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오후 2시에 루크라를 출발, 5시경 팍딩에 도착하여 하루 여장(旅裝)을 풀었다. 우리가 체류한 롯지 산장 앞은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루크라에서 남체에 이르는 길 좌우 마을에 일본에서 심은 사과나무가 여러 군데 자라고 있었으나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았는지, 관리 소홀인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루크라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유엔개발프로그램(UNDP)에서 이 구간을 동물 자연 생태환경보호 구역으로 정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분별한 개발이라든가 환경이 파괴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팍딩에서 1박 후 출발한지 5분가량 되어서 다리 하나가 나타나는데 붉은 바탕에 낫과 망치가 흰색으로 그려진 깃발이 나타났다. 마오저뚱과 레닌, 스탈린, 마르크스 초상이 그려진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다.
영어로 된 현수막에 모든 외국인은 통행료를 내야 다리를 통과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반정부군인 마오이스트들이 '1인당 100루피씩(약1400원) X 체재일수'를 내어야 통과시켜준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6명 X 1400원 X 60일 = 총 50만4천원???? 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네팔 정부 문화관광부에 1만 달러(1천만원)을 입산료로 지불한 상태인데 또 반정부군에 의하여 통행세를 내야 하다니 불쾌하기만 했다.
현지 텔레비전 뉴스에 카트만두 시내에서 일반인들이 왜 마오이스트들이 외국인에 돈을 받냐고 항의시위를 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었다.
허름한 텐트로 만든 초소에서 모든 통과 외국인은 카트만두에서 발급받은 원정대 허가증이나 트레킹허가증(단기간 고산 초입을 돌아오는 등산객)을 제시해야 했다. 우리는 원정대 허가증을 보여주는 대신 '우리는 트레커들로서 7일간 체재 하는데 허가증을 분실해 없다'고 하자 그럼 7일 체재비만 내고 가란다.
반정부군 마오이스트 따로 체재비 요구
법이 없는 데서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에 대해 법을 지켜주지 않아도 죄가 아니 되는가 보다. 여기를 통과해 올라가자 '조르살레' 중간마을에 또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홍위병 같은 마오이스트들이 다시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을 세우더니 통행증 검사를 한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로 한다고 하는데 올라 갈 때는 그냥 통과했지만 내려올 때 우리 원정대 정체가 적발되면 '중과태료'를 내어야 한다고 안내하는 포터가 일러준다.
이때 우리와 동행하는 렌지셀파는 내려올 때 한국 대원들이 얼굴이 검게 타고 수염을 안 깎으면 내팔 사람과 비슷하니 한 명씩 개별적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설명해 준다. 또 한편으론 우리가 등반을 마치고 내려올 때 즈음이면 추워서 외국인 통행이 적고 마오이스트들도 추우면 안 나온다고 하니 안도해 본다.
마오이스트가가 접수한 '조르살레' 마을의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는 원정대 퍼미션으로 입산 신고를 했다. 이 관리사무소는 카트만두 정부에서 관리를 하는데 경찰이나 군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마오이스트들과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조르살레에서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1시간 반 가량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남체의 '파노라마' 롯지에 도착했다.
척박한 히말라야 자연환경에 묻혀 살아가는 셀파족들의 건축미학은 중세 서양을 충분히 능가하리라. 이 롯지의 건물의 외부는 반듯하게 다듬어 깎아서 만든 자연 벽돌을 각선미로 쌓아서 안정감과 중후함을 연출하고, 내부 전체를 나무 질감으로 장식하여 티베트 라마불교의 용구와 그림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고산병에 시달리다 도착한 나그네에게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로 맞이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여장을 푼 대원들은 모두 감기 기운이 있는데다 고도를 올려서 어지러움을 많이 느꼈다. 저녁을 마치고 독일과 미국 일본 등지서 온 트레커들과 어울려서 롯지 식당에서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독일서 온 연인 사이의 트레커와 오랜 시간 이야기로 서로가 친숙해지는 시간이었다. 전자 엔지니어라는 그들은 한국을 많이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 대원 재킷의 기아자동차 마크를 보더니 '프레지던트 정몽구' 라고 이야기하고, 김형일 대원을 김정일과 형제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11월 8일 난공불락 원정대는 남체바잘에서 고소 적응을 위해서 하루 휴식과 필요한 부식과 쌀, 육류 등 주요 식량과 항공편으로 가져올 수 없었던 휘발 연료를 구입했다. 또한 현지 연락사무소에 원정대장 입회 하에 입산 신고를 다시 했다.
3440m인 남체바잘에서 한국과 연결하는 전화와 인터넷이 위성으로 되는데 매우 비싸다.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한 번 읽고 간단히 작성하는데 30분이 걸리며, 1만 5천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
30분 인터넷 요금 1만5000원...그나마도 느려
남체바잘에서 탕보체를 향해 언덕을 오르자 눈에 덮인 탐세루크(6608m), 아마다블람(6812m), 로체남벽(8516m), 에베레스트(8850m), 눕체(7879m)의 웅장한 히말라야 연봉이 드러나자 고소에 강한 촬영 담당 성낙종 대원이 단숨에 급사면 사방으로 이동하며 촬영에 여염이 없다. 우리 원정대와 맞아 첫 인사를 나눈 로체남벽은 예년에 비해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다.
3000m가 넘는 수직의 검은 대암벽이 깎아지른 듯 솟은 로체남벽은 주름진 옐로우밴드를 따라 가로 질러 면사포 같은 구름을 이마에 이고 눈부시게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산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뛰듯이 우리 대원 모두가 비장감과 자신감에 넘쳐 나 모두 들떠 환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남체바잘에서부터 로체남벽 베이스캠프까지는 야크(4000m이상 고산에서 자라는 들소) 60마리와 10명의 포터에 나눠 4톤의 물량을 수송하기 시작했다. 이 히말라야 협곡의 유일한 대량 물류수송수단인 야크는 집집마다 적게는 3마리에서 많게는 15마리까지 동원하여 남체바잘 인근의 야크가 총동원되었다.
남체바잘에서 푼기텐가까지는 긴 산허리를 질러 완만하게 이동하다가 탕보체에 이르기 직전 급사면을 올라서는데 고소증세를 느낄 정도가 되었다. 한국서 출발 전 이충직 대장이 대원들에게 구충제 복용과 독감예방주사를 반드시 맞으라고 강조하더니 정작 원정준비로 바빠 안 맞은 그 자신이 남체에서부터 고소증세와 독감에 걸려 침을 못 삼킬 정도로 밤낮 4일간 열병을 앓았다. 다행히 다른 대원들은 서서히 본격적으로 고소에 적응되어 갔다.
오후3시에 텡보체에 도착한 대원들은 대사원에 들러서 원통으로 이뤄진 라마불경 '마니'를 돌리며 안전과 성공적인 산행을 기원하는 의식을 올렸다. 텡보체에서 1박을 체류한 대원들은 다음날 팡보체에서 전대원과 셀파들이 참가한 가운데 합동으로 사원에서 안전과 성공기원제를 올렸다.
이충직 대장만 고소증으로 고생...전 대원들과 셀파, 성공 기원제 지내
추쿵(4700m)에서 하루 체류한 대원들은 길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모레인지대를 3시간 가량 올라 11월 13일 5200미터 지점에 로체남벽 베이스캠프(BC)를 구축하게 되었다. 베이스캠프는 남벽 직하에서 약 1시간 반 가량 떨어진 모레인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대형 본부 텐트와 식당 텐트 2동, 숙박용 텐트 13동이 건설되었다. 본부 텐트는 각 캠프와 운행 대원들을 연결하는 무전통신시설과 위성통신실, 의료실, 상황실로 구성 되었다. 발전기와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하여 필요한 전력을 공급받도록 시설을 설치했다.
B.C건너편에서는 밤낮으로 6~7차례 로체샬(8400m)남벽과 로체남벽 우측 벽에서 거대한 굉음과 버섯구름 후폭풍이 쏟아 내린다. 김형일 부대장과 안치영 대원이 루트정찰 보고를 한 15일 원정대원들은 본부텐트에서 심각한 회의를 장시간 진행했다.
우리가 등반하기로 예상한 슬로베니아 루트보다는 러시안 루트를 선택하자는 정찰 보고가 올라왔다. 이유는 슬로베니아 루트는 등반 거리가 매우 길며 얇은 암, 설벽이 많지만 러시안 루트는 낙석이 빈발하지만 등반거리가 짧고 쌓인 눈이 없어 등반에 유리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나지 않았으며 일단 심사숙고하자는 쪽으로 중지를 모았다. 우리 팀 인근 5분 거리에 하루 늦은 15일 베이스 켐프를 구축한 일본원정대의 다나베 대장이 저녁에 우리 원정대 본부 텐트를 찾아왔다.
상호 잘하자는 일본인 특유의 나긋나긋한 인사와 더불어 자신이 경험한 슬로베니아 루트의 사진과 자료를 상세히 설명하며 협력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이충직 대장이 우리는 러시안 루트를 선택할 여지가 있다고 하자 그는 당황해 하면서 같이 슬로베니아 루트를 권유했다.
또 카트만두를 출발하기 전 다나베 대장이 1캠프 자리가 협소해 4~5동의 텐트 밖에 설치할 수 없으니 각 팀당 2동씩 균등하게 하자고 먼저 제안하자더니 이제 와서 자신의 팀이 4동을 설치하고 한국팀이 1동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충직 대장은 웃으며 다나베 대장에게 차 한 잔 하라고 권유했다.
덧붙이는 글 | *난공불락 로체 원정대 홈페이지 : www.invincibl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