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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서 즐거움을 얻고, 또 가르침도 받는다. 매일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사람이 아니어도 가르침을 받을 데는 많다. 나로선 아침저녁 출퇴근할 때마다 만나는 나무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나무는 그 넉넉함으로 나를 부끄럽게 한다

▲ 감나무에 기생한 쥐똥나무
ⓒ 정판수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맨 먼저 나와 마주치는 우리 집 감나무에서 그 첫 번째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집 감나무는 참 크다. 그 크기만큼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 그는 자기 품안에 많은 것들을 받아들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게 까치집이다. 까치들은 주인의 허락도 없이, 월세도 내지 않은 채 자꾸만 집을 키우더니 이제 제법 어엿한 저택을 확보했다.

박새는 더욱 심하다. 감나무 한가운데 구멍이 났는데, 그 구멍 속에다 집을 지은 모양이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뻔질나게 드나들며 먹이를 나르는 걸로 보아 아마도 새끼를 낳았나 보다. 또 감꽃이 필 때면 나비가 셀 수도 없이 날아든다. 그들을 위해 귀찮아하지 않고 아낌없이 꿀을 내준다.

감나무는 이런 동물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담쟁이덩굴은 어느새 어깨를 타고 올라와 있다. 아는 이의 말을 들으니 순수한 토종 담쟁이라는데 처음엔 조그만 게 '설마' 했는데 어느 틈에 밑둥치를 다 감을 만큼 올라왔다.

▲ 감나무 뚫린 구멍에 만들어진 박새집
ⓒ 정판수
그리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다 오늘(26일) 아침 가지 사이에 쥐똥나무가 기생한 것을 발견했다.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아려왔다. 감나무가 워낙 오래돼 뿌리는 물론 둥치마저 썩어가고 있는 거기에 어디서 어떻게 날아왔는지 쥐똥나무가 뿌리를 내려 제법 크게 자랐다.

감나무의 몸뚱이 속에 뿌리를 내린 쥐똥나무를 보면서 문득 우리 몸속에서 자라는 암덩어리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그 정도까지야 아닐 테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아플 텐데 감나무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감나무에서 거룩한 성자(聖者)의 모습을 본다. 평생을 남을 위해 희생하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맨몸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을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 있을지 모르겠으나 남은 기간 시간에도 다른 동식물들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할 것이다.

나무에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본다

▲ 양남면 석촌리의 보호수
ⓒ 정판수
집에서 출발한 지 10분이 채 안 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석촌리에 이르면 나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 마을의 당산나무이면서 바로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때문이다.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만들어진 비석에는 수령(樹齡) 250년, 높이 15m, 둘레 4.3m로 돼 있다. 사진에서 전봇대와 크기를 비교해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높이는 어른 키의 10배쯤, 둘레는 어른 셋이 팔을 합쳐 둘러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수령은 적힌 것보다 훨씬 많은 400년이 넘는다는 마을 어른들의 얘기다. 지정할 당시 아흔이 넘은 어른께서 당신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400년이 넘었다는데도 전문가가 와서 보고는 그렇게 적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이름난 노거수(老巨樹)를 많이 보았지만 그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가지마다 새싹이 돋아날 때인 이즈음은 이즈음대로, 신록의 계절엔 신록의 계절대로, 가을엔 먹을 열매가 맺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쁘다. 황량한 겨울에도 눈송이를 이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당산나무에 제 올린 흔적
ⓒ 정판수
마을 어른들은 이 나무에 매월 음력 보름이면 제를 올린다. 집집이 돌아가면서 제물을 준비하여 정성껏 차린다. 많은 돈은 아니나 시골에서 부담되는 액수이지만 흔쾌히 당산나무를 위해 내놓는다.

운 좋게 제 올리는 날에 그곳을 지나치노라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날만큼은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나온다. 제를 지낸 뒤 음식을 나누면서 사소한 가정사도 이야기하지만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기도 한다. 제를 지내는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쓰는 지방 같은 게 가운데 달려 제 올린 그 흔적을 말해 주고 있다.

어제(25일) 양남장에 가시는 그 마을 어른을 태워준 김에 당산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마을에는 진짜 어른이 계신다고.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아프고 흔들릴 때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또 보호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에 마을 사람들이 보호해야 하지만 사실은 이 나무가 마을을 보호한다고.

다만 당산나무가 예전보다 훨씬 활기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하신다. 아마도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전보다 수분을 많이 섭취하지 못해선지 싱싱함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다는 말을 하시는 어른의 눈가엔 이슬이 맺히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그냥 나무가 아니라 어른들의 어른인 셈이다.

먹을 열매 하나 남겨주지 않지만 봄 여름 가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정담을 나누는 놀이터가 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마을의 역사를 간직하면서 마을과 함께 살아온 이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상징적인 수호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마을 사람들의 어른이 된 것이다. 그래서 도시로 나가 살다가 간혹 고향을 들를 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 것도 바로 이 나무란다.

나무는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나를 질타한다

▲ 양남면 수렴리의 독수리바위
ⓒ 정판수
석촌리를 지나 다시 10분쯤 가면 이번에는 바닷가에서 경이로움을 맛본다. 뭍에서 100m쯤 떨어졌을까 바다에 있는 여(섬보다 훨씬 작은 바위)의 꼭대기에 솟은 한 그루의 소나무에서다.

인근 사람들로부터 독수리바위, 매바위 등으로 불리는 이 바위의 형상은 바위 자체로는 그 이름을 가질 수 없지만 바로 꼭대기에 솟은 소나무가 새의 부리 형상을 하고 있기에 당당히 그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처음 소나무가 부리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지만 이내 어떻게 그 꼭대기에 저런 소나무가 자랐을까에 관심을 두게 된다. 짐작에야 아주 옛날 바닷가에 자라던 해송(海松)의 솔씨 한 개가 바다에 떨어져 파도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세찬 물굽이에 여 꼭대기로 솟구쳐 자리를 잡았으리라.

▲ 독수리 부리 모양의 소나무
ⓒ 정판수
그러면 어떻게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을까? 솔씨가 여의 꼭대기에 간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뿌리를 내린 과정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연히 바위틈에 낀 솔씨에 필요한 건 두 가지였다. 흙과 물.

흙은 꼭 흙이 아니더라도 갈매기의 배설물 등으로 충족되었겠지만 물은 어떻게? 바닷물로는 자랄 수 없으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유일한 해결책이었으리라. 그러나 바위의 특성상 물이 고이지 못하고 흘러내리기에 고작 해야 그 당시 내리는 빗물 몇 방울로 자랄 수 있었을까?

내가 살아온 삶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독수리바위에 솟은 소나무를 보면 그냥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때마다 소나무는 내게 일러준다.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다 마음먹기 나름 아니냐고. 그러면 나는 그저 부끄러울 뿐.

나무는 어느새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제자가 똑똑하지 못해선지 그런 가르침을 받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감나무의 넉넉함도 없고, 느티나무의 어른스러움도 없고,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도 갖질 못하고 있다. 언제 이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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