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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생각을 이어갈 시간적인 여우가 없었다. 두뇌의 회전보다는 위험을 느낀 몸이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몸을 비틀어 하체를 감싸오는 도광의 회오리를 이용해 튕겨나가려는 의도를 접고 오히려 몸을 웅크리며 도광 속에 몸을 맡겼다.
까가가강---!
팔목에 댄 두개의 소도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맹렬하게 회전시키면서 주위에서 파고드는 도광을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스읏---!
미처 막지 못한 한줄기 도광이 그의 옆구리를 스쳐지나갔다. 다행인지 아니면 상대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도는 살을 베지 않고 옷깃만 갈라놓은 채 지나갔다. 그 순간을 이용해 설중행은 발을 지면에 대며 맹렬하게 양 팔을 뻗었다.
슈우우--- 쇄액---!
그의 양팔에 매달렸던 소도가 상대를 향해 빠르게 쏘아갔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었다. 백도 자인 역시 설중행이 그렇게 급박한 순간에 물러나지 않고 공격해 올지는 예상 못했는지 공격의 기세를 늦추며 몸을 슬쩍 수평으로 뉘면서 날아오는 두 개의 소도를 튕겨 내고는 재차 몸을 회전시키면서 다시 튕겼다가 파고드는 소도를 맹렬하게 쳐냈다.
따당-- 따다당---!
허나 설중행의 소도가 무서운 점이 이것이었다. 소도는 가는 은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쏘아오는 소도를 튕겨냈다고 안심하는 순간 허공에서 회전하면서 다시 상의 뒤나 옆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빨라 매우 치명적이었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상대는 그렇게 쓰러졌던 것이다. 헌데 백도 자인은 이미 그러한 변화를 알아채고 있었던 듯 아주 여유 있게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아미(峨嵋)의 구전환영보(九轉幻影步)에 소림(少林)의 무상각(無上脚)이라..... 더구나 이미 자유자재로 소도를 놀리는 수준에 올랐군. 그 동안 놀지는 않았던 모양이구나.”
백도 자인은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허나 이상하게도 지금은 무엇이 즐거운지 설중행보다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설중행은 자인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를 알고 있다!’
이미 설중행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백도의 손속은 날카롭기는 해도 치명적인 살수를 펼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저 자가 갑자기 나를 공격하는 것인가? 무슨 이유일까?’
백도 자인은 운중보 내에서도 있는 듯 없는 존재였다. 운중보에서 행하는 어떠한 행사나 모임에 나온 적도 없었고, 누구와 친분을 가진 적도 없었다. 설중행과도 마찬가지였다. 말 한마디 나누어 본적도 없는 사이였고, 게다가 십이 년 전에 그의 사부에 의해 이곳을 쫓겨난 게으른 소년을 알고 있을 리도 만무했다. 헌데 이미 자신을 알아본 듯 하고 자신을 갑자기 공격해 온 이유가 무엇인지 머리통이 터져 나갈 만큼 궁금했다.
“이번에는 아마 네가 가진 두 가지 절기(絶技) 중 하나 정도는 사용해야 막을 수 있을게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설중행은 또 다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신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또한 그것을 가르쳐 준 인물조차 자신이 익혔으리라 기억하지 않을 두 가지 절기를 이미 백도가 알고 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그의 눈에 비친 백도의 신형이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흐릿해 졌다. 동시에 백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며 어둠 속에서 구슬 굴러가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나며 희끗한 푸른 섬광이 그의 아홉 군데 대혈(大穴)을 노리며 쏘아왔다.
띠리링-----띠딩--
‘옥음지(玉音指)......?’
설중행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말만 들었던 터였다. 하지만 구슬이 구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 무공이었다. 그것이라면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는 허공에 몸을 띠우며 회전했다. 동시에 회전시키는 반탄력으로 진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한 번 더 허공으로 도약했다.
가슴 쪽에서 찌르르 통증이 왔다. 뒷머리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진기를 더 끌어올리면 정말 혈맥이 터져나갈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도가 말한 그 두 가지 무공 중 한 가지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곳 운중보에서 그 두 가지 무공 중 하나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떠한 여파를 가져올지 모르는 중대사였다.
“헙...!”
낭패였다. 사실 고수들 간의 대결에 있어 허공으로 몸을 띄운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신형을 빨리 놀리기도 힘들 뿐 아니라 전신에 허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옥음지를 피하기만 하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몸을 허공에 띠운 채로 오랫동안 날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진기의 운용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래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발출되었던 푸른 기운이 그의 발밑을 스쳐지나갔다는 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인이 의도적으로 치명적인 살수를 펼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괜찮아... 기대 이상이야....”
상대의 말이 들리는 순간 지면으로 내려서던 설중행은 오른쪽 어깨에 따끔한 통증과 함께 목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인간이라면 가는 솔잎이 견정혈(肩井穴)에 꽂히고 하얀 섬광이 흐르는 도가 그의 목에 닿아있는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옥음지였소?”
“아주 똑똑해졌어. 이쯤에서 끝내자? 짧은 순간에 살기가 없다고 느끼자 목을 갖다댄다?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겠는걸...?”
“당신은 누구요? 왜 이러는 거요?”
“끝까지 모르는 척이라....? 그래야 정상이지. 헌데 어디 몸이 불편한가? 왜 진기의 흐름이 자꾸 끊기지?”
“...........!”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상대는 이미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 더 이상 시침을 떼는 것보다는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었다. 갑자기 목 아래에서 싸늘한 도기가 사라졌다. 어느새 백도 자인이 신형을 돌리며 몇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내가 바로 너였군. 하지만 그녀는 네 몫이 아니야. 즐기는 것이야 말릴 수 없지만..... 여하튼 그녀는 불행을 가져오는 여자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도대체 갑작스럽게 나타나 알 수 없는 드잡이 질에다가 이제는 궁수유에 관한 말까지?
‘조금 전 연못가에서 그녀와의 방사를 지켜보았다!’
가슴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알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분명 보았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그 연못을 알고 있을까? 또한 백도는 궁수유와 어떤 관계일까? 아니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한 저 말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저 자는 무엇을 노리고 자신을 공격한 것일까? 그리고 충분히 자신을 죽일 수 있음에도 왜 살려주는 것일까?
“당신은...?”
의문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정작 물으려 할 때에는 이미 백도 자인의 모습은 없었다. 갑자기 설중행의 전신에서 지독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자신을 알고 있는 한 자신의 편을 만들지 않으면 죽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전신에서 살기를 지웠다. 과연 그를 죽일 수 있을까? 또한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든 아니든 어쩌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귀찮을지는 몰라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헌데 의식적이든 아니든 백도 자인이 떠나면서 힐끗 바라 본 숲 쪽에는 또 한 인물이 조용히 서 있었다. 바로 보주의 셋째 제자인 모가두였다. 그는 설중행이 장내를 떠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 본 뒤에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덧붙이는 글 | 추석 연휴 동안 연재를 쉬겠습니다. 10월 9일 다시 뵙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추석 명절 잘 보내시기 바라며 고향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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