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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선물한 휴대폰 고리.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휴대폰 고리일 것이다.
딸아이가 선물한 휴대폰 고리.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휴대폰 고리일 것이다. ⓒ 김정혜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딸아이가 또 내 주위를 뱅뱅 돌았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듯했다. 순간 야릇한 설렘에 가슴이 뛰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기에 저리 뜸을 들이나 싶었다. 아이를 향한 그 짧은 기다림. 포도 알 같은 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 딸아이. 달싹거리는 아이의 입술을 나는 또 이리저리 살피고, 아이와의 그 짧은 신경전에 난 적당한 행복마저 느꼈다. 이윽고 아이의 입이 열렸다.

"엄마. 엄마 생일 미리 축하드려요. 그리고 이거."
"이게 뭐야?"
"불빛이 반짝반짝 거리는 게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2000원이래요. 그걸 사 드리고 싶었는데."
"어머. 예뻐라. 휴대폰 고리네. 정말 너무 예쁘다. 복희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엄마. 정말 좋아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2000원짜리는 이거보다 몇 배는 더 예쁜데. 이건 500원짜리예요. 그래서 엄마가 실망하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니야. 정말 마음에 들어. 누가 선물해 준건데. 이 세상에서 이 휴대폰 고리가 아마도 제일 예쁠 거야."

"그래도 저는 2000원짜리가 더 예뻤어요. 그래서 꼭 그걸 선물해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도 2000원짜리만 생각하면 속상해요."
"아니야. 복희야. 정말 마음에 들어. 이 물건의 가격은 500원일지 몰라도 복희 마음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값비싼 선물이니까."

"엄마. 정말이죠? 거짓말 아니죠? 정말 실망 안 하는 거죠? 정말 마음에 드는 거죠? 그럼 믿을게요. 그런데 저 뭐 먹을 것 좀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왜? 오늘은 떡볶이 안 사 먹었어?"

"네. 엄마 생일 선물 사느라 못 사 먹었어요."
"그럼 언니 오빠들 떡볶이 먹을 때 넌 뭐 했어?"
"그냥 놀았어요. 언니 오빠들 나올 때까지 뜀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


딸 때문에 감동 먹다

이 휴대폰으론 매일매일 행복한 소식이 올 것 같다.
이 휴대폰으론 매일매일 행복한 소식이 올 것 같다. ⓒ 김정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즘 말로 감동을 먹은 것이다. 먹는 것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먹성 좋은 아이인데, 거기다 떡볶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인데, 거기다 덧붙여 운동하고 나서 언니 오빠들하고 먹는 떡볶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아이인데.

그런데 엄마 생일 선물을 사려고 그 맛있는 떡볶이를 안 사 먹었단다. 언니 오빠들 다 먹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혼자 뜀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했단다. 가슴이 불에 닿은 듯 뜨거워졌다.

그런데 불빛이 반짝거리는 2000원짜리 휴대폰 고리가 아무래도 더 좋아 보였는데 그걸 사지 못해 아이는 너무 속상하단다. 그리고 500원짜리 생일 선물을 받고 어쩌면 엄마가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는 걱정을 많이 했단다. 그래서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엄마 주위를 뱅뱅 돌았단다.

뜨거워진 가슴으로 아이를 힘껏 끌어안았다. 아이의 머리에서 땀 냄새가 텁텁하다. 이렇게 땀을 흘리며 뛰고 구르고 했으니 배는 오죽 고플까. 당장 아이에게 먹을거리를 챙겨 주는 게 먼저이건만, 나는 딸아이를 품에서 풀어놓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으므로.

딸아이는 동전 5개를 꼭 움켜쥐고 문구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뭘 선물해 줘야 하나 고민하며 이것저것 물건들을 들었다 놨다 했을 것이다. 불빛이 반짝거리는 휴대폰 고리가 딱 마음에 드는데 그건 2000원이라고 하니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긴, 요즘 돈의 가치로 따져 보자면 아마도 500원으로 살수 있는 게 도무지 없기는 없었을 것이다. 선물을 고르는 그 짧은 순간, 아이의 고운 마음이 절로 느껴져 코끝이 시큰해졌다.

'무자식 상팔자'고, '자식새끼 애물단지'라는 그 말, 천만의 말씀이다. 이렇듯 고운 모습으로, 이렇듯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딸아이. 이 아이가 있기에 이렇듯 행복한 것을. 이 아이가 있기에 내 팔자가 이렇게 상팔자인 것을.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세상살이라는 게, 아니 세상살이의 맛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 오늘밤. 난 쉬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딸아이의 보송보송한 볼에 엄마의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딸#휴대폰 고리#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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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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