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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내마을 푸른 나무 사이에 피어난 산벚꽃
ⓒ 정판수
봄의 산과 들 어느 곳이나 꽃이 만발해 있지 않은 곳이 있겠느냐만, 이곳 달내마을에도 그 화사함과 향기에 머리가 어찔할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꽃을 보고 또 내음을 맡으면서 저도 모르게 어지럼증을 느낄 때 꽃멀미란 말이 적당하리라.

역시 봄의 꽃은 진달래가 으뜸이다. 아니 야생의 꽃들이 다 그 자리를 차지한다. 사실 빛깔 면에서야 개나리도 한몫 하지만 개나리는 자생적인 것보다 인공적인 게 많고, 벚꽃도 그 화사함으로야 진달래에 뒤지지 않으나 자연미가 없다 보니 느낌이 훨씬 덜하다.

결국 꽃은 야생의 것이어야 그 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출퇴근하는 길을 오가며 아스팔트 옆에 피어 있는 벚꽃과 개나리꽃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기야 하지만 산과 들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볼 때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뭘까?

▲ 우리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핀 진달래꽃
ⓒ 정판수
나는 벚꽃보다 산벚꽃을 더 좋아한다. 배꽃보다 돌배꽃을 더 좋아한다. 복숭아꽃보다 돌복숭아꽃(유식하게 산도화라 하는 이도 있지만)을 더 좋아한다. 아마 둘을 가까이 놓고 보면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있는 자리로 하여 아름다움에서 차이가 난다.

아무리 잘 가꾸어 놓았다 하더라도 아스팔트 옆이나 밭 한가운데 심어져 있는 벚꽃, 배꽃, 복숭아꽃은 푸른 산과 들 사이사이에 다른 꽃과 나무들에 섞여 피어 있는 산벚꽃, 돌배꽃, 돌복숭아꽃을 따라오지 못한다. 특히 울창한 상록수림 속에서 피어 있은 산벚꽃은 마치 학이 군데군데 내려앉은 것 같은 우아함을 띤다.

▲ 달내마을 오가는 길에 피어 있는 들꽃
ⓒ 정판수
그러나 나는 산벚꽃의 아름다움을 그 우아함에서보다 어울림에 더 점수를 준다. 가로수의 벚꽃은 다른 빛깔이 침범하기를 꺼린다. 아니 다른 빛깔이 섞이면 오히려 어색하다. 마치 하얀 도배지 위에 붉거나 푸른 물감을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듯한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산벚꽃은 그것만 있으면 오히려 어색해진다. 흰빛만으로 살아나는 게 아니라 여러 빛깔의 어울림 속에 그 빛깔이 살아나는 것이다. 즉 산벚꽃은 상록수림에 섞여 있기에 그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이다. 온 산이 희기만 한다면, 온 산이 푸르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산은 누구나 가까이 하는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

▲ 달내마을 외딴 집 뒤에 피어난 돌복숭아꽃
ⓒ 정판수
이곳 달내마을은 볕이 드는 곳과 들지 않는 곳이 골고루 나뉘어 있어 하루 종일 든 곳에는 벌써 봄꽃이 지는 형편이지만 잘 들지 않는 곳에는 지금도 새로 피어난다. 그러니 매일매일 꽃이 지고 피는 걸 보는 셈이다. 이도 마음에 든다. 같은 꽃이 똑같은 위치에서 항상 떨어지지 않고 피어 있다면 그 단조로움에 얼마나 지겨울까?

섞여 있어야 아름답다는 걸 깨달아 잘난 이만 평가받는 세상에 못난 이도 함께 해야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배운다. 또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서 묵은 이가 가면 새로운 이가 그 자리를 맡는다는 이치도 배운다.

▲ 달내마을 밭에 피어 있는 유채꽃
ⓒ 정판수
여러 골치 아픈 일로 머리가 띵할 때 눈만 슬쩍 돌려도 언제나 꽃을 볼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날마다 꽃멀미를 하면서 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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