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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반의 남편이 아내를 데려가며 썼던 각서
홍반의 남편이 아내를 데려가며 썼던 각서 ⓒ 고기복
그랬던 그녀가 지난 일요일 오전에 다시 쉼터를 찾아왔습니다. 사실 홍반이 쉼터에 오기 전인 토요일 밤에 그녀의 남편은 베트남에 가 있던 쉼터 상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밑도 끝도 없이 '홍반이 데리러 누가 올 거냐?'고 물었었습니다. 하지만 이유도 모르고 로밍으로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던 상담실장은 자신이 외국에 나와 있음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애당초 둘을 화해시켜 돌려보내면서도 '말도 통하지 않고, 성격도 판이한 저 둘이 과연 잘 살까?'하는 불안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마하니 임신까지 한 처지에 큰 문제가 있으랴 했었습니다. 그런데 열흘을 조금 넘기고 전화가 온 걸 보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겼구나 생각하던 차에 홍반이 쉼터를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쉼터를 찾은 홍반은 춥다면서 두터운 겨울옷을 껴입고 있었습니다. 나이보다 앳돼 보이는 작은 체구의 홍반이 입고 있는 옷은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점퍼였는데, 둘이 싸운 이유를 알게 되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겨울옷이었습니다. 홍반은 자신은 추위를 느껴서 옷을 껴입었는데 신랑이 자꾸 옷을 벗기려 들어 대들었더니 남편이 자신을 밀쳐 싸움이 났다고 했습니다.

싸움이 난 정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임신 초기에 체온 상승으로 추위를 느끼기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자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그저 더운 나라에서 살다가 와서 추위를 탄다고 생색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무리하게 웃옷을 벗기려 했던 거고, 홍반은 그게 싫었던 것이었습니다.

둘 사이의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대화를 하기보단 잠시 진정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하루를 넘겼는데, 같은 방을 썼던 베트남 여성이 홍반이 하혈을 한다고 하여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단 결과 다행히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혈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임신 초기에 발생하는 분비물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홍반은 기분이 좋은지 방긋 웃었습니다.

그런 홍반의 앞날을 생각하며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처지가 기구했기 때문입니다.

홍반의 남편은 현재 마땅한 벌이가 없는 사람입니다. 홍반이 구타를 당하고 처음 우리 쉼터에 왔을 때 알았던 사실은 홍반 자신이 지하에 살고 있는 건물 내 세탁소에서 하루 9시간 일하고 받은 월급이 12만원이었고, 그 일은 남편의 소개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9시간 일하고 월12만원이라니...

아무리 말 모르고 일 모른다 해도 하루 일당 5000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을 시키는 세탁소가 어디 있느냐고 홍반 남편에게 따지자, 돌아온 답변은 사람의 숨을 콱 막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탁소에서 일 가르쳐 주면서 돈을 받아도 시원찮을 것을 그만큼 주는 것도 고맙다고 해야 해요. 그리고 어디 딴 데 가서 일하다가 엉뚱한 놈하고 눈이라도 맞아 도망가면 어떻게 해요."

아무리 무정한 사람이라 해도, 무능한 자신을 대신해서 멀리 외국에서 시집 온 아내가 하루 9시간 일하고 받는 돈이 터무니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일언반구 따질 생각도 못한다는 사실도 놀라웠거니와, 아내를 믿지 못하는 의처증 환자 같은 답변에 한심하다는 생각에 한마디 했습니다.

"아내를 믿지 못해서 그런 거면, 아저씨가 같이 일 다니면 되잖아요.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도 그보다 나아요."

그리고 앞으로 계속 세탁소에서 일을 시키면 최저임금 위반에 대해서 노동부에 진정을 낼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세탁소 주인과 모종의 거래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집값 문제였습니다. 마땅한 돈벌이가 없는 남편이 집값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됐든 다시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각서를 쓰고 아내를 데려가며, 세탁소 일을 더 이상 시키지 않겠다고 했던 홍반의 남편은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가까운 보건소 한 번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무능하다고 하기엔 너무나 무정하고 무책임한 남성.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조차 다독거리기에 앞서 "그게 사람 사는 거냐?"라고 묻고 싶을 지경인데, 그래도 아이를 낳고 싶다고 야무지게 다짐하는 한 이주 여성.

막연한 동경을 갖고 한 준비되지 않은 국제결혼과 그 결과를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옵니다.

덧붙이는 글 | 홍반은 현재 쉼터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고, 그녀의 남편은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전화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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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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