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대가를 접수하는 곳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산하 '명승지종합개발회사'. 명목상으로는 연관성이 없다. 명승지와 핵무기.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따라서 금강산 관광대가의 군비 전용을 입증해 사업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좀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내놔야 한다. 그럼 조중동이 내놓은 증거, 또는 근거는 뭘까? 이런 것들이다.
<동아일보> 북한이 항목별로 구분해 자금을 관리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관광대금이 핵 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선일보> 미 의회조사국의 한반도 담당 래리 닉시 연구원도 지난해 한미관계 보고서에서 "현대 자금이 북한에 들어간 시기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부품·자재를 대량 구입한 시기가 일치하는 등 금강산 관광 등 사업 대가로 지불한 현금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가속화를 도왔다"라고 말했다.
약하다. <동아일보>가 내민 근거는 막연한 추정이다. 개연성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조선일보>가 근거로 내민 래리 닉시 연구원의 보고서는 핀트가 맞지 않는다. 현대 자금과 고농축 우라늄 부품·자재를 언급하고 있으나 미 정보당국이 밝힌 북한 핵무기의 원료는 우라늄이 아니라 플루토늄이었다.
유엔 결의안이 '대량살상무기 관련 자금과 물자'의 거래 중단을 명시했으니까 범위를 넓힌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전한 래리 닉시 연구원의 보고서에는 단정만 있지 근거는 제시돼 있지 않다.
미국은 증거가 있는 걸까
관심사는 미국이다. 국내 언론이 제시한 근거 외에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증거를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미국이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면 한국 정부는 코너에 몰린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유엔 결의안에 기초해 우리가 재량껏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판단의 준거는 금강산 관광대가와 대량살상무기와의 상관성을 입증할 증거다. 미국이 이 증거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내민다면 한국 정부가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안 내놓는 건지, 못 내놓는 건지조차 불분명하다.
가정하자. "북한 권부에 돈을 갖다 바친다"는 힐 차관보의 주장이 조중동과 같은 막연한 추정에 기초한 것이라면 한국 정부가 밀릴 이유는 없다. 막연한 의심에 밀려 남북 대화의 끈을 놓기에는 한반도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게다가 판정 주체는 미국이 아니다. 금강산 관광대가의 군비 전용 여부를 둘러싸고 한국과 다른 나라가 이견을 보일 경우 이를 최종 판정하는 곳은 유엔 안보리 산하에 구성되는 '제재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15개 안보리 이사국이 모두 참여하게 돼 있다. 이런 제재위원회에서 막연한 추정에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의혹의 입증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미지수를 걷어내는 방법은 북한에 들어가 실사를 벌이는 일이겠지만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한 가지로 좁혀진다. 입증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느냐 하는 문제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 입증 책임을 물을 것인지, 아니면 의혹을 사는 쪽에 물을 것인지다.
하지만 제재위원회는 꾸려지지도 않았고, 입증 책임 귀속 문제는 더더욱 거론조차 안 되고 있다. 그저 미국 혼자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주장도 명료하지 않다. 힐 차관보는 엊그제 금강산은 안 된다고 했다가, 어제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