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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전해지는 상상의 꽃 우담바라, 그는 3천년만에 핀다고 하며 상서로운 징조를 보여주는 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우담바라'는 꽃이 아니라 '풀잠자리알'이라고 하지만 한국불교대사전에서는 '풀에 청령(잠자리)의 난자(알)가 붙은 것'이 우담바라라고 정의하고 있다. 동아한한대사전(동아출판사)에서도 '초부유(풀잠자리)의 알'이 우담바라라고 하니, 풀잠자리알을 만난 것은 곧 우담바라를 만난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니라.
어머님의 옥상 텃밭, 옥상에는 각종 채소뿐 아니라 아기자기 가꾸시는 꽃들도 제법 많다. 카라의 넓은 이파리에 시원스럽게 피어난 하얀꽃이 예뻐 그를 보고 있는데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우담바라가 눈에 띈다. 그를 가만히 보니 꽃이라기보다는 곤충의 알이다.
아주 작은 데다가 실같이 얇은 줄기에 알이 붙어서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다. 풀잠자리알이면 어떠랴, 우담바라로 불러도 되니 상서로운 조짐으로 생각하자 했다. 마침 그 날은 조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렇게 우담바라를 담고 혹시나 상서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것을 단지 미신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살면서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작은 희망이기도 하니까.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지난 밤 바람에 서너 개가 떨어져 버렸다. 꽃이 졌다고 해야 할까? 풀잠자리알이라면 그 곳에만 알을 낳아놓지는 않았을 터이니 다른 이파리들도 유심히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리꽃 이파리와 꽃몽우리에도 수없이 많은 우담바라가 지천에 널렸다.
희소하게 느껴지던 것이 너무 많으니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흔한 것이니 내 눈에 띄었겠지. 과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고 했던가?
그나저나 좋은 관찰거리가 생겼다. 과연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하루이틀 살펴보다 보면 꽃(식물)일지 곤충의 알(풀잠자리)일지 확실해질테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종교적인 것은 종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우담바라의 힘을 빌어 하나둘 풀릴 수만 있다면 굳이 우담바라니 풀잠자리알이니 옥석을 가릴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친구에게 우리 집 옥상에 우담바라가 피었다 이야기하니 "어쩌자고 목사집에 우담바라가 피었냐? 사이비 목사 아니냐?"고 농을 던진다. 농은 농이고 우담바라 한 번 보러 올 터이니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한다.
"왜, 당신도 우담바라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려고?"
꽃이 아니면 어떠랴? 꽃이라고 하면 꽃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풀잠자리알을 우리꽃 이야기에 당당하게 올린다. 아마 들꽃이야기에 최초로(?) 등장하는 곤충의 알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우담바라를 처음 만나고 사흘이 지났다. 좋은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 아직 그 기운을 받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사흘, 평상시보다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생겼다. 더 좋은 일이 생기려는 복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그런지 상서로운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만히 앉아서 상서로운 일이 생기길 바라는 심보가 복권당첨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진짜로 상서로운 일이란 자기가 땀흘린 만큼의 결실을 얻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