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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장전항의 갯메꽃
장전항의 갯메꽃 ⓒ 김민수
6월의 햇살이 따가운 날,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북한군인들과 눈맞춤을 하는 순간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남한 땅이 아니라 북한 땅이구나 실감이 났다. '그래,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그 언젠가는 밟게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바로 그 땅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북녘땅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내가 이렇게 설레고 마음이 먹먹한데 고향땅을 그리워했던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어 함께 동행한 분 중에서 북녘땅이 고향인 분을 바라보았다. 그 분의 눈시울은 금방 뜨거워졌고, 눈물이 흘렀다.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나는 줄곧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북녘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꽃은 어떤 꽃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의 금마타리
금강산의 금마타리 ⓒ 김민수
드디어 꽃다운 꽃이 보였다. 토끼풀, 그랬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토끼풀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어 사초과의 풀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망초, 노란씀바귀, 하얗게 피어 여행준비를 하고 있는 띠, 엄마 일 가는 길에 피어 있는 찔레꽃 등등 잡초라고 불리어도 좋을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지천에 흔하게 피어 있는 꽃, 꽃에도 계급이 있다면 하층민에 속할 저 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구나. 예쁜꽃도 있고, 귀한 꽃도 있고, 대접받는 꽃들도 있지만 저렇게 흔하디 흔한 꽃, 무지렁뱅이 민중을 닮은 꽃이 먼저 나를 반겨주는구나.'

순간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통일도 결국은 저 흔하디 흔한 잡풀들 같은 민중들이 이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남녘에 피어난 꽃이나 북녘에 피어난 꽃 하나도 다르지 않은데, 남쪽 사람이나 북쪽 사람이나 다르지 않은데 이념이 무엇이길래, 이데올로기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오랜 질곡의 세월을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해금강의 기린초
해금강의 기린초 ⓒ 김민수
2박3일의 짧은 여정, 북녂땅의 숨결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한 걸음이라도 더 걷고 싶었고, 하나라도 더 자세하게 보고 싶었다. 천천히 걷고도 싶고 성큼성큼 걷고도 싶었다.

흔하디 흔한 꽃들만 피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금강산 구룡포와 상팔담을 향해 가는 길가에 기린초, 금강애기봄맞이, 참조팝나무, 노랑제비꽃, 바위채송화와 금마타리 같은 것들이 손짓하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서 그들을 제대로 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꽃술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을까 신기했다.

우리 사람들은 왜 저 들꽃들처럼 살아가지 못할까?

삼일포의 바위채송화
삼일포의 바위채송화 ⓒ 김민수
꽃을 하나둘 사진기에 담기에는 너무도 짧은 여정으로 인해 거듭 '마음에 담아두자, 마음에 담아두자'하며 걷는 길임에도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자꾸만 들꽃들이 보인다. 남녘땅에 피어 있는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들은 어디에도 피어 있었다.

장전항에도 삼일포에도 해금강에도 금강산 오르는 길에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양지마을과 온정리에도 민중을 닮은 꽃들은 피어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귀티 나는 꽃들, 흔하지 않은 꽃들도. 꽃처럼 우리도 다르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전항의 토끼풀
장전항의 토끼풀 ⓒ 김민수
북녘땅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이른 새벽 숙소인 해금강호텔에서 나와 장전항을 걸었다. 해안가를 따라 걷는 길에 드문드문 해당화, 갯메꽃, 갯완두, 도깨비사초, 끈끈이대나물, 토끼풀, 인동초 등이 피어 있다. 시원한 바다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 자꾸만 발자국이 남아 있는 모래사장을 뒤돌아본다.

그냥 고맙다. 그 꽃들이 그 곳에도 피어 있어 고맙고, "통일된 조국에서 만납시다"하며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를 불러준 자연미를 간직한 북녘의 동포들도 고마웠다.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 북한 사람들은 뿔이라도 달린 줄 알고 자랐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피식'웃었다. 참 슬픈 과거, 그러나 아직도 엄연히 우리 사회에는 레드콤플렉스가 만연하고 있지 않은가!

장전항의 끈끈이대나물
장전항의 끈끈이대나물 ⓒ 김민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6·15공동선언 이행과 평화통일을 위한 금강산기도회'를 5일(화)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가졌다. 기도회를 마치고 6일(수) 서울로 돌아오는 길, 뉴스에서는 자유총연맹과 기독교단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반핵관련 시위를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혼란스럽고 슬펐다. 남북의 분단상황도 슬펐지만 이런 저런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이들과 그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이들의 신념이 무서웠다. 이념이라는 것,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극복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하니 우리에게 평화통일은 요원한 것만 같아 슬펐다. 남녁땅에 핀 꽃이나 북녘땅에 핀 꽃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서로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곳에도 남녘땅과 다르지 않은 꽃이 피었다. 그 곳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었고, 우리의 아들 딸들과 다르지 않은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에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철조망 너머 바람에 흔들리는 개망초 그들에게 철조망은 담이 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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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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