버리자"는 농담도 하셨습니다.
딸과 함께 찾아온 달래의 옛 주인 목수아저씨
언젠가 이사 간 옛 주인이 찾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아저씨 한 분과 그의 딸이 서 있었습니다. 한 눈에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었는데 그 딸은 제 눈에 익은, 저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놓고 간 그들의 물건 중에 몇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낡은 사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옥탑방은 목수였던 그 아저씨가 딸을 위해 손수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민들을 통해 들었고, 그 방에 남겨진 물건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누군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친근하고 반갑게 느껴져야 할 사람들인데 저는 순간 긴장하고 당황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에 살고 있는 지킴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어 보았을 일이지요. 살고 있는 집의 전 주인과 마주치는 일. 사실 저도 이 옥탑방에 살기 전 다른 집을 고치고 청소하는 중에 집주인이 찾아와 내 눈앞에서 도끼로 창문과 가구를 부수어 버리는 일을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일을 겪고 난 후라 그 분들을 본 순간 몸이 굳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자신이 살던 방에서 잠이 덜 깬 채 나오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당장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또 도끼를 들고 달려들면 이번엔 제대로 싸워야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 몇 초가 흐른 후 정신을 차린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이랬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들이 이 집을 부수러 온 것도, 나에게 해코지를 하러 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한번보고 싶어서, 몸은 떠났지만 마음만은 남겨두고 온 곳이어서 그렇게 한번 와 본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을 통해 집주인이었던 아저씨가 말을 못하는 분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사 간 후에도 부모님들이 이곳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꾸 가보고 싶어 하셔서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분들은 나에게 잘 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돌아서는 등뒤에 대고 제가 물었습니다.
"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달래에 대해 물은 것이었습니다. 내 옥탑방 사진 속의 주인공은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물론 달래의 이름은 달래가 아닐 것입니다. 그 분들이 오랫동안 불렀던 이름이 있었겠지요. 생각해보면 그때 이름을 물어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사실 그 때 저에게는 개의 이름보다 그저 낯선 개 한 마리가 우두커니 내게 남겨졌다는 사실만이 마음에 남을 뿐이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 이름 모를 개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그 분들을 보냈습니다. 어디 가든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런 달래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고, 달래와 보낸 그 시간동안 처음에는 조금 을씨년스러웠던 내 옥탑방이 이제는 그 어떤 공간보다 아늑하고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주민들과도 가까워지고 함께 농사일하며, 힘들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국방부가 빈집철거를 하겠다고 한 게 벌써 2개월이 지났고, 언제 어느 때 또 포크레인을 끌고 들어올 지 몰라 불안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내 방, 올 여름 찜통 같았던 2층 옥탑방을 철거하러 들어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추리에 들어온 지 7개월... 주민과 함께 이 땅 지켜낼 것
대추리에 살겠다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내려온 것이 7개월이 되었습니다. 이 곳에 도착한 첫날 아침,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트랙터가 눈을 치우며 다니던 그 겨울, 대추리에는 쇠망치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사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을 죄다 부수고 떠났고, 떠나간 빈집에 고물상이 들어와 헐어버리는 일들이 날마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떠난 집이니 허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쇠망치로 부숴 놓은 창문과 문짝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쇠망치가 창문을 내리칠 때 마을 주민들의 가슴에도 쇳덩이 하나가 내려앉았겠지요. 유난히도 추운 겨울을 보낸 대추리·도두리 주민들. 또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국방부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 등 돌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수 십 년을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얼굴만 봐도 이웃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혹은, 남겨지면서 감당해야 할 아픔들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요. 국방부와 정부는 주민들의 싸움을 보상금 문제로 호도하고 있지만 도대체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이 망가진 730년 된 대추리의 역사는, 그렇게 우애 좋게 살았던 대추리 사람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요.
이 땅에서 죽을 거라고, 끝까지 지킬 거라고 말씀하시는 대추리 방효태(70)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 사람들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 '견디지 못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전화를 해 '융자를 주지 않냐' '땅 값이 오르지 않았냐' 등의 말로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힘든 주민들의 마음을 이용해 회유하고 이간질하려는 야비하고 비열한 정부 관료들의 수작에 치가 떨릴 뿐입니다.
대추리가, 도두리가 떠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자꾸자꾸 채워지는 마을이기를 바랬습니다. 파괴되고 무너지는 마을이 아니라 주민들의 역사가, 땀과 눈물이, 한숨과 웃음이 그대로 지켜지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가끔 큰 집회가 있을 때 와 보는 곳이었던 이 마을에 짐을 싸 들고 올 때 정말 그렇게 온몸으로 그것들을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인간방패라도 되어 철거를 막아내고 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내는 싸움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무능하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노무현정권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며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짓밟고 마을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외부인을 차단하는 검문검색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주민들은 지난 4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고 또 견디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겨울 볏단을 깔고 대추초등학교 앞을 지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노인정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의 밥을 하며 싸움을 이어온 여성농민들, 때려부수러 온다는데 자꾸자꾸 마을에 원두막을 짓는 대추리 아저씨들…. 그런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하루하루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이 시간들을 너무나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간직할 것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한 숱한 순간들을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할 것입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었던 겨울을 이겨낸 주민들은 철조망으로 논을 가로막힌 채 봄을 빼앗겼고, 무더운 여름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이는 가을입니다. 저도 대추리의 네 가지 계절을 다 살아보게 되었습니다. 달래가 낳은 강아지 네 마리는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걸음을 떼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강아지들이 9월이 되고 찬바람이 많이 불면 깡충거리며 뛰어다니겠지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이 그런 강아지들을 보면서 올 가을, 겨울을 잘 이겨내고 올해에도, 내년에도 이 곳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벼랑 끝에서도 질긴 싸움의 끈을 놓지 않는 주민들은 제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끝을 알 수 없지만 주민들과 함께 끝까지 함께 저항하고 이 땅을 지켜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