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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출근하면 지방신문부터 손에 쥐게 된다. 근데 일전 지방지의 뉴스에선 어떤 교훈적인 보도가 있었기에 이를 서두부터 굳이 사족이나마 붙이고자 한다.

대전·충남권 제일의 대학으로 회자되는 충남대학교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고(故) 화곡(華谷) 서명원 총장의 흉상 제막식이 충남대학교 개교 55주년을 맞아 지난 5월 22일에 충남대 대학본부 앞 잔디광장에서 있었다는 뉴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고 서 총장은 지난 1977년부터 1985년까지 8, 9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대전 문화동 보운 캠퍼스에서 50만평에 이르는 현 대덕 캠퍼스로의 이전 사업을 추진하여 충남대의 중흥과 장기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고 서 총장은 또한 충남대 제2 창학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지역의 신망과 언론의 칭찬도 두드러진다. 오늘날 충남대의 두루 발전한 모습이 모두 그의 헌신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이 같은 증표의 반증이다.

또 그는 지난 1987년 문교부 장관을 역임해 우리나라 현대교육의 기반을 다지는 등의 공헌도 지대하여 국가대표급 교육자로도 추앙받고 있다고 하였기에 이 같은 뉴스를 접하면서 필자는 문득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즉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교훈을 새로이 되새기게 되었다.

재작년 중국여행 때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만리장성에 올랐는데 거기에 오른 관광객의 얼추 50% 이상이 한국인으로 보였다. 아무튼 일행 중 한 사람이 "진시황은 죽은 지도 2천년이 넘었건만 이 만리장성을 남기고 죽은 때문으로 중국인들은 관광수입만으로도 능히 먹고 살만하겠다"는 조크를 하여 우리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했다.

아무튼 그날도 느낀 소회지만 역시나 사람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고 볼 일이라는 것이었다. 다시금 대선이란 화두와 대장정을 앞두고 자천 타천의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지는가 하면 은둔하고 있는 모 인사에게도 출마하라는 주변과 모리배들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즈음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자격도 없는 인사들이 단지 공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또한 낙하산을 타고 요직에 앉았던 전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도나도 '대책 없이' 요행수만 바라고 줄줄이 출마해선 안 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못난 저자의 무지렁이 가장도 자신의 '책무'를 절감하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을지언정 화목한 가정의 정립과 오순도순한 가족애라는 '유산'을 남기고 죽고자 노력한다.

헌데 그 또한 어떤 '호사유피 인사유명'의 정형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공인이란 자들은 모름지기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란 본분과 기본의 책무에 분발하여 그 목적을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공인의 자격도 없는 사이비 공인들과 지도자라는 자들이 그간 우리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폐해와 잔재는 빈부격차의 심화와 빈곤층의 자살행렬 가속화도 모자라 노름공화국과 청년실업 장기화 등으로 여실히 나타났다.

하여 그렇게 되려 찬란한 업적(業績)이 아니라 국민고통의 악적(惡績)만 둔 공인이란 자들은 반드시 사후에도 세인들로부터 추앙을 받기는커녕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을 공산이 농후하다고 본다.

고 서 총장의 흉상 제막식 뉴스를 접하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진정한 공인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건 바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 견지와 함포고복(含哺鼓腹)한 나라 건설이란 업적을 남김으로써 천 년, 만 년이 지난 후에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처럼 세인들의 칭송을 한몸에 받는 그런 사람이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공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이 바로 필자의 견해이다.

ⓒ 한길사
서두부터 다소 엇박자의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감상문 작성을 시작한 의도는 이미 눈치 챘겠지만 자명하다. 그건 바로 우리나라엔 현재 존경받을 만한 위정자가 없다는 사실을 웅변하기 위함에서이다. 대한민국 초기 대통령인 이승만에서부터 현재의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대통령이 있(었)지만 진정 국민의 사표가 될 정도의 존경스런 대통령을 우린 과연 하나라도 가졌는가?

얼마 전 국민 드라마라고까지 추앙받던 <주몽>이 끝났다. 하지만 지금도 주말엔 여전히 <연개소문>과 <대조영>이 고구려와 발해시대의 웅대함을 그려내고 있다. 주지하듯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황제에 오른 당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정벌을 평생의 기치로 삼았다. 그러나 '안시성'의 양만춘과 당대의 카리스마 연개소문, 그리고 고구려 인(人)들의 대동단결이란 삼중주가 이뤄낸 철옹성을 끝내 넘어서지 못하고 퇴각해야 했다.

<로마인 이야기>는 지난 1992년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을 끝으로 완간된 15년 집대성의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이다.

필자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가 15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로마사에 천착한 저자라는 사실에서 먼저 <토지>의 작가인 박경리 선생을 떠올리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완간까지 무려 26년간의 집필 기간과 원고지 3만 매가 넘는 기록적 분량만으로도 한국 현대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바로 <토지>인 때문이었다.

이실직고하건대 평소와 예전엔 조선역사에 관한 책을 즐겨보았다. 서양사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어서 잘 읽지 않는 편이었음에서였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로마인 이야기>를 일독한 다음에는 우리 조선사(史)든 동양사든 서양사든 간에 책에는 특히나, 역사물에는 반드시 건져낼 교훈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기원전 753년에 세워진 로마는 무려 1229년 동안이나 존속했던 초강대국이었다. 말미에서 "번성하는 자(국가 역시도)는 반드시 쇠퇴한다"는 역사를 이 책에서도 끄집어낼 수 있었으나 아무튼 1200년 이상이나 존립이 가능했던 로마의 그 저력은 그럼 어디에 있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엔 너무도 많은 영웅과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그들의 면면을 일일이 열거하고 소개한다는 건 기실 불가능하다.

다만 저자가 유독 '애착을 갖고 있는' 인물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이 양자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7권 '악명 높은 황제들'에 등장하는 아우구스투스와 칼리굴라, 그리고 클라우디우스와 네로 등의 네 악황(惡皇)이 좀 더 두드러진다 하겠다.

하여간 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에서 보듯 로마인들은 이미 2천년 전부터 인간이 인간답게 생활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업인 인프라 스트럭처(사회적 기반) 시설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도를 시작으로 다리와 수도, 의료와 교육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시스템까지 완비하였다.

당시의 로마인들은 목욕을 꽤나 즐겼으며 토목공학이나 건축술까지도 크게 융성했다고 한다. 하여 로마인들은 깊은 산 속으로부터 수로를 내어 도시 중앙까지 그 물을 끌어들였으며 더운물을 만들기 위해 바닥 난방을 만들었고, 쓰고 난 물이나 배설물이 다시 물에 씻겨나갈 수 있는 하수 시설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마치 오늘날의 건강 센터와 유사한 공중목욕탕까지 만들어져 있었다고 하니 로마인들의 그러한 혜안을 보자면 연말마다 어떤 의례행사인 멀쩡한 도로를 깨부수고 다시 공사를 하는 우리네 관공서의 근시안적인 모습이 오버랩됨을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처럼 강건했던 로마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서서히 종말로 치닫게 되는데 그 전조는 11권 '종말의 시작'에서 엿볼 수 있다. 진시황이 이룬 중국 천하통일의 위업을 하지만 그의 무능한 아들 호해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간신 환관 조고와 함께 나라를 말아먹은 정사(正史)는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류가 로마시대서도 나타났으니 그건 바로 철인황제로 이름 높았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무능한 아들인 콤모두스가 바로 주인공이었다.

마르쿠스의 사후 콤모두스가 재위를 이어받으면서 로마제국은 시나브로 쇠망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니 진시황과 마찬가지로 마르쿠스 역시도 지하에서 그 얼마나 땅을 쳤을지 쉬 유추가 가능하였다. 아울러 예전 관람했던 동시대를 모티브로 했을 외화 <글래디에이터> 까지 덩달아 기억의 창고에서 불쑥 튀어나왔음은 필자도 알고 보면 로마시대를 전혀 모르는 숙맥만은 아니었다는 조그만 우쭐함이 그 발로였으리라.

이 외에도 로마 원로원에서 권력 투쟁 벌이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우리나라 국회의 모습과 비견되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또 다른 백미였다. 1년에 1권씩 불굴의 의지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구축한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또 1천여 년의 역사를 무대로 한 황제들과 정치가, 무장과 현자, 민중이 드라마틱하게 펼쳐보이는 웅대하고 장려한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수작(手作)이다. 더불어 이 책은 오늘날의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치관은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후일엔 역사로 기록되는 법이다. 역사는 그런데 돌고 도는 물레방아와도 같다. 즉 과거사가 오늘날에 와서는 그대로 드러나고 투영되는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얘기다. 고로 특히나 통치권자와 공인들, 그리고 현세에 방귀깨나 뀌면서 산다는 이른바 상류층들은 역사에서의 잘 잘못을 파악하고 천착하는 지혜를 길러야 옳다.

옛말에도 '호부(虎父)에 견자(犬子) 없다'고 하였다. 즉 똑똑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있으면 그 뒤를 따르는 이들 또한 그에 견줄 만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역사에서 배운 지혜와 처세를 반면교사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거울로 삼는 자세의 견지가 절실하다 하겠다.

<로마인 이야기>는 이런 지엽적인 부분에서만 보더라도 흔쾌히 누구에게든 추천할만한 명심보감과 탈무드와도 같은 경구(警句)의 화수분 같은 책임이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이야기 글짓기 대회 응모글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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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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