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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날리아는 김포공항을 출발해 도쿄와 디트로이트를 거쳐 워싱턴 도착 예정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린이날을 사흘 앞둔 1988년 5월 2일이었다.
그런데 도쿄를 출발해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비행기는 그만 연착하고 말았다. 결국 애날리아와 다른 두 명의 입양아를 에스코트했던 타일러 병사는 입국심사를 마친 뒤 최종 목적지인 워싱턴행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워싱턴 공항에서 이들을 기다리던 사회복지사는 예정된 비행기가 도착하자 입양아들을 데리러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당황했던 양부모와 사회복지사는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통해 이들이 비행기를 놓친 사실을 확인했다. 초조하게 아이들을 기다리던 이들은 네 시간이 지난 뒤인 밤 11시경에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행기 사진은 애날리아가 타고 왔어야 할 비행기다. 애날리아를 만나고 싶은 열망에 아버지는 공항 창문을 통해 도착하고 있는 비행기를 연속적으로 찍었다. 애날리아 부모의 사랑과 정성이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사진이다.
애날리아 아버지 설명으로는 비록 애날리아가 사진 속의 비행기를 탄 것은 아니었지만 애날리아가 타고 온 비행기도 같은 기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애날리아가 도착한 시간이 밤이어서 이런 생생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만큼 이 사진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애날리아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받은 신분증이다. 지금은 좀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외국인이 장기간 미국에 거주하거나 일을 하게 될 때 이런 카드를 발급 받았다. 영주권자들이 받는 그린카드와 비슷한 이 카드 소지자들은 해마다 비자를 갱신할 필요가 없다.
▲ 애날리아를 환영하는 이종사촌 킴과 레이첼. 이들은 애날리아를 환영하기 위해 직접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오래된 사진이어서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가 다 지워졌다. 맨 왼쪽의 킴은 현재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데 얼마 전에 러시아에서 온 남자아이를 입양했다. 따뜻한 환영에 활짝 웃고 있는 애날리아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미국 생활이 순탄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 인형과 함께 누운 애날리아의 모습이 앙증맞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이종사촌 레이첼, 고양이와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애날리아의 행복한 모습이다.
▲ 사촌오빠 채드의 등에 업혀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애날리아를 예뻐했던 사촌오빠 채드는 애날리아네가 뉴저지로 이사오기 전 마지막 해인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애날리아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 워터맨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시절. 다양한 얼굴색을 가진 아이들과 더불어 애날리아는 이곳에서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 중학교 8학년 졸업 파티 때. 뉴저지 주에 있는 알파공립학교(유치원에서 8학년까지 있음)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다. 성숙하게 보이는 중학생들 가운데 드레스를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애날리아의 모습이 아름답다.
▲ 필립스버그 고등학교 특수교사인 허머 선생님과 복도 라커 앞에서 찍었다. 선생님은 수업 중에 애날리아 수업을 도와주기도 하고, 학교 생활에 대해 문제가 있으면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 애날리아 엄마 데브라는 유방암 수술을 두 번 받았다. 첫번째 수술은 안타깝게도 결혼 20주년 기념일인 특별한 날에 이루어졌다. 데브라는 두 번의 수술을 받은 뒤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 애날리아와 여동생 크리스타는 고모네 집에 가 있었다. 애날리아는 고모네 가족들과 함께 홀치기 염색(tie dyeing)을 이용해 티셔츠를 만들었다. 온 가족이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와 함께 염색한 티셔츠를 입었다.
▲ 프랑스에 살고 있는 이모 부부(에드와 미리엄)가 2년 전 크리스마스 때 애날리아 집을 방문했다. 사진 속의 집은 케냐에 선교사로 가 있는 또 다른 이모, 캐시네 집으로 현재는 애날리아네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