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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페이크라는 단어가 횡행한다. 물론 이렇게 횡행이라는 하는 이유는 제대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쓰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용어가 난무한다는 말도 범람한 지 오래다. 심지어 진짜 같은 가짜 패션을 페이크(Fake)패션이라고 지칭한다. 목걸이를 한 줄 알았는데 아예 목걸이가 그려져 있는 옷이었다면 페이크 패션을 본 것이다. 페이크 패션에서는 옷 단추가 그려져 있거나, 넥타이가 아예 붙어있다. 텔레비전에서는 페이크 프로그램, 영화에서는 페이크 다큐 영화가 유행이다.

당연히 페이크 프로그램은 페이크 다큐에서 왔다. 페이크는 '속이다', '날조하다' 라는 사전적 의미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모큐멘터리(mockumentary)'와도 같다. 'mock(가장)'와 'documentary'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mock의 뜻에는 '조롱하다' 외에 '가장하다'는 뜻도 있는데, 짜가 다큐, 짝퉁 다큐로 불린다. '페이크' 형식은 외국에서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방송, 영화 등에 많이 활용됐다.

영화에서는 '포가튼 실버', '블레어 위치' 등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9년 독립영화 '블레어 위치'는 제작비의 400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고, 감독 등을 스타로 만들었다. 이 영화 때문에 페이크 기법은 상업영화에 대폭 수용되기에 이른다.

'대통령의 죽음'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암살을 소재로 했다. 당연히 논란이 됐다. 논란 덕인가. 토론토 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은 페이크 다큐 '포가튼 실버'로 파란을 일으켰다. 영화사(史)의 주요 사건들을 비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 탓인지 한국에서도 공중파 방송을 통해 페이크 기법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2005년 4월 픽션과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어우러진 '4.3뮤직 다큐멘터리-김윤아의 제주도'도 이러한 페이크 기법을 사용했다. 2005년 10월 'KBS 스페셜-백년드림팀 평가전'은 100년 동안 한국 최고의 야구 선수를 뽑아 마운드에 한자리에 세웠다. 선동렬이 던지고, 이승엽이 받았다. 또한 이미 세상을 떠난 선수들을 대신하는 대역과 실존 인물의 인터뷰가 같이 섞였지만, 진짜 여부보다 감동이 우선이었다.

가짜 짝퉁방식이 선호되는 이유는?

2007년 봄 케이블 채널에서는 '페이크 드라마'라는 형식을 내걸고 'P씨네'라는 드라마를 선보였다. 이른바 페이크 리얼리티 드라마(Fake Reality Drama). 드라마는 드라마지만 '인간극장' 같다. 당연히 배우들은 대부분 시청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다. 6㎜ 카메라에 그마저도 흔들리고 화면은 거칠다. 물론 실제감을 주기 위해서다.

리얼 르포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논란을 일으켰다. 불륜 현장 추적기쯤이다. 연인의 불륜을 밝혀 달라 의뢰하고, 무슨 고발 다큐처럼 가명을 쓰는데다가 모자이크 처리까지 한다. '리얼 르포'라는 제목과는 달리 100% 연출이다. 물론 "시청자들을 우롱했다"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페이크 기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공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페이크 기법을 사용한 연극 '착한 사람 조양규'도 무대에 올라 주목을 끌었다. 40년 동안 아무런 흔적 없이 살다간 조양규라는 인물을 추적하는 일곱 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1979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사에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주변부 인물들을 엮어 재구성했다. 물론 낸시 랭의 실종 사건과 같이 허무맹랑하게 광고에까지 페이크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쯤에서 페이크 기법의 장점과 가능성을 짚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싶다. 왜 이런 가짜, 짝퉁 방식이 선호되는 것일까?

진실이 모두 의심받는 사회에서 페이크는 역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페이크' 기법은 가짜를 통해 사실과 현실을 드러낸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우리가 보는 것만이 모두 사실은 아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며, 상상해 낸 것이 오히려 거짓이 아닌 사실이자 진실이다. 제작자의 상상력이 중요하다. 이러고 보면 상상력의 시대에 맞는 코드가 페이크다. 모호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의 넘나들기에서 진실에 대한 고민은 시작된다.

사실 여부가 모호할 때 긴장감이 따를 수밖에 없고, 한 번 더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궁금증은 더해가고 관람과 시청이 끝난 뒤에 여운은 더 남는다.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더 큰 진실을 드러낸다"는 식상하지만 중요한 캐치프레이즈를 되새긴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국내 '페이크' 프로그램들은 선정성과 자극성이 우선이다. 아쉽다. 리얼리티를 살리기에 제작비와 인력이 안 되니, 페이크를 이용해 시청자들을 시선을 끌려 하는 것인가. 이럴 때는 정말 '눈속임' 이 된다. "낚였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페이크 뒤에 감동과 여운이나 통쾌함이 아니라 불쾌함과 찝찝함이 더 한다면 알 만하다. 물론 단기간에는 시청률을 잡겠지만 프로그램이나 방송에 대한 신뢰는 곧 떨어진다. 결국 페이크가 페이크하는 것은 자신이 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페이크#모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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