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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고려엉겅퀴는 도깨비엉겅퀴, 고려가시나물, 곤드레나물이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엉겅퀴, 즉 '한국 특산식물'이다. 여러 이름 중에서 '곤드레나물'이라는 이름이 정겹게 들려온다. 술에 취하거나 피곤해서 정신없이 쓰러져 자는 모양을 가리켜 '곤드레만드레'라고 한다. 아마도 이 단어 때문에 '곤드레나물'이라는 이름이 정겹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고려엉겅퀴는 어린잎을 채취해 식용하는데 모양이 취나물을 닮았다. 그러나 맛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마도 봄이면 산야에 너무도 다양한 봄나물들이 우후죽순 올라오니 아주 특별한 맛이 아닌 한에는 그저 풀 냄새 물씬 풍기는 나물 정도로 알고 먹어서 그런 것 같다. 내년 봄에는 곤드레나물을 꼭 한 번 몸에 모시며 그 맛을 음미해 봐야겠다.

ⓒ 김민수
지난 여름 강원도 지역은 폭우로 인해 많은 피해가 있었다. 아직도 상처를 안고 있는 강원도 평창을 찾았을 때 작은 사찰입구에 만발한 고려엉겅퀴를 만났다. 물매화와 산구절초가 한창 피어나고 있을 때였고, 은은한 보랏빛 솔체꽃은 이미 내년을 기약하며 시들어가고 있었다.

엉겅퀴종류는 가시가 많다. 가시가 많아서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는 식물이지만 아무리 억센 가시라도 처음에는 부드럽기 마련이다. 가시가 성성하지 않을 때 어린순을 채취하여 나물로 먹거나 묵나물을 만들어 놓으면 귀한 반찬이 되기도 한다. 특별히 곤드레나물로도 불리는 고려엉겅퀴는 곤드레 밥을 만들어 먹기도 하니 구황식물로서의 역할도 했던 것이다.

ⓒ 김민수
구황식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한 켠이 짜하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지만 진정 먹을 것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도대체 어떤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서로를 쪼지 못하게 인두로 부리를 지지고, 사방 30cm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각종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먹고 기형적으로 자란 닭, 그것이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각종 상표를 달고 우리네 식탁으로 올라온다. 강대국은 채식동물인 소에게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동물의 뼈를 갈아넣은 사료를 먹여 미친 소를 만들어 약소국가에 팔아 넘기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식물들도 잠을 재우지 않고 꽃을 피지 못하게 하면서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깻잎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하우스마다 밤새 불을 밝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받은 스트레스, 그것이 고스란히 우리네 식탁으로 올라오고 그 정보가 우리 몸 속에 하나 둘 쌓이는 것이니 인간이 건강할 수 있을까?

ⓒ 김민수
그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직접 길러 먹는 채소가 더 맛나고, 산야에서 채취한 나물이 더 좋다. 어린 시절 벌레 먹은 못 생긴 채소들로 가득 찬 식탁이 오히려 풍성한 식탁이었던 것이다. 상품화된 웰빙바람이 불면서 유기농 채소가 부자들의 먹을거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산야에는 자연 그대로의 산채들이 풍성하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면 누가 그것을 전수해 줄 수 있을까? 대형 마켓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만 먹는 것으로 아는 아이들, 자기들이 먹는 음식들의 자라는 모습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우리네 산야에 풍성한 먹을거리가 전수될 수 있을까?

곤드레만드레 취해 볼까나?
취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아픔들
곤드레만드레 취해 잊어 볼까나?
아니지,
그렇게 잊혀질 아픔이었다면 아프지도 않았겠지.
부들부들하던 잔가시들도
세파에 시달리면서 성성해져 "오기만 해 봐라!"
잔뜩 날을 세운다.
찌르기 위한 가시가 아니었는데
곤드레만드레 취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건들기만 해 봐라!"
그렇게 독하게 마음먹다가도
이내 봄이면 눈 녹듯이 녹아버린 마음으로 피어나는
곤드레나물.

(자작시 - 곤드레나물)


ⓒ 김민수
혹시나 해서 곤드레의 짝인 만드레나물은 없을까 찾아보니 역시 없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하필이면 '곤드레'일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지만 보릿고개와 관련을 시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삼 시 세끼 먹고 사는 것이 호사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그 시절 그야말로 곤드레만드레 될 정도로 일을 해도 서민들의 생활은 늘 그 자리를 맴돌 뿐이었을 것이다. 곤드레나물을 듬뿍 넣은 곤드레밥을 만들어 먹으며 허기라도 달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자조했을 가장들을 떠올려 본다.

엉겅퀴는 국화과의 다년초로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핏속에 맺힌 응어리를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역할을 한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긴 하지만 어쩌면 곤드레나물은 우리네 삶 속에서 얽힌 응어리들을 풀어주는 귀한 산채였던 것 같다.

이제 동지가 지나 서서히 밤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다. 한 달여만 지나면 눈을 녹이고 피어나는 봄꽃들의 행렬이 시작될 것이다. 봄꽃들이 활짝 피어날 봄을 꿈꾸며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이 계절, 그 어딘가에는 지난가을 씨앗이 되어 설렘으로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한 꿈을 꾸는 곤드레나물의 씨앗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곳인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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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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