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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양하(Zingiber mioga ROSC.)는 생강과에 속하는 식물로 향긋한 향이 강하여 육고기, 생선, 또한 채소 등 어떤 재료와 함께 조리해도 좋고 양하 자체만으로도 좋은 반찬이 된다. 보리밥 한 그릇을 양하 몇 겹으로 뚝딱 해치우기도 했다고 하니 밥도둑이기도 했던 것이다.

@BRI@제주 오일장에 나갔을 때 할망들이 보랏빛이 나는 정체불명의 식물을 내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양왜, 장아찌를 담가도 좋고 살짝 데쳐서 된장 찍어 먹어도 좋수다게."
"직접 기르신 거예요?"
"아니우다게. 중산간 숲에 가면 많수다게."


중산간을 그렇게 많이 돌아다녀 봤어도 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나중에서야 이파리며 줄기가 영락없이 생강을 닮은 양하를 만났고, 그 양왜라고 하는 것이 '양하'인 것도 알았다.

꽃이 피기 전 새끼줄기를 식용하는 것이었는데 집 뜰 한쪽에도 심겨져 있는 것이었다. 이사한 후에 뜰에 심겨진 양하를 보고도 그저 푸른 빛을 보기 위해 심어놓은 식물인가 했는데 그것이 양하였던 것이다.

가만히 줄기 부분을 따라가 보니 아랫부분에 보랏빛이 도는 양하가 몇 개 올라왔다. 꺾어서 살짝 데쳐 된장을 찍어 먹으니 생강의 매운맛 같은 것이 입안에 가득하다. 생전 처음 맛보는 신비한 맛이었다.

ⓒ 김민수
집에 있는 것만으로는 내 입을 채우기에도 바쁜 것 같아서 오일장에 나가 한 바구니를 사왔는데 향이 너무 강하다며 식구들은 입에도 대질 않는다. 쌈과 나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삭하고 매콤쌉쌀한 양하의 향은 입맛에 딱 맞았다.

중산간에도 양하는 많이 있었지만 우거진 숲에 있으니 혹시라도 뱀이 나올까 감히 접근을 하지는 못했다. 그저 그렇게 먹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뜰에 있는 양하의 보랏빛 새끼줄기에서 신비한 꽃이 피어난다. 그 꽃을 본 후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코앞에 신비한 꽃이 몇 년 동안 피고지고 있었는데도 먼 곳에 피어 있는 꽃들만 찾으러 다녔으니 그동안의 꽃 여행길이 무색하게 느껴지던지.

우리 삶에 소중한 것들도 그렇지 않을까? 먼 곳에 있는 것 같아서 먼 곳만 응시하다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소중한 것들은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귀한 것들이 나와 가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소중한 것들, 그것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삶의 눈을 뜬 사람일 것이다.

꽃의 모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단 꽃잎은 비닐을 연상케 하는데 그 모양새는 뱀이 혀를 길게 내어놓은 형상이다. 그런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이후에는 양하를 먹어도 맛나게 느껴지지 않아 그냥저냥 식탁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간혹 식당에서 양하를 만나면 반가웠는데 이젠 그 맛을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 김민수
양하같이 향이 강한 것을 먹으면 이전에 먹었던 음식의 맛이 입 안에서 다 사라지고,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 이전에 느끼지 못하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생강이라고 짐작하고 있지만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는데 횟집에 가면 꼭 나오는 것 중 하나가 향이 깊은 장아찌류다. 회를 먹은 후에 그것을 먹으면 다른 회를 먹을 때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양하도 그와 같은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미각이 특별나게 발달한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특별하게 음식의 맛을 구별하질 못한다. 어쩌면 양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미묘한 맛의 차이, 그것을 느끼는 맛도 별미니 그것을 느껴보라고 신이 선물한 식물인지도 모르겠다.

양하는 잎이 우거지고 옹기종기 모여 자라기 때문에 꽃을 보려고 작심하고 보는 이들에게만 보일지도 모를 꽃이다. 그렇게 매년 꽃이 좋다고 하는 이의 뜰에 피고 지면서도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존재를 비로소 알릴 수 있었으니 그렇게 자기를 나타내는데 서툰 꽃이기도 하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늘 같은 모습으로 피어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예쁜 꽃이다.

때론 우리의 삶도 그렇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도 그 한결같음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있어 실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누군가는 보는 법이니 늘 한결같은 마음 변치 않는 것도 아름다운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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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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