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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추석연휴를 이용해서 창덕궁 자유관람을 했다. 이제 곧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했고, 앞으로는 자유관람일인 목요일 중 시간이 나는 날이 없을 것 같아서 추석연휴의 목요일(10월 5일)을 이용해 창덕궁을 관람했다. 이날을 놓치면, 다음 창덕궁 자유관람을 하기 위해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해서 서둘러 내린 결정이었다.

필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개방 시간(오전 9시 15분)보다 30분 일찍 정문인 돈화문으로 갔다. 필자가 갔을 때 그곳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쨌든 남는 시간을 활용해 돈화문과 그 주변을 자세히 살펴봤다.

▲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이다.
ⓒ 한대일
한창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할 즈음, 눈에 띄는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매표소에 걸려있는 "도토리 충전은 미니홈피에서"라는 문구였다. 창덕궁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는 뜻이다.

다만 이를 진부하게 표현하지 않고, 도토리라는 이름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사이버머니 명칭과 같다는 점에 착안,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문구까지 따로 올릴 정도로 사람들이 도토리를 그렇게 많이 가져가나? 필자는 이런 의문을 품었다. 때마침 시간이 되어서 그토록 바라던 창덕궁 자유관람을 하게 되었다.

▲ 도토리 줍기 자제 당부를 재치있게 표현한 안내문
ⓒ 한대일
그동안 안내원을 따라 단체관람밖에 하지 못한 필자에게 이번 창덕궁 자유관람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고(나중에 사진 수를 세어보니 900장을 가볍게 넘겼다) 각 건물의 생김새를 자세히 훑어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자유관람의 가장 좋은 점은,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건물이 있으면 시간제한 없이 그 건물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오래 머물렀던 곳은 인정전, 선정전, 존덕정, 그리고 옥류천 지역이었다.

▲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 한대일
창덕궁 영역을 본 뒤 후원으로 넘어가는 길을 밟게 되었다.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소리는 사람들에게 곧 가을임을 알려주었다. 추석연휴를 이용해 창덕궁으로 나들이 나온 관람객들은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동반자와 함께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후원으로 넘어가는 길
ⓒ 한대일
이 와중에 필자는 무심코 딱딱한 것을 밟게 되었다. 처음에는 돌멩이인 줄 알았으나, 살펴보니 도토리였다. 길바닥을 찬찬히 보니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다. 후원으로 가는 길 주변에는 나무가 울창하다. 그 중에는 떡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종류들도 많은데, 도토리는 바로 이 나무들에서 떨어졌다. 이러한 도토리들은 창덕궁에 서식하는 다람쥐의 겨울 양식이 된다.

▲ 떨어져 있는 도토리들. 하나하나가 다람쥐의 겨울양식이다.
ⓒ 한대일
하지만 필자는 또 하나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관람객 중 상당수가 도토리를 챙기고 있었다. 도토리라는 열매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호기심으로 도토리를 한주먹 들고 있었다. 어른들도 이런 어린이들을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칭찬하면서 자신들도 도토리 줍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매표소에는 "도토리 충전은 미니홈피에서"라는 독창적인 글귀가 있었다. 그리고 '도토리를 줍지 마세요'라는 문구도 후원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를 보지 못했을 리 없건만 그 사람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 아니 쇠눈에 문구 읽기' 식이었나 보다.

후원 곳곳은 참나무로 울창하다. 따라서 부용정 영역이든, 애련정 영역이든, 옥류천 영역이든 도토리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그만큼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의 영역도 넓다. 어떤 사람은 비닐봉지나 배낭을 가져와서 '전문적으로' 도토리를 줍는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다람쥐에 대한 생각은 안 하느냐고 탓하기에 앞서, 필자는 이들이 도대체 그 비싼 돈을 들여 창덕궁에 온 연유가 궁금해졌다.

이 대목에서 역사를 돌아보자. <국부론>의 저자이자 고전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는 위대한 경제학자임과 동시에 어쩌면 위대한 자연학자일지도 모른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가 말한 경제학의 원칙, 즉 '보이지 않는 손'은 자연계에도 존재하며 자연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겉으로는 무분별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물론 경제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는 다르다)에 의해 체계적인 법칙을 유지한 채 존재한다.

이렇게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자연을 인간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거기에 대해서도 스미스는 해답을 제시한다. '레세페르(laissez-faire)!' 자유방임, 즉 간섭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뜻이다. 스미스 말대로 인간이 자연에 간섭하거나 규제하지 말고 그냥 놔둬야만 자연은 생태계를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람쥐의 양식을 빼앗아가는 '도토리 줍기'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며 이는 다람쥐를 비롯한 창덕궁 내 생태계에 분명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간의 자연 간섭 행위는 황해 앞바다에서도 나타난다. 이때는 양식을 빼앗아가는 창덕궁 사례와는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영종도나 석모도 등 황해 섬으로 가는 유람선에는 꼭 갈매기 떼가 달라붙는다. 인간들이 주는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서이다. 갈매기들은 생선 대신 인간들이 만든 과자로 생계를 유지하고, 인간은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줌으로써 또 하나의 낭만을 찾는다. 유람선 내부에는 아예 갈매기용 먹이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는 겉으로 보면 갈매기에게 긍정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간섭 때문에 갈매기들은 힘들여 물고기를 잡는 대신 인간의 과자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점차 영양 불균형 상태에 빠지는 건 아닐까? 일부에서는 이런 구걸 행위를 예로 들며 갈매기를 '바다의 비둘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 영종도나 석모도 등 황해 섬들을 육지와 잇는 다리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는 곧 유람선이 오갈 필요성이 없어짐을 의미하며 갈매기에게는 중요한 먹이 조달처가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미 인간이 주는 과자에 길들여진 갈매기는 다른 먹이를 찾는 대신 계속 인간의 과자에 안주할 우려도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 행위가 자칫 갈매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 부용정 영역.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주합루이다.
ⓒ 한대일
사람들의 무분별한 도토리 줍기 광경을 본 필자는 부용정부터 옥류천에 도달하기 전까지, 도토리를 보이는 족족 숲 너머로 던져버렸다. 인간의 손길에서 도토리를 보호해서 다람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생각을 한 이가 필자만은 아니었는지, 몇몇 사람들도 주운 도토리를 울창한 숲으로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계속 도토리를 자기 배낭에 챙겨 넣고 있었다. 주워서 던지는 쪽과 주워서 챙겨가는 쪽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감마저 흘렀다.

▲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도토리들
ⓒ 한대일
인간은 대개 도토리를 호기심으로 줍겠지만,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 양식이다. 비유하면, 어느 누군가가 인간이 먹을 쌀이며 과일, 고기 등을 '호기심' 차원에서 가져가는 것과 같다. 인간은 과연 이를 달가워할까?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다람쥐도 마찬가지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필자의 머리는 복잡해졌고 어느덧 창덕궁 답사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한 달여가 지난 11월 중순 창덕궁을 다시 찾았을 때 '도토리 충전은 미니홈피에서'란 안내문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필자는 '입실론 (Epsilon)'이란 필명을 쓰고 있으며, 현재 싸이월드에 '입실론의 C.A & so on Travel 가이드페이퍼'를 발행하고 있다.  창덕궁에 대한 페이퍼는 아마 내년 봄 쯤이 되야 나올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역사여행을 가이드함으로써 입장료와 교통비만 있으면 초등학생들도 쉽게 해당 목적지로 가게끔 하는 것이 필자 여행의 근본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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