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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병원 가시는 마을어른과 출근길에 함께 하면서 올 농사가 어떠냐고 여쭤보았다. 농사가 잘 되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것저것 묻고 답하던 중, 평소에 궁금한 게 우리 달내마을에선 벼농사에 얼마나 약을 많이 치느냐였다.

어른 말씀이 올해는 약을 거의 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많이 치는 해도 한두 번쯤이지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병충해가 별로 없어 대부분 약 냄새 한 번 풍기지 않았을 거라는 말씀이었다. 약을 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대뜸 떠오른 게 바로 벼메뚜기였다.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

"그럼 벼메뚜기를 잡을 수 있겠네요?"
"아침에 보니까 제법 많이 보이던데…."


▲ 왼쪽은 한 마리, 가운데는 암수 두 마리, 오른쪽은 사마귀에 잡아먹히기 직전의 벼메뚜기
ⓒ 정판수
벼메뚜기는 보는 즐거움, 잡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하여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우선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메뚜기가 산다는 건 논에 그만큼 약을 치지 않았다는 증거일 테고, 또 그만큼 논이 살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벼가 익을 무렵의 메뚜기는 누렇게 익은 소위 황금벼와 빛깔이 같다. 누런 벼 잎사귀에 달라붙어 있는 녀석들의 모습은 마치 엄마 등에 업혀 있는 아가랑 닮아 있다. 고 예쁜 모습에 반하면 잡을 때 망설이게 되지만.

논에는 벼메뚜기가 한 마디로 말하면 '버글버글'했다. 한 녀석만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암수 두 마리가 붙어 있는 경우, 심지어 세 마리가 붙어 있기도 했다. 논둑에 가까운 부분만 보아도 이럴진대 논 중심부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을지….

▲ 메뚜기 잡는 아내의 모습. 나보다 훨씬 즐거워했다
ⓒ 정판수
40년만의 도전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땐 곧잘 잡으러 다녔기에 그때의 감격을 다시 맛보면서 손을 휘둘렀으나 역시 처음엔 잘 안 잡혔다. 손을 훑고 나면 메뚜기 대신 벼나 잎사귀가 손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50%의 확률에서 60% 70% … 이내 90%의 포획률을 이루었다.

아내와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논을 휘젓고 다녔다. 아내는 잡는 대로 페트병에 넣고 나는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며 강아지풀에 등을 끼웠다. 날씨만 흐리지 않았더라면 좀더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텐데….

추수하시던 이장댁 아주머니가 지금보다는 아침 해 뜰 무렵에 나오면 메뚜기가 힘도 못 쓰니 잡기 훨씬 쉽다고 거드신다. 햇빛이 쨍쨍할 때가 많기는 더 많지만 그때는 활발해서 잡기 힘들고. 또 논이 아니더라도 논과 개울 사이의 풀밭에도 많다 하신다. 정말이었다.

▲ 왼쪽은 강아지풀에 끼운 메뚜기, 오른쪽은 1차로 볶은 메뚜기.
ⓒ 정판수
보는 재미, 잡는 재미가 있다면 삼락(三樂) 중의 백미는 먹는 재미가 아닐까? 프라이팬에 올려놓자 이내 불그스레해졌다. 이걸 바로 먹기보다는 다시 한번 더 볶아야 한다. 즉 날개를 다 떼버리고 볶는 작업을.

불그스레한 빛깔이 다시 약간 거무스레한 빛깔이 되면 먹을 때가 되었다. 익었다고 하여 따뜻할 때 바로 먹으면 내장 씹히는 듯한 느낌이 있으니 식혀서 먹는 게 좋다. 식어야 바삭바삭하여 씹는 느낌이 살기에. 그리고 맛소금은 볶은 뒤에 치는 게 더 좋다.

볶은 메뚜기는 그대로 먹어도 되고, 간장에 졸여 먹어도 된다. 술안주나 간식거리로는 그대로가 좋고, 반찬으로 쓰려면 간장에 졸인 게 좋다.

전부터 벼르고 있던, 담근 술을 맛볼 기회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메뚜기를 안주로 하여 오디주, 칡주, 오가피주, 앵두주를 한 잔 한 잔씩 맛보는 동안 가을밤은 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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