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디스크 증상이 있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내용의 진단서
디스크 증상이 있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내용의 진단서 ⓒ 고기복
헤리(Heri Prisduyanto)는 작년 11월 20일 고용허가제로 입국했으나 불법 입국 여부로 인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조사를 받아야 했었고, 조사가 끝나고도 한 동안 근무처가 없어 마음을 졸여야 했던 사람입니다.

법무부 조사가 끝난 후 한동안 쉼터에서 생활한 헤리는 실직한 여러 친구들과 근무처 변경 과정 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봤습니다. 그래서 헤리는 '일할 수만 있다면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견뎌낼 것'이라고 말을 하곤 했었습니다.

다른 인도네시아인들에 비해 유독 검은 피부에 무엇에 놀란 것처럼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진 그는 실제보다 야위고 약해 보였었습니다. 그런 그가 직장을 찾아 쉼터를 나설 때, "쉼터 생활을 기억하며 마음 야무지게 먹고 일해야 된다"고 다짐에 다짐을 주었었습니다.

그런 그가 쉼터를 찾아왔습니다. 그를 보는 순간 말수가 적어 어디 가서 일이나 제대로 할 지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새삼스러웠습니다. 불안해했던 것과는 달리 헤리는 1년여 동안을 묵묵히 일했고, 직장 내에서도 착실하다는 평을 듣는 듯했습니다.

"벌써 일 년은 된 것 같다"고 말을 꺼내자 "열 달 조금 넘었다"라면서 그가 제 책상 앞에 내놓은 것은 의사의 진단서였습니다. 그제야 몇 번인가 토요일에 전화를 해서 몸이 아픈데 회사를 옮길 수 있느냐고 묻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어떻게 직장을 구했는지 벌써 잊었니? 참고 일하다 보면 적응될 거야. 3년은 못 채우더라도 1년은 채워야지"하며 다독거렸었습니다. 헤리는 저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병원을 찾았었는데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적어 준 진단서를 갖고 왔다고 했습니다.

진단서에는 "상기 환자는 허리통증, 디스크 증세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허리에 무리가 가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헤리가 그 동안 감내했을 고통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넘겼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헤리는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근무처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편입반대 농성 관계로 동행할 수 없었던 저는 해당 외국인고용지원센터 앞으로 협조문을 적어 보냈습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고용관리지침에 의하면 질병, 부상 등으로 부여된 업무수행이 곤란하나 다른 사업장에서 근무는 가능할 경우, 노동부 직권으로 근무처 변경을 허락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헤리를 혼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협조문을 들고 간 헤리를 앞에 두고 인천외국인고용지원센터 직원이 쉼터로 전화를 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담당 직원은 우리쉼터 사무국장에게 전화상으로 "누구나 그 정도의 진단서는 뗄 수 있다. 사장 말로는 '평소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돈을 더 받으려고 회사를 옮기려는 것이다'라고 한다"며 근무처변경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노동부 공무원이 왜 고용주 입장을 대변해?

이익 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을 반대하는 집회에서의 모습
이익 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을 반대하는 집회에서의 모습 ⓒ 고기복
이주노동자의 근무처 변경을 위해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줄 의사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헤리를 한 달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면서 근무처 변경을 위해 허위 진단서를 받을 정도의 주변머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노동부 외국인고용센터 직원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의사의 진단서는 불신하고, 고용주의 입장은 그대로 대변하는 고용지원센터 직원들을 한두 번 봐 왔던 것이 아닙니다. 이들 직원들의 상담업무를 곁에서 지켜보다 보면 '상식적인' 선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주 보게 돼 화가 치밀었습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요즘 노동부를 비롯한 국무조정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 때문이었습니다. 국무조정실에선 산업연수제가 폐지되는 올해 말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후관리를 이익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 등과 같은 단체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원칙과 법리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노동부 직원, 공무원들마저 고용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용주를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이익단체들을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의 대행기관으로 선정했을 때에 일어날 일은 아직 겪지 않아도 눈에 훤한 일일 것입니다.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그렇게 일해!'라고 강요하는 일들이 반복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지금 노동부와 국무조정실은 '이주노동자 인권보호'는 안중에 두지 않고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이익단체를 고용허가제 대행기관으로 추진하고 있어 큰 걱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헤리의 근무처변경과 관련하여 노동부에 항의한 결과, 해당 상담원은 일단 해당부서 팀장에게 보고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