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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돌쩌귀'란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게 하기 위한 쇠붙이다. 암수 두 개로 된 한 벌의 물건으로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서 맞춘다. 그러니 돌쩌귀는 문이 열려있는 시간 잠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을 뿐 늘 사이좋게 꼭 붙어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쇠살을 부비며 서로 하나임을 확인하는 하는 돌쩌귀, 그들의 사랑은 참으로 격렬하고 진하다. 한 번 짝이 된 돌쩌귀는 평생을 같이하고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제철을 조금 지난 '돌쩌귀'라는 이름을 가진 꽃을 만났다. 가을 초입에 피어나는 꽃인데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에 만났으니 끝물이다. 끝물이라도 귀한 꽃은 만나고 볼 일이다.

웬만한 식물도감에서는 그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은 꽃이다. 집에 그런대로 쓸만한 세 권의 식물도감이 있는데 세 군데 모두 '돌쩌귀'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들 같은 사랑을 하는 이들이 드문 것처럼, 그들도 이 산하에서 드문 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그런데 어쩌자고 이 꽃이 '돌쩌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일까? 꿀에 취한 벌이 있는 꽃을 자세히 보면 꽃 위부분에 모자처럼 생긴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꽃잎과 모자부분처럼 생긴 꽃잎이 마치 돌쩌귀처럼 맞물려있다.

그 꽃을 보고 '돌쩌귀'를 연상해낸 눈썰미는 정말 대단하다. 투구꽃과 구분하기조차 힘드니 투구꽃 앞에 다른 이름만 살짝 넣었어도 되었을 터인데 전혀 다른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투구꽃의 꽃말은 '산까치'란다. 그렇다면 '돌쩌귀'의 꽃말은 '산까치의 사랑' 정도라고 하면 어떨까? 제법 그럴듯한 전설까지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김민수
사랑하고 또 사랑하던 산까치가 부부가 있었다. 둘은 늘 행복했다. 그 행복한 마음을 담아 이른 아침이면 높은 나뭇가지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랫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은 그 날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곤 했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구렁이가 알에서 막 깨어난 애기산까치들을 잡아먹으려고 산까치 집이 있는 나무로 올라왔던 것이다. 산까치부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투를 벌였다. 구렁이는 물러갔지만 사투 끝에 입은 엄마 산까치의 부상은 너무 컸다.

"여보,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힘내, 아이들이 있잖아. 그 아이들이 날기 시작할 때까지만 기다려."
"이제 더 버틸 힘이 없어요. 우리가 아침이면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노래하던 그 나무아래 나를 묻어주세요."

그렇게 엄마 산까치는 애기들과 남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단다. 남편 산까치는 아내가 부탁한 나무 아래 정성스럽게 묻어주었단다. 그리고 얼마 뒤 애기 산까치들은 날기 시작했고, 이제 하나 둘 둥지를 떠나 독립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단다. 마지막 애기 산까치가 날아간 날부터 남편 산까치는 둥지아래에 있는 아내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고, 이내 그 곳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어. 그리고 이듬해 가을, 그러니까 알에서 깨어난 산까치들이 날기 시작할 무렵에 그 곳에서 꽃이 피어났단다. 그 꽃의 이름? 돌쩌귀꽃이란다.

ⓒ 김민수
돌쩌귀 가운데는 흰돌쩌귀도 있다. 만나기 쉬운 꽃이 아니라는데 운수 좋은 날인가보다. 강원도 평창의 어느 계곡을 낀 야산을 걷다 만났는데 지난 여름 수해피해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왜소함, 언론매체를 통해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저 '세상에'를 연발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상처를 입은 땅, 그곳이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 상처를 보듬고 있었다. 이제 그 상처가 아물면 다양한 들꽃들이 그 곳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물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겠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노란 산국과 구절초가 한창 피어나는 길, 물매화와 왜솜다리는 돌쩌귀처럼 거의 끝물이고 도도한 솔체도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는가 보다. 고려엉겅퀴와 자주쓴풀이 군데군데 피어나면서 아직도 꽃의 행렬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 김민수
꽃이 핀다.
꽃이 진다.
그 꽃 지면 저 꽃 피고,
저 꽃 지면 이 꽃 핀다.
꽃이 핀다.
꽃이 진다.
하얀 겨울엔 눈꽃 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 없는 날 없도록 꽃이 핀다. - 자작시 '꽃 없는 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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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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