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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붓꽃
노랑무늬붓꽃 ⓒ 김민수
식물학자인 이영노 박사가 오대산에서 발견하여 명명한 것으로 알려진 노랑무늬붓꽃은 몇몇 고산지대에 자라는 희귀종이며 특산식물이다. 만나고 싶은 목록에 적어두긴 했지만 그날 그런 곳에서 그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를 만난 곳은 강원랜드 하이원 스키장 정상 부근이었다. 리프트에서 세잎양지꽃과 숲개별꽃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작은 들꽃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숲으로 내달렸다.

굴착기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언덕 너머에 위태위태 꽃들이 피어 있었고, 피어날 준비들을 한창 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희귀종, 특산식물인 '노랑무늬붓꽃'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만난 순간, 반갑고 기쁜 것이 아니라 허탈했다. 도대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월간조선>은 하이원 스키장에 대해 이렇게 소개를 했다.

강원랜드 하이원 스키장은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환경친화적 스키장이란 점. 환경친화적인 요소들을 접목하여 국내 최초로 개발과 환경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환경 전문가들조차 "우리가 요구하는 환경보존 개념보다 더 많은 것을 접목시켜 개발이 환경을 더 보존하는 데 좋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월간조선> 2006년 8월호)

ⓒ 김민수
집으로 돌아와 하이원스키장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 읽다가 <월간조선>을 통해 소개된 스키장 홍보 일색인 내용을 보면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환경전문가들 중에서 후한 평가도 부족해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까지 칭송한 환경전문가는 누구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환경적이라는 것을 정녕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분단의 세월, 비무장지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일까? 어떻게 산을 까뭉개면서 이전보다 더 좋은 환경을 보존할 수 있단 말인가?

아주 후한 점수를 주어 아직 그들이 계획한 대로 다 완성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리프트에서 바라본 스키장은 흉물스러웠다. 몸에 구불구불 뱀 문신을 새겨넣은 것 같은 형상, 그것도 자진해서가 아니라 조폭들에 의해 강제로 새겨진 조잡한 문신처럼 보였다.

노랑무늬붓꽃은 이미 굴착기에 의해 까뭉개진 흙더미 근처에서 위태위태 피어 있었다. 물론 안전한 곳에 피어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까뭉개진 저곳에 피었던 수많은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김민수
그들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지쳐 보였다. 평화롭게 그곳에서 피고 지었을 수많은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 언제 그들까지 파헤쳐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새들의 맑은 지저귐 대신 기계음 소리에 소스라쳤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바로 코앞까지 굴착기가 파헤친 흙들이 다가왔으니 그들이라고 제대로 웃을 수 있었을까?

이번 봄에 마지막 꽃을 피운다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피어난 것 같았다. 그럼에도 피어났으니 '활짝 웃고 말겠다!'고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어딘가에서 피어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지쳐 보였다. 파헤쳐지기 전 엄마의 품 속 같던 숲이 사라지고 뜨거운 햇살이 그들에게 직접 내리쬐고 있으니 어찌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 김민수
사람들은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사람 없이 그들은 더욱 더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람은 자연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다. 단지 그들을 그들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을 이렇게 취급하면서 어떻게 그들과 공생을 하겠단 말인가!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적인 재앙들, 그것이 그들의 몸부림이요, 그들이 절규라는 것을 우리는 진정 모르는가? 그들의 몸부림이 포효로 바뀌고, 복수로 바뀌기 전에 우리는 돌아서야만 한다. 아니, 그들은 복수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을 스스로 놓아버림으로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의 생명도 놓아버릴 수밖에 없게 한다.

ⓒ 김민수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의 햇수가 제법 오래되었다. 만나지 못했던 꽃들을 만나거나 만나고 싶었던 꽃들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사랑을 고백한 여인에게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쓰인 편지를 받은 것과 같은 설렘으로 그들을 만났다. 그러나 노랑무늬붓꽃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아무리 특산식물이고 희귀종이면 뭘 해,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데!' 소리치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만일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침묵하면 꽃들이 소리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침묵하면 땅들이 소리칠 것이다.
그리고
나무와 강물과 바람과 작은 곤충과 들풀들이 소리칠 것이다.
그들의 친구들이 소리칠 것이다.
그들이 소리치기 전에 그들이 아우성치기 전에
사람들이여, 소리를 질러라.

- 자작시 '그들이 소리치기 전에'
#노랑무늬붓꽃#우리꽃#희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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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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