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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뽕나무 아래 망사를 깔기 전에 터진 곳, 찢어진 곳을 기워야 한다
ⓒ 정판수
달내마을에서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오들개'라 한다. '오들개'는 '오디'의 경상도 사투리다. 줄곧 경상도에서만 살았지만 재작년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굉장히 낯설었다. 어릴 때 오디를 보기야 했지만 제대로 먹어보진 못했고, 그 말마저 귀에 선데 오들개라니? 그러나 이젠 오들개가 우리 생활의 주요한 일부가 되었다.

해마다 수확 시기가 딱 정해진 건 아니나 보통 오월 스무날쯤 되면 오들개 거둬들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의 첫 단계가 뽕나무 아래에 깔 망사를 손질하는 일이다. 워낙 많은 양이라 줍거나 따서는 감당할 수 없으니 털어야 하는데 그때 깔아놓으면 터진 곳, 찢어진 곳이 없는가를 살펴 기워야 한다.

시골마다 주소득원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달내마을이 내세울 게 있다면 벼농사 말고 단연 오들개다. 오월 중순부터 온 마을 곳곳에 우뚝 솟은 뽕나무에 열리기 시작한 오들개는 6월 중순까지 검은빛을 탐스럽게 빛내며 오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렇게 오들개가 잘 익으면 뽕나무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날마다 털어야 한다. 털 때 우리 부부처럼 아마추어들은 장대로 후려치고, 우리 마을에 오래 사신 어르신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 발로 굴린다. 장대로 후려치면 '툭 툭 툭' 하고 떨어지나, 발로 굴리면 우박 쏟아지듯이 '투루룩 투루룩' 하며 떨어진다.

▲ 덜 익은 오들개(왼쪽)와 잘 익은 오들개(오른쪽)
ⓒ 정판수
떨어진 오들개를 주워 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면 오들개는 워낙 연하여 세게 집으면 짓물러지고, 하나하나 집지 않고 여러 개씩 집어도 서로에 치여 상한다. 또 턴 걸 쉬 거두지 않아도 변질되고 만다. 그뿐인가 다 익은 걸 털지 않고 그냥 놔두면 일부는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말라버리니….

게다가 오래 보관할 수도 없어 저녁에 딴 건 다음날 오후까진 팔아야 한다. 지체되면 될수록 제 값을 받을 수 없다. 우리 부부에게는 이 일이 꽤나 힘들지만 어른들은 아무것도 아닌 양 퍼뜩 퍼뜩 해치우는 걸 보면서 '역시!' 하는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쉽게 보여도 힘들긴 마찬가진가 보다. 우리 땅의 원래 주인인 할아버지 내외도 우리에게 팔기 전엔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얘길 들으니 할머니가 하시는 이 일이 얼마나 힘들어 보였는지 그걸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아예 나무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뽕나무는 생명력이 강하여 이듬해 봄이면 또 다시 가지를 치고, 한 이삼년 뒤면 오들개를 달고…. 이렇게 수차례 거듭하는 바람에 우리 집 뽕나무가 다른 집의 것과 다른 기형의 형태로 자랐다고 한다.

▲ 망사가 깔린 뽕나무
ⓒ 정판수
턴 오디를 모아놓는 데는 검은 망사가 필요하다. 망사를 구입하는 데 상당한 돈이 든다. 지난해 우리가 구입한 것만 해도 한 묶음에 3만원 하여 모두 다섯 묶음을 구입했으니 거금 15만원이 든 셈이다. 사실 달내마을엔 우리처럼 이렇게 돈 들여 산 망사를 깔아놓은 곳은 없다.

대부분 돈이 많이 드니 이곳 할머니들은 비용을 아끼느라고 한 곳에 깔아놓았던 망사를 다 턴 뒤엔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러니 날마다 그 무거운 것을 옮겨 다니는 수고를 한다. 이 망사 대신 비닐이나 푸른 천막을 사용해선 안 된다. 비가 오면 썩지 않도록 물이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 달내마을에 뽕나무가 많게 된 까닭은 다른 마을에선 자기 땅과 남의 땅의 경계에 감나무를 심듯이 뽕나무를 심어 경계를 표시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뽕나무가 경사진 언덕에 위치한 게 많아 거둬들일 때 애를 먹는다. 우리집만 해도 60도 넘는 경사를 타고 내려가야 오들개를 주울 수 있다.

▲ 수확한 오들개. 이 한 대야 가득 4만원을 받는다
ⓒ 정판수
아내와 내가 오들개 털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돈벌이가 돼서가 아니라, 지나가다 줍지 않아 썩어 문드러지는 걸 본 어른들마다, "아이고 저 아까운 걸…", "조금만 짬 내면 버리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매달린 게 하루 중요한 일과가 된 것이다. 그때 우리는 자기 논밭에 나는 농작물을 농부는 결코 헛되어 썩혀 버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애를 써서 수확한 오들개는 한 대야에 도매상(사기 위해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3만 5천원, 나처럼 도시사람들에게 직접 갖다 주면 4만원을 받는다. 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니 한 대야에 10만원 줘도 헐하지 않다고 할 만큼 그 노고에 비하면 가격이 매우 헐한 편이다.

어디 오들개뿐이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농산물이 그 노력에 비하면 얼마나 헐한가. 도시의 소비자에게야 비싸게 팔리지만 실제 산지(産地)에서는 농투사니들이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 아랫집 산음어른이 한 마디 던진다.

"다른 농사처럼 약 치고 비료 치지도 않고 그냥 저절로 거두는 건데 그만한 돈이면 됐제."

다만 지난해에는 해거리로 많이 열리지 않았고, 올해는 많이 열리긴 하였으나 병이 걸려 수확이 적을 듯해 달내마을 어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깃들기는 틀린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작년 '오디로 시작하는 달내마을의 여름'이란 기사로 '달내일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제재로 글을 쓰게 되니 1년 된 셈이군요. 가능한 빠지지 않고 적으려 했으나 104회밖에 못 됨은 쓸 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의 게으른 탓이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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