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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계단> 겉그림.
ⓒ 황금가지
일본에도 사형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의 사형제도처럼,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일본에서는 사형 판결 선고를 받은 이후에 실제로 형이 집행될 때까지 총 5개 부서, 13명의 관료 결재를 받아야 한다. 이 13개의 단계를 하나하나 거칠 때마다 사형수는 그만큼 죽음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이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추리소설 <13 계단>을 읽기 전부터, 이 작품은 사형제도를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대강 알고 있었다. 그때 문득 '사형수가 사형대로 올라가는 계단의 실제수가 13개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 <그린 마일>처럼. 물론 이 생각은 빗나갔다. 완전히 헛짚은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제목인 '13 계단'은 작품 내에서 여러 가지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 작품은 중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교수형을 집행하는 사형장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넓지 않은 사형장에 들어가는 집행관은 총 7명이다. 그중에서 한 명은 사형수에게 눈가리개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수갑을 채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사형수의 목에 밧줄을 거는 일을 한다.

사형장의 한쪽에는 형장의 발판을 빼기 위한 스위치가 3개 있다. 집행관 중에서 3명은 이 스위치를 각자 하나씩 맡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서 스위치를 누른다. 그러면 사형이 집행되는 것이다. 스위치가 3개인 이유는 어느 것이 사형수를 저승으로 보냈는지, 3명의 스위치 담당자가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오래 복무했더라도, 사형장에서 실제 사형을 집행하는 역할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아무리 극악한 죄를 저지른 죄인이더라도, 한 인간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의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꽤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법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한 손 거들었다는 자책감도 남을 것이다. 누가 가장 많은 죄의식을 느낄까? 목에 밧줄을 건 사람? 스위치를 누른 사람?

교도소 수감자와 교도관의 만남

<13 계단>에는 사직을 앞둔 교도관 '난고 쇼지'가 등장한다. 그는 복무 중에 두 명의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첫 사형을 집행하는 날, 난고는 그 사형수의 목에 밧줄을 거는 역할을 했다. 사형수는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려고 하는 난고의 눈을 바라보며 '살려주세요, 절 죽이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원한다.

그 집행이 있던 날부터, 난고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과 강박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사직을 결심한 난고 앞에 한 변호사가 나타나서 어떤 일을 의뢰한다. 그리고 난고는 자신의 죄를 씻을 속죄의 방법으로 그 일을 받아들인다.

이런 난고 쇼지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인물은 '미카미 준이치'다. 2년 전에 우발적인 범행으로 사람을 죽인 젊은이다. 상해 치사로 2년 형을 받았지만 현재는 가석방된 상태로 보호 관찰 대상이다. 이런 준이치에게 난고가 다가와서 함께 일을 하자고 권유한다. 준이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10년 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 두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점이다. 한 명은 2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며 그 죄값을 치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죄값을 치를 필요는 없지만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한다. 두 사람은 살인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준이치의 가정은 배상금 때문에 경제가 파탄 났고, 친동생도 준이치를 증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이전에 알고 지내던 주위 사람들도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난고는 첫 사형집행을 마친 날, 시내를 돌아다니며 폭음을 하고 구토하며 소리 내서 운다. '그런 죄인은 죽어야 마땅해!'라고 애써 합리화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래서인지 처음에는 이들의 만남이 어색하기만 하다. 얼마 전까지 한 명은 교도소에 수감된 죄인이었고, 다른 한명은 그 죄인을 감시하는 교도관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마음을 맞추고 서로를 배려해가며 일을 진행해간다. 이들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형제도와 일본의 교도행정과 보호관찰 실태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물론 이들의 대화는 사형제도가 옳은지 그른지, 또는 사형제도가 필요한지 아닌지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다. 그보다는 교도관인 난고가, 사형을 집행했던 담당자로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담담하게 독백처럼 말하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13 계단>

무거워 보이는 내용을 소재 중의 하나로 다루고 있지만, 그 이전에 이 작품은 잘 만들어진 한편의 추리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은 어두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계속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전개와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구성이다.

난고와 준이치는 10년 전의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사건 피해자의 가족과 담당 검사도 그다지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사건의 발생부터 시작해서 모든 정황과 가설을 바탕으로 직접 발로 뛰어가며 사건을 재구성해 나간다. 그리고 몇 차례의 긴박한 반전과 함께 맞이하는 대단원.

<13 계단>은 일본에서 추리작가의 등용문이라고 알려진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다. 일본의 대표적 추리작가인 미야베 미유키가 당시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13계단>을 가리켜서 '도저히 신인작가라고 믿을 수 없다. 주도면밀한 구성과 탄탄하고 이지적인 문장에 읽을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나온다'라고 말했다. <13 계단>을 읽다보면 미야베 미유키의 이런 극찬에 대해서 동감할 것이다.

잘 짜여진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다 읽고 나니까 자꾸 교도소 사형장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사형장에서는 사형수에게 마지막 만찬이라는 명목으로 푸짐한 음식이 주어진다. 그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형수, 그리고 그 사형수를 협박하고 달래서 기어이 교수형을 시키는 집행관들. 그 일을 겪고 나서 폭음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교도관.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덧붙이는 글 |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전새롬 옮김. 황금가지 펴냄.


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황금가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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