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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다정큼나무의 꽃이 다정스럽게 피어났다.
ⓒ 김민수
바다를 좋아하고 바닷바람을 좋아해서 해안가나 갯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늘푸른나무들이 있습니다.

다정큼나무와 더불어 해안가에 많이 피어나는 사스레피나무는 아주 작은 꽃을 이파리 아래 피우기에 꽃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정큼나무는 아담한 키에 하얀 꽃을 소담스럽게 피워내기에 꽃이 피었을 때에는 누구든지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지요.

@BRI@'다정큼나무'는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전체적인 모양이 다정하게 다가왔고, 그 다정함도 크게 다가와 '다정큼'이라는 이름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키로 인해 보통 어른들이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높이에 꽃을 피워서 그런 이름을 얻었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둥글둥글 까만 열매가 앙증맞아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요?

종달리 바다의 갯바위를 그렇게 많이 올라다니면서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냥저냥 늘푸른나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갯바위를 오르내린 지 5년이 지난 어느 5월의 햇볕이 따스하던 날 갯바위에 올랐다가 하얀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식물도감을 통해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이름이 참 재미있네!'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 순백의 단아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다정큼나무의 꽃
ⓒ 김민수
순백의 꽃을 피우는 다정큼나무, 순백의 꽃은 파도와 바닷바람에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순백의 빛을 잃지 않고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지고 난 후 열매는 까맣게 익으니 '흑백의 조화'를 보는 듯도 하고, '겉은 그렇게 순백의 색으로 화사했지만 내 속내는 이렇게 시커멓게 멍들었다구' 하는 듯도 합니다.

바다, 갯바위는 식물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곳이 아니면 살지 못하겠다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난을 승화시키는 삶을 보는 듯도 하고, 상극의 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서 바닷가 근처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며 꽃을 피우는 들꽃들을 만나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이름만큼 정겨운 '다정큼나무'

▲ 바닷가 갯바위에서 피어난 다정큼나무는 바닷바람을 좋아한다.
ⓒ 김민수
그런데 이름이 '다정큼나무'라니 더 정겹습니다.

오늘 우리는 경쟁의 논리에 빠져 살아갑니다. 남을 이기지 못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에 앞서가는 자도, 뒤따라 가는 자도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회는 뛰어가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추월당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부추기고 '빨리빨리' 혹은 '결과중심주의'로 내몰아 지금도 숨차게 달려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채찍질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경쟁의 관계입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이길 것인가만 생각합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잃어버린 것이죠.

상생의 관계,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렸으니 서로 헐뜯는 일에만 열심입니다. 정치적으로도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표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어떻게 하면 종교가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간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 신을 팔아먹습니다.

각종 미디어도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어떤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출판계에서도 작품성이나 내용성보다는 오로지 판매 부수에만 연연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이용할까만 생각하지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없이 세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 다정큼나무 뒤로 보이는 성산일출봉
ⓒ 김민수
팍팍한 세상에서 살아가서 그런지 '다정함'이라는 말도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온갖 좋은 단어들은 풍성하지만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아름다운 단어조차도 그 속내에는 또 다른 음모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우리네 삶이 오염된 만큼 인간의 언어도 오염이 되었습니다. 제 빛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다정큼나무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알콩달콩 다정하게 살아가야 모두가 산다구요."

다정큼나무는 키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녘땅에서는 정원수로도 사랑을 받는데 간혹 경계를 정하기 위해 가지런히 다정큼나무를 심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침입자를 막는 용도가 아닙니다. 경계만 지어놓고 안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막지 않습니다.

다정함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지요. 요즘에야 보기 어려운 광경이지만 나지막한 울타리 대신 블록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때 깨진 병이나 철조망이 올라가 있던 담장들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높은 담만으로도 부족해 유리병이나 철조망 대신 각종 보안업체들의 스티커가 우리네 시선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이런 담장문화를 만들었겠지요.

▲ 열매는 꽃과 다르게 까맣다. 그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일까?
ⓒ 김민수
아픔 겪지 않고 성장하는 인생 없을 것입니다

다정큼나무의 열매는 까맣고 둥글둥글합니다. 나는 그 열매를 보면서 다정큼나무의 속내를 보는 듯했습니다. 시커멓게 타버린 마음, 사계절 내내 바다와 함께 하면서 늘 웃고 있는 듯했지만 그렇게 웃기 위해서 감내한 고난의 빛깔처럼 느껴집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 없듯이 아픔을 겪지 않고 성장하는 인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내를 홀딱홀딱 뒤집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음을 통해서 내어놓는 열매로 그저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속내 깊은 삶을 살아간다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 다정도 병이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지만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입니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남의 로맨스가 불륜으로 보이는 일도 없을 것이고, 자기의 불륜을 로맨스라 우길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무언가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랍입니다.
다정하게 바라봄으로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소개해 드린 다정큼나무는 제주도 종달리바닷가와 성산일출봉 부근의 바다에서 만난 둥근다정큼나무이며, 5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가 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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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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