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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데요? 아직 행선지를 결정하지 못했는데요."
"우린 아우랑가바드로 갈 생각인데요. 그래요. 그럼 우리도요. 그럼 우리 함께 갈까요?"

배낭 여행을 하다 보면 같은 곳을 향하는 배낭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낯선 곳이라는 두려움과 혼자라는 외로움이라는 욕구가 만나서 동행이라는 친구를 만든다.

▲ 낯선 곳이라는 두려움과 혼자라는 외로움이라는 욕구가 만나서 동행이라는 친구를 만든다. 뭄바이에서 아우랑가바드까지 함께했던 동행들
ⓒ 조태용
뭄바이에서는 처음 인도라는 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대학생 4명과 함께 다녔다. 그들은 모두 다양한 의미를 두고 인도라는 땅을 밟았다. 이들과 1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존재했지만 인도 여행이라는 목적이 같았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또한 모두 인도가 처음이라는 설렘과 함께 여행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존재했을 것이다.

처음 공항에서 만난 친구는 앞뒤로 무거운 배낭을 두 개를 가진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였다. 그는 몇 년 전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같다가 네팔마오이스트에 붙잡혀 고생했다며 우리의 안나푸르나 여행을 극구 반대했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두 명의 여대생 친구는 취업을 앞두고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리고 한 명의 친구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자 이번 여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여행에는 보고 즐기는 것 이상의 목적은 다들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그럼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여행의 목적은 행복이다. 30대 초반에 시골로 내려온 이유도 다름아닌 행복한 삶이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인도 여행 역시 그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에게 배낭여행이라는 새로운 체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뭄바이에서 결성된 초보여행자들은 기차를 타고 아우랑가바드로 가기로 결정했다. 모두들 다음 행선지는 달랐지만 석굴 사원 엘로라와 아잔타가 있는 아우랑가바드는 뭄바이를 인도여행의 첫발로 선택한 여행자라면 누구나 가고자 하는 곳이어서 쉽게 행선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뭄바이CST역으로 간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차표가 모두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인도 배낭여행족 대부분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기차를 이용한다. 인도의 기차는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기차가 많고 침대 칸이 있다. 이 때문에 잠자리와 이동이라는 두 가지가 필요한 여행자에게 시간과 돈을 아껴주는 가장 효율적인 이동수단이다.

가격도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SL(Sleeper Class) 아주 저렴하다. 기차표는 보통 며칠 전 예매하는 것이 필수일 정도로 매진이 많다. 물론 우리는 초보여행자였고 그런 상식 같은 지식조차 막상 현장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결국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는 사설버스와 공영버스가 있는데 야간에 출발하는 버스는 대부분 사설버스다. 사설버스의 티켓은 여행사에서 판매한다. 우리는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밤 9시 버스표를 예매했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여행자 거리인 꼴라바에서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한 다음, 인도 영화를 보기로 했다.

뭄바이는 인도 영화의 중심지였다. 바로 발리우드(뭄바이+헐리우드의 합성어)의 중심지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나라다. 연간 1000여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1만3000여 개의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나다.

우리가 찾은 극장은 겉보기에도 꽤 깨끗했다. 관람료는 200루피였다. 인도에서 보통 한끼 식사비가 50루피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꽤 비싼 가격이다. 한국의 극장보다 스크린의 크기나 음향 시설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 영화 나마스테 런던의 포스터
ⓒ 영화포스터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나마스테 런던>이라는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영국에서 태어난 인도 여성이 영국 남자와 결혼 하려는데,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가 인도의 펀잡 지역으로 여행을 가자고 한다. 결국 거기에서 농사짓는 사람과 만나 사랑에 빠져 영국인 남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줄거리다.

인도 영화에는 영화 중간에 뮤지컬이 삽입된다. 이 영화에 춤과 노래 중에 트랙터 위에서 배우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 가수가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트랙터 위에서 춤을 춘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서는 적어도 농민들이 푸대접은 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몇 번의 뮤지컬 같은 장면이 이어지더니 끝이 났다.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뭄바이의 밤거리를 바삐 걸었다. 생각보다 영화가 길어져서 밤 8시가 되어서야 극장을 빠져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스 시간 때문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버스를 놓치면 어떻게 하지……."

우리의 발걸음을 점점 빨라졌지만 버스표를 구매했던 여행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낮과 밤의 차이일 것이다. 버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6명의 배낭여행 초보자들은 무더위와 함께 불안감에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러나온다.

"벌써 시간은 8시 30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사를 찾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나와 한 친구가 버스회사를 찾아 보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회사를 찾아 이리 저리 골목을 뛰어다녔다. 뭄바이 시내를 헤집고 달려가는 기분은 상쾌했다.

▲ 버스는 사설버스와 공영버스가 있는데 야간에 출발하는 버스는 대부분 사설버스다. 사설버스의 티켓은 여행사에서 판매한다.
ⓒ 조태용
다행히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버스 타는 곳을 찾아냈다. 어떻게 찾았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살다 보면 어렵던 일이 쉽게 해결 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인도 초보 여행자 6명은 한 밤중에 뭄바이의 밤거리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달려 달려갔다. 그러나 9시 5분 전에 버스회사에 도착했는데 이 버스는 9시를 넘겨 10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혹 우리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닐까? 버스가 있긴 있는 것인가?"

다른 국가에서 우리는 겨우 버스를 타는 것 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우린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익숙한 사회에서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순간 다른 세상을 자신의 시각과 시스템으로만 이해하는 청맹과니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세상에는 다른 잣대가 필요한 것이다.

여행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우리가 구매한 버스티켓은 침대 칸이 있는 최신 버스였다. 하지만 40분이나 늦게 도착한 버스는 최신 투어리스트 버스가 아닌 1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구형 침대버스였다.

만약 한국에서였더라면 약속한 버스도 아니고 40분이나 늦은 것에 대해 항의도 했겠지만 인도에서는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우린 버스를 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버스를 탔던 다른 사람들도 버스 시간에 대해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나라의 시스템인 것이다.

버스 침대 칸에 올라가자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리는 버스는 밤새 우리를 데칸고원의 신비한 석굴이 존재하는 아우랑가바드로 옮겨 놓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유기농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도#배낭여행#뭄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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